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의 3당합당으로 사실상 호남이 정치적으로 포위되다시피 했던 1990년대의 정치구도에서 호남에 기반을 둔 김대중의 선택은 영남에서 다만 한 표라도 더 가져오기 위한 이른바 동진정책이었었다. 일단 호남과 영남의 인구부터 차이가 나는데다, 무엇보다 당시의 지역구도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후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영호남의 화합차원에서도 호남정당인 민주당이 영남에서 표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고민에 동의해서 민주당 대의원들도 대선후보경선에서 부산출신인 노무현을 후보로 선출했던 것이기도 했다. 영남출신의 후보라면 영남에서 표를 더 얻을 수 있을 테고 그를 통해 지역구도를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그를 중심으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타파라고 하는 대통령의 신념에 따라 계속해서 동진정책을 펴고 있었다. 조경태가 덕분에 부산에서 아직까지 국회의원 해먹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이 제대로 퍼줬었거든. 부산에서 다만 한 석이라도 얻어 보겠다고 대놓고 밀어줘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경우였다. 그런데도 저 지랄 하는 것 보면 확실히 노무현이나 문재인이나 사람 보는 눈이 없기는 참 없다. 아무튼 문제는 김대중에 이어 계속해서 영남권을 공략하기 위한 동진정책을 펴는 것은 좋은데 그 과정에서 김대중이 만든 기존의 민주당을 깨고 아예 호남을 배제하다시피 하는 듯 보였던 당시 행동들이었다. 영남표 더 얻어보겠다고 호남을 버리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당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는 차라리 지역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남에 지지를 호소하는 동진정책보다 영남과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다른 지역들을 끌어들여 아예 영남을 고립시키는 이른바 영남역포위를 주장하고 나오기도 했었다. 어차피 영남 것들 민주당에 표를 줄 리 없으니 그냥 포기하고 나머지 지역들을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영남을 포위케 하여 항구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러한 논쟁이 첨예하게 불거진 것이 원래 제주도로 예정되어 있었던 국제행사를 부산으로 돌리는 노무현 정부의 결정이었었다. 그런 식으로 영남 다 퍼주면 나머지는 손빨라는 것인가. 그런다고 영남이 민주당에 표를 줄 것 같은가.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그때는 나도 아직 어린 만큼 순진하기도 했던 터라 그놈의 영남역포위전략을 또다른 지역주의라 여기고 무지 비판하고는 했었다. 그런 식으로 지역주의를 강화해서 좋을 게 무엇인가? 그로써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동진정책은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어차피 영남에서는 표를 줄 놈들만 줄 테고, 거기에는 민주당이 영남에 무엇을 얼마나 해주는가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괜히 지역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그렇게 부산경남에 퍼줄 것을 다른 지역에 퍼 주었다면 지금보다는 표가 더 나오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어차피 표를 주지도 않을 동네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퍼주기보다 차라리 더 가능성 있는 곳에 뭐라도 해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그러든 말든 저 동네는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
문재인이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 호남홀대론이 나온 이유를 오래된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는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었던 이유일 것이다. 씨발 표는 죄다 호남에서 몰아주는데 정작 정권을 잡고 나서는 영남에만 펴준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표를 얻어 의석도 얻고 정권도 잡아 놓고는 영남의 표를 더 얻어 보고자 영남에만 죄다 퍼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몇 번 당선되기도 했었던 것이었다. 어차피 민주당에 표를 줘 봐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정당에라도 표를 주어 보자. 아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대놓고 호남을 차별하는 짓거리만 하지 않았으면 그때 이미 호남 다수는 보수정당에 넘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표를 준 본진을 무시하고 어차피 표도 주지 않을 남의 본진을 탐낸 결과였다. 이명박근혜가 대놓고 호남을 차별한 것에 민주당은 진짜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어차피 표를 주지도 않을 놈들을 위해 이미 표를 주었던 지지자들을 저버리자는 놈들이 나온다.
비유하자면 그런 것이다. 이미 선금까지 다 받고 상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가 더 많은 돈을 줄테니 상품을 넘기라는 것이다. 일단 상품만 넘기면 그동안 받는 돈보다 더 많이 줄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가장 어려울 때 숨통을 틔워준 거래처를 대상으로. 정치를 떠나 상식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그동안의 고마운 점도 있고 이미 실제로 돈이 들어오고 있는 것도 있으니 기존의 거래처를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돈을 위해 기존의 거래처를 배신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동덕여대사태를 일부러 젠더이슈로 키운 이유가 결국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동덕여대사태를 젠더이슈로 몰아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퍼뜨린 뒤 민주당에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버리고 자신들과 손잡자. 다행히 다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생각처럼 바보가 아니다. 어차피 저놈들이 표를 주지 않을 것도 알고, 기존의 지지자를 저버렸을 경우 돌아올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막바지 그 절망적이던 순간에 찾아왔던 한 줄기 기적과 같던 희망을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지지하고 있는 여성을 저버리면 그 대신 지지하기로 한 남성이 지지를 거부할 경우 그냥 망하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이미 있는 지지자를 버리고 지지할지도 모르는 놈들을 선택하는 것은 뇌가 구더기인 버러지새끼들이나 할 법한 생각인 것이다.
동진정책은 바로 그 교훈일 것이다. 영남에 아무리 퍼줘봐야 결국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인 것이다. 잠시 돌아설수는 있어도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악고야 말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남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라는 것도 결국 보다시피 조경태나 김해영 나부랭이들인 것이다. 대구에 출마하기 위해 박근혜를 빨아대야 했던 김부겸처럼 결국 그들도 그쪽과 닮아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가? 이미 있는 자신의 기반이 되어주는 소중한 지지자를 더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외연도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보다 먼저 그 중간에 있는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지역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적지는 적지다. 적은 적이다. 정치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