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식인에게 있어 어용이란 궁극적 목표이자 이상일 것이다. 정확히 어용이라기보다는 권력 자체가 되기를 대부분 바랄 것이다. 그래야지만 평소 자기가 생각하고 주장하던 것들을 실제 현실에서 구현해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냥 주장만 하고 말 것이면 뭣하러 그 노력을 들여가며 배우고 궁리하고 논쟁까지 하겠는가.

 

권력에 초연한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얼마나 열심히 정치권 주위를 얼씬거리고 있었는가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슨 자리라도 맡기겠다 하면 좋아라 달려가서 덜컥 맡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만 어기까지였다. 진중권이 진보정당과 감정이 틀어진 이유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게 서울대 미학과는 서울대에서도 듣보잡이거든. 그래도 진보쪽에서 한 자리 하려면 서울대에서도 함부를 따져보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면 현장에서 활동가로써 쌓아 온 실적이 있었거나. 즉 학벌도 안되고, 그렇다고 실적도 경력도 없고, 그걸 누가 써주겠는가.

 

그래서 항상 진보정당 주위를 맴돌기만 했었다. 자기는 권력에 관심이 없다. 정치는 생각이 없다. 당직이며 공천이며 줘도 안 받는다. 그런데 줘 본 적이 없거든. 무슨 비대위 비슷한 거 하면 한 자리 챙겨주기는 하는데 정작 실제 뭔가를 할 만한 자리는 아예 제안조차 가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진중권이 신나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까닭이다. 생전 처음이다. 이렇게까지 자기가 주목받고 인정받고 대우받는 시절은. 심지어 거대양당 가운데 한 정당에서 자신을 직접 거론하며 당을 이끄는 비대위장까지 자기와 직접 만나고 있지 않은가. 여기라면 조금 다를까.

 

전부터 느끼기는 했다. 원래 진중권은 욕을 해도 아주 찰지게 욕한다. 조롱하고 비아냥거려도 아주 자연스럽게 매끄럽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논객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여당을 향한 비난들을 보면 일부러 만들어 비난한다는 느낌을 어쩔 수 없이 받게 된다. 이렇게해야 사람들이 다시 자기를 주목해주고 인정해주고 대우해주지 않을까. 딱 지금 정의당이 보이는 행보 그대로다.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을 받아써줄 누군가를.

 

요즘 기분이 많이 좋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잘만 하면 국민의힘에서도 한 자리 맡게 될 지 모른다. 무언가 자기가 주장하는 것들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지 모른다. 나라도 신나겠다. 지식인으로서 그런 위치에 오른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더 이상 들어가면 인신공격이 되므로 여기서 커트.

 

역사상 많았다. 한 자리 얻기 위해 의리도 인정도 신념도 도의도 다 버리고 실리를 쫓아가던 이들이. 삼국지에서도 그래서 서로 목숨걸고 싸웠던 이들이 처삼촌이고 조카이고 뭐 어쩌고저쩌고 친척관계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지. 진심을 알고 나니 욕하기가 그렇다. 그 길이 그 쪽에 있다면야. 버려지지만 마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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