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 적, 지금은 사라진 동네에 살던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도둑질하는 방법을 알았다.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쉽게 물건을 훔칠 수 있는가 아예 학교 교실에서 방법을 공유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는 술담배에 벌써 성경험이 있던 아이들까지 있었다. 아마 안내상이 방송에 나와 이야기했었을 것이다. 자기도 10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었다. 진짜 그랬었다니까?

 

그러면 지금은 왜 그런 일들이 많이 줄었느냐? 첫째는 올림픽 앞두고 빈민가들을 죄다 때려부순 것이 한 몫 했고,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던 빈민가들 역시 이전보다는 그래도 먹고 살만해지면서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 것도 한 몫 했다. 대신 그때 현실에서 지랄하던 게 남아서 지금은 인터넷에서들 지랄하며 산다. 실제 진짜 먹고 살 만한 놈들은 인터넷에서 굳이 그렇게 지랄까지 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루저인 놈들이 인터넷에서만 여포장비노릇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다시 말해 그래도 경제발전의 성과가 가난한 동네에까지 돌아오고 했으니 지금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쥐뿔도 없이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에서도 그래도 국가를 믿고 사회를 믿고 여전히 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 이나마라도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하는 동질성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하며 살고 있으니 굳이 남에게 위해를 가해가며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가 사라진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다. 같은 사회에 존재하는,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보편의 윤리와 도덕과 법률과 가치로부터 유리된 또다른 사회를 제 4세계라 정의한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미국 할렘에 사는 흑인들은 같은 미국인이 아니다. 그들은 당연하게 국가도 믿지 않고 공권력도 당연히 믿지 않으며 할렘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동질성 또한 없다. 그리고 할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룰 안에서 그 룰을 지키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간다. 아마 내가 살던 동네도 아파트단지로 만들지 않았으면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괜히 이전 세대들이 부의 재분배와 평등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온 것이 아니란 것이다. 세계유일의 최강대국이자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선진국 미국에서 어째서 저토록 수도 없이, 심지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태연히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으니 고용도 불안해야 하고, 더 적은 임금 받으며 더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일해야 한다. 그래서 서울대에서 일하는 미화원이나 시설관리원들은 정기적인 시험까지 치러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야 서울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정당하게 급여와 복지를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자격이 없는 이들은 매일 실직의 불안 속에서 고통과 고난 속에 살아야 한다는 그들의 공정이 만들어낼 어쩌면 미래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참 신기하다. 그런데도 난 도둑질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다들 술먹고 담배피는데 성인이 될 때까지 술은 마셔본 적 없고 담배는 지금도 피지 않는다. 그놈들이 또 바로 옆집 친구들이기도 했다. 어디서 패싸움하다 경찰서에 잡혀갔네 하던 이야기도 진짜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만나니까 어디 공장에 들어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살더라. 나보다 더 잘 산다. 그럴 수 있는 이유, 그냥 근처 아무 공장에나 들어가도 최소한 결혼해서 가정 꾸리고 살 만큼은 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IMF 전이니. 그 뒤로 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아마 요즘 2030들은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평등이라면 극혐하는 것일 테고. 평등을 강조하니까 좌파다. 역사물에서 평등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니까 이건 좌파물이다. 공정이란 서로의 노력과 실력에 따라 차이를 두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놈들 자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오히려 공정을 해치는 것이다. 동등한 기회를 누리려면 농민이든 어민이든 서울로 와서 좋은 학군에서 자식 학교 보내고 학원에도 보내라. 왜 이전 세대들은 그런 것들을 그리 극혐했을까? 역시 부모들 잘못이다. 늘 좋은 것만 보여주니 어둡고 그늘진 현실을 알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어떻게 백주대낮에 남의 차문을 부수고 물건을 훔칠 수 있는가. 대놓고 남의 가게에 들어가 물건들을 들고 나올 수 있는가? 프랑스나 독일같은 선진국에서 소매치기가 극성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왜 그런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누가 그러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이 저렴하면 도덕도 저렴해진다. 현실이 비루하면 가치 또한 비루해진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맹자가 아성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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