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상사의 지시마저 무시해가며 최대한 내 관리 아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더 많이 쉴 수 있도록 많은 부분들을 배려하려 노력해 왔었다. 당연히 내 책임 아래 있기에 다른 지시가 있으면 그 지시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다른 팀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치에 있기에 그 부분도 신경써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온전히 내 팀 만 신경쓸 수는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평소 배려하며 신경써 주던 부분은 싹 빠진 채 최근 조금 관리를 엄격하게 하며 서운하게 한 부분만 이유로 들어 말하고는 직원 하나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내 기분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가? 그 다음에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가?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 뭘 얼마나 잘해 줄 수 있겠는가? 아니 잘 해 준다고 무슨 보람이 있기는 할 것인가? 모든 것이 허무해져서 화도 잘 나지 않더라. 화도 나지 않고 밉거나 싫지도 않고 그냥 기운만 빠진다. 덕분에 너무 팀원들 풀어준다고 상사로부터 몇 번이나 질책도 받고 했었는데. 그래서 보이는 데서는 너무 티내지 말라면서 나 혼자 안달복달하고는 했었다. 당연히 그러는 것을 알아도 실제로 그러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일 테니까. 자기 편한 사정은 이야기하면서 내 곤란한 사정 같은 건 헤아리지 않는다. 그래서 말했다. 지금보다 잘하지는 못할 테니 그냥 나 자르라 말하라고. 다른 사람 팀장 시켜달라 말하라고. 그래서 잘리면 잘리는 거고.

 

문득 박원순 시장이 피소사실을 알았을 경우를 가정하고 당시 박원순 시장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생을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전혀 터무니없는 이유로 성추행으로 고소당하게 생겼다. 더구나 그동안 동지로써 가까이 지내던 이들마저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낙인찍고 비난하는 말들을 하고 있다. 검찰과 언론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박원순 시장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서울시장으로 있던 내내 보수정당과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며 가족까지 크게 곤란을 겪었던 경험도 있을 터였다. 과연 지금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씨발 그냥 그만두라면 그만두고 말지 손 놔 버린 내 상황과 당시 박원순 시장의 처지가 크게 봤을 때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화도 그다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덤비고 까불어도 그다지 밉거나 하지 않다. 그냥 필터라도 하나 걸친 양 현실감 없이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래서 사람들이 굳이 아랫사람을 위해서 윗사람과 다투기 보다 윗사람 눈에 들기 위해 아랫사람을 희생양 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상사가 시키는대로 갈구고 다그치기만 했다면 상사도 굳이 내게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었을 테지. 그러면서도 또 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기에게 게기며 팀원들만을 챙기고 있었는가도. 확실히 서로 마음 통하는 것은 상사 뿐이었던 것일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은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이상 신경쓰기도 싫고 마음쓰기도 싫다. 다만 언론과 정치권의 표적이 될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자살은 공포를 회피해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포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 때로 허무일 것이다. 그동안의 삶이 허무해지고, 앞으로의 삶까지 공허해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 심연보다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뭐가 어떻게 되는 나와는 상관없을 것이다. 당연히 팀원들이야 뭐가 어떻게 되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팀원들 개개인이 사라지고 팀원이라는 이름 하나만 남게 된다. 애정과 관심이 사라지면 개인이 아닌 전체만 인식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일부만 일부만 떠들며 특수한 사례임을 강조해도 외부인들 눈에 모두 똑같이 보이는 이유다. 그러니까 결론은 뭐다? 그냥 좆같다. 사람이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 출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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