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조국사태 당시 내가 조국 전장관을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문재인 정부를 믿고 같이 욕먹고 말겠다."

 

사실 당시까지 아직 확신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었다. 연일 언론에서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지고, 정작 당사자의 구체적인 해명은 보이지 않았었다. 심지어 진실을 보도하는 공정한 언론이라고 믿고 있던 JTBC마저 가세해서 의혹을 확신처럼 보도하는데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지하는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었기에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지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문재인 정부는 조기에 레임덕을 맞고 끝내 실패하고 말 것이다. 검찰개혁도 물건너가고 마는 것이다. 그냥 함께 욕먹고 말자.

 

누군가를 지지하고 편들어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항상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항상 잘 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아니 정작 잘하고 잘 나갈 때는 지지한다고 돌아오는 것도 전혀 없다시피 한데, 오히려 못하고 못나갈 때는 그마저도 자신의 책임인 양 따져묻는 경우를 현실에서는 더 많이 겪게 될 것이다. 내가 정부 당국자도 아니고 그냥 현정부를 지지하는 것일 뿐인데도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고 하니 바로 비웃음을 머금고 놀리듯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문재인 정부가 잘하는 일에 대해서 내가 정부를 지지하는 것을 칭찬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누군가를 욕하고 비웃기는 잘해도 지지한다 당당히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굳이 트집을 잡으려 한다면 성경이나 불경에서도 예수와 석가모니를 비판할 거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나 석가모지같은 성인들조차 막상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 십 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며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의 어떤 점이 훌륭하고, 석가모니의 어떤 점이 위대한가. 공자는 어째서 성인으로 불리는 것이고, 소크라테스는 불멸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인가. 그러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더 쉬운 길을 찾아 누군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고자 하는 것이다. 게으르고 무지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대상을 비판하는 만큼 자신의 수준도 높아진다 여기기 때문이다. 예수나 석가모니조차 가차없이 비판할 수 있는 자체만으로 자신은 이미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다. 이명박근혜 시절 자칭진보들은 무척 편했었다. 그냥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정부인 이명박근혜정부를 그냥 비판만 하면 되었었다. 보수정부인 이명박근혜 정부와 보수여당인 당시 새누리당이 잘못하는 부분만 찾아서 비판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비판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존재감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보수정부가 물어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니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하던 것과 비슷한 정책들이 실제로 추진되는 가운데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정책들이 실제 실행되었을 경우 나타날 부작용이나 국민들의 반발들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버렸다.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좋은 것인가.

 

물론 처음부터 회피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진중권이 그래도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여러 방송에서 패널로 출연한 것을 보았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진보지식인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인 정책들에 대해 지지하면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반대편 패널들과 곧잘 논쟁도 벌이고 하던 시절이었었다. 문제는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그 기간이 너무 짧았고 존재감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뭔 말을 했는지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책들을 비판할 때는 누구보다 날카로웠지만 정작 정부의 편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옹호하려 할 때는 그 논리가 너무 빈약하고 비루하게만 들렸던 때문이었다. 정봉주도 지적한다. 공부를 너무 안한다. 전혀 조사도 않고 나와서 입으로만 떠들려 한다.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그래도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래서는 안되었다.

 

통일부장관이 되기 전 그토록 신랄하게 모욕까지 섞어가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던 김연철이 정작 통일부장관이 되고 아무것도 않다가 상황만 악화시키고 알아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라. 자기만의 주장이 있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도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뒤따를 책임까지 자기가 지기는 싫었다. 혹시라도 그로 인해 보수정치권과 언론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렵고 꺼려졌었다. 평소 최저임금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해 왔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국민의 반발까지 자신들이 감당하기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아무거라도 이유를 들어서 여전히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말 그대로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입장에서 그동안 자신들이 비판하며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실제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자신들의 주장은 옳았었는가. 자신들의 논리에 어떤 모순이나 허점은 없었는가? 그러나 책임을 지기는 싫다. 그로 인해 어떤 비판도 비난도 듣고 싶지 않다. 모욕이나 조롱은 더욱 사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여전히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처럼 비판만 하면 되는 위치로 남았어야 하는 것이다. 굳이 책임질만한 일을 하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으로서 원래 하던대로 비판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적인 정책을 실제 현실에거 구현할 책임은 오로지 정치권에만 있고 자신들은 그저 그것들을 감시하고 비판만 하면 된다. 

 

자칭 진보언론이 보수언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일 것이다. 보수언론은 이명박근혜 시절에도 설사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든 그 책임까지 기꺼이 나눠지며 그를 옹호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래야지만 자신들이 바라는 보수정책이 성공적으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칫 진보정부에 의해 보수정책이 폐기되거나 수정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었다. 그래서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보수정부의 편을 들었고, 또 보수정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욕을 들어야 한다면 기꺼이 들으며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칭 진보언론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와 이명박근혜 정부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명박근혜 정부가 더 나았다.

 

진중권이 저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이유도 결국 한 가지인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마음놓고 비난만 하는 지금이 정당화될 수 있다.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 없이 그저 흠을 찾고 트집을 잡아 조롱과 모욕을 퍼부어대는 지금의 모습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방송조차 거의 끊기고 대학에서 학생들만 가르치다 그마저도 잘리고 만 지금 그가 깨닫게 된 냉엄한 현실이다. 욕하는 것 말고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존재가치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욕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었다.

 

책임은 지기 싫고, 자기 존재감은 드러내야겠고, 그러니 남이 욕하면 더 거세게, 더구나 진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더 악랄하게 비판과 비난을 퍼부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중권이 신년토론회에서 느끼던 추위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욱 문재인 정부와 지지자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저들만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명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있다면. 최소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 있었더라면. 누가 자칭 진보들을 이토록 초라하게 만들었는가? 원래 남탓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부류들이란 것이다. 그것이 이유다. 오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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