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모양빠지는 상황인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법제상 위계가 그러하니 상관인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따르겠다 했으면 법과 원칙을 지키다는 명분은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검찰출신도 아닌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인 최초의 검찰총장으로서 체면을 구기기는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수사결과에 따라 그 모든 책임은 부당하게 검찰총장의 수사지휘에 관여한 법무부장관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부당한 것을 알면서도 법이 그렇기에 위계상 법무부장관의 지시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동정여론까지 일게 된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반발하다가 이전 검찰총장들처럼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옷벗고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법과 원칙을 목숨처럼 여기는 검찰총장으로서 자신의 결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법무부장관의 지시는 일선 검사들의 정당한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며 압력이다. 검찰조직의 수장이자 검사들의 선배로서 자신은 그런 부당한 행위를 절대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을 걸어서라도 그 부당한 지시를 철회하도록 요구하겠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차라리 검찰총장의 자리를 내던져서라도 법무부장관이 지시를 철히하도록 만들겠다. 분명 항명이지만 자신의 자리를 내걸고 하는 항의이니 하극상은 아니다.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검찰총장의 직끼지 내려놓겠다는 것이니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신념은 올곧고 무겁다. 자신의 결심은 단호하다. 법과 원칙을 크게 어기지 않으면서 법과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검찰총장으로서 자신의 명분과 체면까지 살린다. 아마 윤석열을 차기 대선후보로 여겼던 보수진영에서 바랐던 것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는 이런 올곧은 검찰총장을 막다른 지경으로 몰아세웠다는 굴레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는 부당한 권력의 희생양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윤석열의 입장에서도 아마 최선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법이 그러하니 위계에 따라 상관의 지시를 받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지시가 부당하니 자신의 직을 걸고서라도 막아서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도저도 아니게 결국 시간만 끌다가 장관의 위세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만들고야 말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시한 내용을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자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만다. 바로 윤석열이란 인물의 그릇인 것이다. 공직자로서 부당하더라도 법이 정한 위계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자리를 걸고서까지 원칙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검찰총장 자리는 지켜야겠고, 법무부장관의 지시는 따르기 싫고,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대로 하려다 결국 법무부장관의 위세에 눌려 따르기로 결심하고 만다. 언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등하게 대립하는 관계라면서?

최강욱 의원이 법무부에서 발표할 내용을 미리 받아 알았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회자되는 이유인 것이다. 법무부의 입장에 따라 검찰총장의 결정까지 좌우할 수 있다. 명백히 법무부가 검찰총장의 위에 있으며 검찰총장의 처신까지 그 결정에 따르고 만다. 아니었다면 그냥 법무부의 입장을 몇 시간 일찍 알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질 리 있었겠는가. 추미애 장관과 법무부의 위상만 높여주고 말았다. 아무리 게겨봐야 결국 검찰청은 법무부산하의 외청이며 검찰총장은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외청장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윤석열은 몸으로 직접 실천해 보여주고 있었다. 검찰총장이 법을 지켜서 순순히 따르는 것이 아닌 따르고 싶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 없는 강제력이 동반된 위계와 체계다. 상하관계가 분명해진다. 추미애 장관이 위고, 법무부가 위며, 윤석열 총장과 검찰은 그 아래에 있다. 검찰들이 기함할 상황인 것이다. 힘에 눌려 굴복함으로써 그 사실을 모두에게 확인시켜주고 만다.

지금 상황에서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잘리고 대선후보로 나서봐야 이미 한 번 추미애에게 꺾였는데 얼마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보수진영에서 윤석열을 차기 대선주자로 여기기 시작한 이유는 다름아닌 현직 대통령과 직접 맞짱까지 뜨면서 오히려 대통령의 머리 위에서 보수진영 전체가 달려들어도 불가능했던 깊은 상처를 입히는 모습에 감명받은 때문이란 것이다. 현직 대통령과도 당당히 맞짱뜨며 상당한 상처까지 입혔던 지고의 검찰총장이 일개 법무부장관을 당하지 못하고 끝내 무릎꿇고야 말았다. 추미애 하나도 당하지 못하는 검찰총장이라는 게 당장 대선이 아쉬운 보수진영 입장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진중권이 느닷없이 최강욱을 두고 국정농단이라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게라도 윤석열의 굴복을 감추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당장 언론이 알고, 검찰이 알고, 당장 윤석열을 상대해야 하는 청와대와 여당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윤석열 스스로 자백한 것이다. 나 이렇게 만만한 놈이다.

대통령의 레임덕을 노리기 전에 검찰총장으로서 자신의 레임덕부터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한 번 꺾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지난 1월 법무부의 인사를 통해 검찰총장으로서의 위신이 한 번 크게 깎이기는 했었다. 인사권이 온전히 법무부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윤석열이 발악을 했음에도 계획도 폭로되고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는 결과가 나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제 윤석열 자신이 추미애에게 법과 명분이 아닌 힘에 굴복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검찰사상 처음으로 검찰출신이 아닌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그것도 힘에서 밀려 수용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현직 검사들에게, 아니 전직 검사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과연 지금의 이런 모습들이 어떻게 여겨지고 있겠는가. 대선후보?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한겨레, 경향과 진중권, 김경율, 정의당 정도일 것이다. 도대체 지금 윤석열에게 뭐라도 남아있기는 한 것인가.

물론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언론과 검찰만 몰랐다. 검찰 안에서도 윤석열 찌그래기들만 몰랐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장관을 장관으로, 국민을 국민으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장관은 장관이고 국민은 국민이었다. 그 국민이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176석의 압도적 다수의 여당을 만들어 준 것이다. 여전히 과반의 국민이 지지하는 정부이고 가장 많은 국민이 지지하는 여당이며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정당인 것이다. 주장한다고 바뀌는가? 믿는다고 달라지는가? 정해진 수순대로 가는 것인데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몽니가 단지 성가시게 돌아오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웃고 만다. 대단하신 총장님이시다. 만수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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