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 있을 때 본부중대에 가면 상황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소대에도 있었다. 인원과 장비의 현황을 파악해서 바로 수정할 수 있는 필기도구를 사용해서 적어 놓음으로써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한다. 사람이든 장비든 들어오고 나간 상황과 내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만일의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당직이든 불침번이든 교대할 때 가장 우선해서 중요하게 인수인계되어야 하는 것이 이같은 인원과 장비에 대한 현황인 것이다.

 

총원 몇 명에, 결원이 몇 명이고, 결원 사유는 무엇이며, 그러므로 현재 막사 안에 있는 인원의 수는 모두 몇 명이다. 총기는 소총이 몇 정, 유탄발사기가 몇 정, 기관총은 몇 정 하는 식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특히 불침번 근무시에는 구두로 전달하고 실제 함께 확인까지 한다. 요즘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군대 있을 때는 그렇게 상황판에 적힌 숫자와 실제 숫자를 맞춰보고 이상이 없을 경우에만 교대를 마칠 수 있었다. 내가 괜히 현모씨에 대해 당시 근무를 개판 선 것 아닌가 의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인수인계할 때 제대로 했으면 이미 교대를 마친 순간 미복귀자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 그러면 물었겠지. 왜 미복귀냐고. 그러면 대답이 돌아왔을 테고.

 

일단 당직사병이 직접 병영을 돌면서 인원을 파악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주말에는 인원파악도 제대로 않는다는 카투사라면 더 그렇다. 아마 카투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혹시 모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대부분 부대에서는 불침번이라는 것을 둔다. 그리고 이들 불침번들은 그 만일의 상황을 보다 빨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병영내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서로 인수인계하게 된다. 그래서 병영 내에서 어떤 변동사항이나 이상상황이 발생하면 불침번은 바로 당직자에게 보고하고, 당직자는 주어진 권한에 따라 자기가 직접 처리하거나 아니면 지휘계통을 통해 상관에게 보고하게 된다. 추미애 장관 아들 서모씨와 당시 당직사병이었다던 현모씨가 서로 다른 중대에 막사도 따로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중대도 다른 당직사병이 과연 남의 중대 막사까지 찾아가서 인원을 점검하고 미복귀자를 찾아냈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그런 게 진짜 가능하긴 한가?

 

그래서 서모씨와 같은 부대에 있었다는 카투사 전역자들도 현모씨가 당직실 상황판을 보고 미복귀여부를 인지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 상황판에는 분명 총원과 현재인원, 그리고 결원 가운데 휴가자와 외출외박자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니 그를 통해 누가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았는가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현모씨 자신이 상황판을 고쳐 적지 않았다면 현모씨가 인지한 내용이 당직근무를 교대하기 전에도 그대로 쓰여져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근무교대를 하는 단계에서 휴가미복귀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수인계 과정에서 미복귀여부와 사유에 대해 물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더 이상의 혼란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금요일이 복귀일이었는데 일요일 당직근무 교대까지도 아무일이 없었다면 이미 소속중대원들은 거의 그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아니었어도 바로 당직자간에 서로 확인하고 난 뒤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가 이루어졌다면 자료가 남았을 것이니 더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 당시 당직자로부터 휴가미복귀자가 있다는 사실이 계통을 통해 보고되었었다. 그런데 언제 교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있으면서 미복귀사실을 인지하고 전화까지 직접 걸었다니 과연 정상적인 상황일 것인가.

 

현모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내 추측은 이렇다. 인수인계 그냥 대충 했던 것이다. 상황판에 뭐가 적혀있는지도 보지 않고, 이전 당직자로부터 변동사항에 대해 제대로 전달받지 않은 것이다. 회사에서 당직근무 설 때도 비슷한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밤새고 나서 졸려 죽을 것 같으니 제대로 인수인계도 않고 바로 집으로 가버린다. 어차피 뻔한 내용일 것이라 아무도 없는 당직실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놀 생각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예 듣지도 않고 등부터 떠민다. 그래놓고는 인수인계를 하지 않아 전혀 대비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한다. 이걸 어쩌나? 여기 전화해 보고, 저기 전화해 보고, 그러니까 자기가 야식으로 처리해주겠으니 지금 당장 복귀하라 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파악을 제대로 못해 난리가 났으니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식이면 이전 근무자들도 다 박살나야 할 텐데? 어찌되었거나 모두가 정상에서 벗어난 모습들인 것이다.

 

그래서 현모씨가 당일 당직도 아니었고, 더구나 같은 중대도 아니었다 했을 때 사람들이 피식 웃으며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미필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대부분 안다. 행정병이 아니었어도 그냥 군생활만 오래 했으면 당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게 되어 있다. 여러 중대가 통합해서 당직근무를 선다? 의미가 없다는 이유다. 그래도 당직은 당직, 인원파악은 각 병영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병영 구조에 따라서 중대단위거나, 혹은 소대단위거나, 혹은 분대나 그 이하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당직은 보고만 받는다. 변동사항이 있다고 각 단위에서 보고가 들어오면 파악해서 바로 위에 보고하는 위치인 것이다. 사병이라면 더욱 전결권한이 없으니 일단 보고부터 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미복귀자의 존재를 자기만 먼저 알아차리고 전화까지 걸었다? 오죽하면 카투사는 주말에 인원점검도 안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그런 군대 있으면 한 번 보고 싶다. 제대로 된 나라에 제대로 된 군대가 어디 그딴 식으로 운영되는지. 

 

다시 말하지만 군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원과 장비에 대한 현황파악이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고, 중요한 장비들이 몇 개나 어떤 상태에 있고 하는 내역을 항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잠깐 한 눈 판 사이 탈영자가 생기면? 무기가 밖으로 유출되면? 그로 인해 크게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사단장까지 바로 진급에 빨간줄 쳐질 일이다. 될 말을 해야 믿어준다. 미필들이 진짜 많기는 하다.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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