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지중해세계에서는 비의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이른바 미스테리아라 일컬어지는 어떤 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간단히 지금 자신들이 사는 세계는 거짓된 것으로 세상 어딘가에는 진실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그 진실을 통해 인간은 진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한때 예수가 불교를 배웠다는 주장이 유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를 가리키는 메시아와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의 어원이 같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를 보면 불교와 마찬가지로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가서 고행만 하는 종파도 존재했었다. 고행이 자신들을 그 진실로 이끌어주리라.
최초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타고라스 이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여겨진다. 왜냐면 피타고라스 자신이 그와 관련한 명제를 스스로 쳔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세사의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피타고라스는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비밀이 바로 수에 있다고 당시 결론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데모크리토스가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 위에 있었다. 말 그대로다. 유럽 문명의 수학과 과학은 바로 동지중해세계에서 유행했던 바로 이 비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수학을, 물리의 법칙들을, 현실의 모든 현상들을 관통할 수 있는 보편의 질서를 찾아낼 수 있으면 그것이 이 우주의 비밀에 닿는 방법인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플라톤이 나와서 이데아를 통해서 그들이 추구해야 할 비의를 아예 정의해 버렸다. 미숙하고 거짓된 신 데미우르고스와 진실한 지혜의 상징인 소피아도 아마 이때 플라톤에 의해 우화로써 이야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데아는 이후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기독교의 핵심교리와 만나고 유럽사회의 정신적인 뿌리를 이루게 된다. 괜히 이후 유럽의 모든 철학들이 플라톤의 재해석이라 불리우는 게 아니란 것이다. 바로 그 이데아란 무엇인가? 그 이데아에 이르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신학자들은 그 이데아를 신으로 구원으로 여겼었고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양심으로 존엄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철학자 가운데 일부는 다시 고대의 지식을 불러와서 수학과 과학으로써 이 세상의 실체를 이해하려 했었다. 바로 그 일원적인 세계가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중심의 문명에 대해 서구사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그 대상이며 본질인 것이다.
하나의 진실을 찾아서. 하나의 질리를 향해서. 그 궁극은 발전이고 번영이고 마침내는 구원일 터였다. 히틀러의 게르마니아도 그런 연장에서 이해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독일민족을 더욱 번영하게 영구히 번성하도록 할 수 있는가. 그래서 경쟁이 되는, 그리고 방해가 되는 대상들을 모조리 절멸하고 가장 우수한 독일인들만을 세상에 남겨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독일인들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들만이 남아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히틀러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사회에서는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식이기도 했었다. 누군가는 영국국민을 위해서, 누군가는 프랑스인을 위해서, 누군가는 이탈리아인을 위해서, 각자 그 대상만 달랐을 뿐 본질은 같았다. 그게 파시즘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반발하여 나온 것이 해체주의이고 그 끝에서 현대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온다. 완전히 맞는 건 아닌데 대충 그렇게 흐름이 이어진다 보면 된다. 정확히 그렇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진실과 진리가 아닌 서로 다른 무한히 많은 정의와 가치와 도덕과 윤리와 상식과 양심과 이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단지 해석으로써만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더이상 이전 철학자들이 말하던 거대서사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수없이 파편화된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곧 기존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백인사회가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해체와 붕괴를 의미한다.
반PC주의자들에게 거의 숭배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어느 철학자인지 임상심리학자인지에 대한 글을 얼마전에야 우연히 보았다. 뭔 소리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 그런 주장들을 하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해체주의자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그동안 잘 유지되어 오던 서구사회의 정통과 가치를 한 순간에 부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수 반PC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것과 거의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아무일 없이 잘 지내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성가신 놈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 잘 지내오던 그대로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려 한 것이 히틀러였고, 스탈린이었으며, 그래서 그냥 다시 세상을 시끄러운 채로 내버려두자는 것이 이후 현대의 철학과 사상들의 흐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조용하던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자. 그게 트럼프다. 유일한 하나. 단 하나의 정의와 이익.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 생겨난다. 이전의 착취하는 부르주아와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니 마르크스 주의 자체에 파탄이 일어나는 것처럼.
단 하나의 진리가 존재한다. 단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 하나만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인어공주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백설공주는 반드시 유럽계 백인이어야 한다는 믿음처럼. 성소수자는 비정상이고 따라서 소수자로써 다수의 요구에 따라야만 한다. 주류에서 벗어난 소수들은 마땅히 주류가 바라는대로 따라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요즘 유행중인 반PC의 배후에 개신교 교회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90년대에도 영지주의에 반대한다고 록밴드들을 악마화하는 주장이 꽤나 젊은 세대를 사이에 유행한 바 있었다. 실제 저들이 주장하는 대부분 내용들이 특히 미국 남부의 원리주의 교회들이 주장하는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인종주의적인 부분까지도. 그래서 그들 자신도 말한다. 미국에서는 백인이 주류이듯 한국에서는 한국인 남성이 주류다. 다르지 않다.
생각났다. 조던 피터슨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패스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반PC주의의 사상적 근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나름 판단에 도움이 된다 할 수 있겠다. 저들은 어째서 저리 생각하고 저처럼 과격한가. 그런데 어째서 전혀 동떨어진 한국사회에서 반PC주의가 저처럼 세력을 얻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에 대해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아주 없지는 않다. 아무튼 크게 보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럽문명이 발전시키고 지켜온 그 근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문제없이 해 오던 대로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목적이 그런 오독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사실을 넘어선다.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