한무제 때 흉노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며 일거에 형세를 역전시킨 두 인물이 있었다. 한 사람은 위청, 한 사람은 곽거병이다. 위청이 아마 곽거병의 외삼촌뻘로 전공은 더 빨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더 클 수 있는데 평가는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크다. 곽거병은 지금도 그 이름이 회자되는 반면 위청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아직 한이 흉노에게 열세를 보이던 시점에 연이은 승전으로 형세를 역전시킨 점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고 신중하고 겸손한 행보를 보였던 점만 보아도 위청에 대한 평가가 당대에마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자신이 모시던 공주와 결혼까지 했을 정도로 전공도 신분도 지위도 모두 높았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리 그를 무시했던 것일까. 그에 비하면 곽거병은 어느 정도 승기가 잡힌 상황에서 한무제가 전력으로 밀어준 덕을 보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평소 행동도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장에서 병사들은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데 그 앞에서 남은 음식과 물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버릴 정도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했었다. 그런데도 병사들은 그런 곽거병의 행동에 열광하고 있었다. 일반의 상식으로 봤을 때 위청과 곽거병에 대한 평가는 바뀌는 게 맞아 보인다.

 

바로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행동, 즉 자신이 누리는 권력과 권리에 대한 의식과 책임의 문제였던 것이다. 위청 정도의 실력과 위상이라면 마땅히 당대의 권력자들을 상대로도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한 관직과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황제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 한 마디 간언도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자신의 명성과 인망 쫓아 휘하에 들어온 수많은 문객들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의가 없는 것이다. 그건 겸손도 뭣도 아니다. 그저 눈치나 보는 비굴함이고 비루함인 것이다.

 

반면 곽거병은 거만했던 만큼 휘하 장수들에게도, 조정의 고관들에게도, 심지어 황제에게까지 할 말은 하던 인물이었다. 전장에서도 따라서 항상 자신감이 넘쳤고 그가 이룬 전과처럼 확신에 찬 과감한 행동으로 큰 전공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자신감과 과감한 행동들이 심지어 위청의 밑에 있던 문객들마저 거의 남김없이 곽거병에게로 넘어갈 정도로 주위의 평가를 갈라 놓았던 것이었다. 이 사람만 믿으면 된다. 이 사람만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무언가 의미있는 결과가 있을 것이다. 

 

대기업 회장들이 괜히 의전을 화려하게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그리 검소하고 겸손하던 이들조차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세상에 다시 없을 엄숙함과 화려함으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 한다. 그래야지만 경쟁자들이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것이고, 소속 임직원들이나 거래처들에게는 신뢰와 기대를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기에게 명령을 내리는 최고경영자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라 여겨지만 복종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협력사들에게도 자신의 거래처가 그리 만만한 대상으로 여겨지면 막상 믿고 거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대중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다가도 정작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과감하게 자신있게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신분에 따라 그런 오만과 독선은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비쳐 질 수 있다. 그러니까 더 확실하게 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내놓을 결과를 기다려달라.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더 필요한 덕목인 것이다. 때로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려 할 때가 있다.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런 때에마저 지지자들로부터 한결같은 믿음과 기대를 받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도록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지금 자신이 보이는 배신과 같은 행동들마저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으로써 결과적으로 지지자들이 보내는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더 의미있는 결과로써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바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비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일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일 것이다. 국민의힘은 권력이란 칼을 사용하는데 익숙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세력으로서 자신들이 가진 힘과 자신들에게 지워진 책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에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국민들은 무엇을 보고 자신들을 지지하고 표도 주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받은 표로, 권력으로 자신들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오세훈을 보라. 문재인 대통령이 오세훈처럼 개혁을 추진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하지만 못한다. 그에 바로 민주당이란 정당이, 그 소속정치인들이 가진 결정적인 한계인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힘의 크기를 모른다.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확신조차 없다. 신념이 없는 게 아니다. 목표나 지향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래도 되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고 쉽게 멈추며 쉽게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신뢰하기 힘들다.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뭐하자는 것들인가. 국민의힘이 페미니즘 정책을 펴도 반페미주의자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 반면 민주당의 정책 하나하나에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떨어져나가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민주당이 하고자 하는 것이 뭔데? 뭘 하고 싶은 것인데? 그런 점에서 폭군보다 더 안좋은 것이 암군이고 혼군이다. 폭군은 뭘 하려는지 명확하니 그냥 납죽 엎드려 따르면 되는데 암군이나 혼군은 그런 것도 아니라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유도 모르고 죽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과연 그런 놈들에게 주어진 권력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며 꺼려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우습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국민의힘과는 달리 조금만 흔들면 바로 흔드리고 마니까. 조금만 앞에서 얼쩡거려도 지레 겁먹고 멈춰서는 정도를 넘어 저멀리 도망쳐 버리고 만다. 그런 것을 겸손이라 착각한다. 위청의 겸손과 아주 닮아 있는 것이다. 황제가 위청에게 그만한 신분과 지위와 권력을 허락한 것은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주길 바란 것이다. 황제가 그러기를 바라고 관작과 명예를 내렸다면 그를 따라야 하는 것인데 제멋대로 자신을 낮추기만 한다면 그것은 겸손일까? 오만일까? 황제가 자신을 대장으로 임명했으니 나이가 얼마나 많고 경력과 실적이 어떻게 되든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과시할 수 있는 그것은 과연 오만이기만 할 것인가? 황제가 그러라고 자기에게 재상의 관직을 내렸으니 황제를 찾아가 바른 길로 가도록 따져 묻고야 말겠다. 그게 충성이다. 비겁은 겸손이 아니고 비루는 성실이 아니다. 이소영이나 권인숙 나부랭이들에게 지지자들이 분노한 이유다. 그들의 겸손은 언론과 야당을 향한 것이지 지지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 지지자들을 비국민취급하는 오만까지 보이고 있었다. 국민을 위해서 지지자를 저버리겠다. 즉 지지자는 국민이 아니다.

 

한 편으로 오만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특별한 신분이다. 지지자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소통해야 하는 것은 야당의 정치인이며 언론인이고 법조인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강남에 집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겸손해져서는 안되는 상대에게 겸손해진다. 지지자들이 민주당을 버릴 수도 있는 진짜 이유다. 민주당이 먼저 지지자를 버리고 배신하려 하고 있다. 표나 주는 무지렁이들이라고.

 

아무튼 과연 권력을 가진 자가 겸손한 것은 미덕인가? 권력을 가진 자가 오만한 것은 잘못인 것인가? 민주당이 겸손하기만 하면 국민과 언론과 야당이 민주당을 다시 보아 줄 것인가? 그 겸손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래서 민주당이 근본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민주당은 무능하다. 의리도 없고 책임도 없다. 이유가 있다. 지금 보는 모습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