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다. 아마 노무현 정부 때였을 것이다. 이영훈이 100분토론에 나와서 한 이야기들로 한바탕 시끄러웠었다. 물론 다수는 이영훈을 비난하는 쪽이었다. 그럴 때 분연히 일어나서 어리석은 대중을 질타하며 민족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역사의 진실을 밝힌 양심적인 교수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잘한 인간들은 잘 기억도 나지 않고 그 가운데 한윤형과 노정태를 기억한다. 아, 한윤형 얼마전에 한바탕 당했던가?
그들의 논리는 한 가지였다. 민족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한민족이라는 민족이 없는데 어찌 민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당시 합법적인 정부는 일본제국이었고, 일본제국의 조선총독부였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바로 이들 조선총독부로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본 정부가 자국민에 대해 저지를 잘못이고, 그 과정에서의 모든 책임은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나 민족이 아닌 결정하고 집행한 개인들에 있다. 조선인 가운데서도 그에 부역한 개인들이 적지 않았기에 책임을 한국인 역시 같이 져야만 한다.
탈민족이 대세였던 터라. 민족을 부정하고 역사를 보려니 저런 재미있는 결론이 나온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해방이 되지 않았으면 일본인으로 더 풍요로운 사회에서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 한탄하던 진보지식인도 있었다. 민족을 말하는 모든 것이 부정한 것이고 부당한 것이다. 민족을 벗어난 것만이 옳다. 더불어 아마 한윤형의 경우 위안부 문제를 굳이 남녀문제로 치환하려 했을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한윤형이 진보진영에서 데이트폭력 문제로 매장당하다시피 한 것이 재미있어서다. 종군위안부-혹은 일본군 성노예의 본질은 주류남성에 의한 주변부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다. 종군위안부에 대해 부정적인 일부 극렬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이와 통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한윤형이 진보내 여성주의자의 타겟이 되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이영훈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여전히 한결같다. 일관되다. 자기 양심을 걸고 하는 짓거리다. 같은 서울대였기에 이영훈 교수의 양심을 믿고자 했던 한윤형이나 역시나 서울대 출신의 진보지식인들 역시 그런 점에서 매우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진보를 믿지 않는 이유다.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배운 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머리로만 진보다. 입으로만 진보다. 좌파의 현실이다.
메갈리아 논쟁에서 일정 부분 비판자들에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현실과 한참 오래전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사실 메갈리아도 그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여성주의가 아닌 남성혐오에 더 쉽게 기대게 된다. 여성주의란 무엇인가. 하지만 여성의 현실과 밀착해서 여성들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페미니즘은 없었다. 길을 잃으면 사람은 극단이 되기 쉽다. 아무튼 재미있다. 그리운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