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 방영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어린 이방원은 홍인방에게 선과 정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선은 악도 포용하는 것이지만 정의는 악을 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증오하고 배제하려 한다.

 

공자의 말이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면 과연 좋은 사람인가? 진정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들로부터는 칭찬을 들을 것이고 나쁜 사람들로부터는 비난을 들을 것이다. 나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진정 좋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원만하고 유순하고 다감한 좋은 사람일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그는 단지 악을 용인하고 타협하는 또다른 악인에 지나지 않는다.

 

송양공이 강국인 초나라 군대와 싸우면서 적군인 초나라 병사들에게도 어짐을 베푼 결과 결국 자기 백성인 송나라 군사들만 큼 피해를 입고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도 큰 피해를 입히고 말았었다. 중국 명나라 건문제도 절대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싸움에서 삼촌을 죽였다는 오명을 듣지 않겠다며 영락제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결과 자신을 지키려 했던 공신들만 일족까지 씨몰살당하는 결과를 맞고 말았었다. 반면 영락제의 손자였던 선덕제는 감히 자신의 왕위를 노리고 반역을 일으킨 삼촌 주고후를 유폐하고 나중에는 항아리를 달궈 죽이고 말았다. 그러니 선덕제의 후손들이 이후 명나라 황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적에게 가혹해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지킬 수 있고, 적에게 잔인해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몫도 챙겨 줄 수 있다. 그런 게 정치다. 그래서 정치란 정의다. 내가 정의여야 한다. 정확히 우리가 정의여야 한다. 그저 선하기만 하다면 정의로운 적에게 자신의 몫을,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던 이들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뺐기고 국회마저 내주었을 때 민주당을 지지하던 이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한나라당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들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지지자들이 악이라 생각하는 행위들을 그냥 손놓고 지켜보기만 해야 했었다. 다시 그런 상황을 반복해야 하는가. 

 

흔히 말하는 중도층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민주당이 선거에서 지리멸렬하자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행동에 옮기는 것들을 정의라 여기고 지켜보기만 해야 했었다. 진정 민주당이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것을 국민이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정의다. 이래서 민주당이 정의인 것이다. 이래서 민주당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에 반대하는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민주당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확실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당과 다르지 않다. 크게 차별되지 않는다. 그래서야 사람들이 민주당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당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난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다시 배지를 달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당의 정의부터 바로세워야 한다. 정의란 곧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악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난도 달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언론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가? 그러면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했다.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해야만 했었다. 박용진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국민의힘에 가면 유치원 3법이나 삼성문제를 지금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지지자들로부터 욕먹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고,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욕먹는 것은 그리 아프다. 다행히 그런 놈들 상당수가 지난 총선을 거치며 걸러지기는 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 있다. 민주당에서 오래 정치한 놈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국민의힘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업자고 국민은 손님일 뿐이다. 지지자도 남일 뿐이다. 그러니 지지자들이 등돌리는 것이다. 저따위 정당 지지해봐야 내게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인 것이다. 한결같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하던 40% 넘는 지지가 한순간에 빠져 버렸다. 중도층이 떠나간 것이 아니다. 지지자가 떠나간 것이다.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중도층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찌된 것인가? 언론의 눈치나 보며 야당이 보기에 좋은 정치나 하겠다는 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망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낙연의 민주당은 바로 그 열린우리당의 또다른 재현이었다. 내부갈등은 없었지만 언론을 두려워하며 야당의 눈치나 보느라 오히려 국민의힘이 180석 거대야당인 줄 착각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면 무엇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위선보다 더 나쁜 게 무능이다. 유능한 자의 오만은 자신감이지만 무능한 자의 자신감은 단지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한 자가 일으킨 혼란은 변화지만 무능한 자의 변화는 단지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

 

2030이 민주당에 등돌린 이유를 이해한다. 나라도 지금 민주당 보면 지지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것이다. 말만 요란하지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한다더니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언론개혁한다고 변죽만 울렸지 해놓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 공정과 원칙을 강조하고서 의사들에게는 매번 밀리기만 할 뿐이다. 저 새끼들이 도대체 뭘 하려는 놈들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공감한다. 지금 민주당은 의석만 많이 차지한 밥버러지들일 뿐이다.

 

지금 내가 화난 이유는 그럼에도 여전히 지지자들을 탓하며 중도층만 바라보려는 그 무책임에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재명이 바닥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까지 올라설 수 있었는가. 이재명이  개인적으로 약점이 많은 인물임을 과연 몰라서였을까? 이재명의 인성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누구를 화나게 만들고 누구에게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반면 누구로부터도 비난을 듣지 않던 이낙연은 결국 누구로부터도 칭찬조차 듣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낙연의 길을 갈 것인가? 이재명의 길을 갈 것인가?

 

그나마 이번 보궐선거로 사실상 이낙연의 대선후보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이 민주당에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재명이 유력 대선후보로 드러나면 민주당도 그에 맞춰 가는 수밖에 없다. 정권을 잃으면 공당으로서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런 절박함이라도 가졌을 때의 일이겠지만.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 봐서 인내하며 지켜봤었는데 그것도 한계가 오고 말았다.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안된다. 그런 위기감이 있어야 한다. 때로 미친 놈처럼 몰아칠 수 있는 그런 과감함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정의이고 필요하다면 악과의 싸움도 피하지 않겠다. 그 과정에서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자세다. 아무도 욕먹으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비난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싸우려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 정당은 필요없다. 싸우지 않을 것이면 그냥 계모임 정도로도 충분하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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