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말했잖은가? 내가 괜히 한국 여성주의를 기생페미니즘이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이 기생의 마인드다. 정확히 상당한 권력과 지위와 재산을 가진 유력자를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의 사고방식이다. 여성의 인권이 열악한 사회에서도 오직 이들만은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특권을 누리고 살았었다. 오죽하면 근세 유럽의 궁정에서 정식으로 결혼한 왕후보다 더 중요하게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국왕 개인의 애정에 기댄 정부들이었을 정도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래서 신분도 더 낮은 장녹수나 장희빈 같은 이름들이 가문도 훌륭하고 자신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정식 왕후들보다 더 친근하고 익숙하게 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과 상관없이 유력자 남성의 마음만 사로잡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모두의 위에서 온갖 부귀와 영화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높이는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여성주의자들과 한 번이라도 말을 섞어 봤으면 나의 이 말에 대부분 동의하게 될 것이다. 여성주의자들 대부분은 나같은 힘없는 노동자 남성이 굳이 자신들을 이해하려 하거나 편까지 들어주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감까지 가진다. 여성주의에 남성은 필요없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에는 진짜 그런 줄 알았었다. 실제 그런 여성들이 주위에 있었다. 너무 힘들어 얼굴까지 빨개진 상태에서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으로부터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고 팔은 부들부들 떨리는데도 자기도 같은 인간이니 자신의 힘으로 직접 모든 걸 해내겠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또한 전혀 달랐었다. 이를테면 박근혜가 그 예일 것이다. 단지 아버지의 이름을 등에 업었을 뿐인 박근혜에 대한 저들의 태도는 어떠했었는가? 아니 그 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특별한 신분에 있거나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태도는 또한 어떠했었는가? 노동자 남성들의 도움은 거절하면서도 저들은 기꺼이 남성인 검찰 지도부를 움직여서 같은 여성인 검사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마저 압박하려 했었다. 어째서 노동자 남성과 기득권 남성에 대하는 태도에 저같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인가? 권인숙이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앞장서서 도왔던 박원순을 냉정히 저버린 이유다. 모두로부터 공격받는 박원순은 더이상 자신이 고마워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당장 여성할당제라는 것도 처음에는 워낙 여성에게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니 일정한 기회를 항상 열어두어 여성들로 하여금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지만 지금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기득권 남성들의 선의에 기대어 그만한 자격을 가진 여성들이 수월하게 기득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성할당제 아래에서도 남성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여성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닌 오로지 기득권 남성들의 선의에만 기대서 그같은 선의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를 위한 기회만 항상 열어두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경찰 체력시험과 관련한 논란이었을 것이다. 한 여성유튜버가 여성도 남성과 대등하게 체력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는데 감탄하며 도전의욕을 보이기보다 오히려 몰려가서 테러를 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성이기에 특혜를 받아야 한다. 여성이기에 혜택과 배려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야만 한다.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하기를 포기한다. 대신 남성이 양보하는, 정확히 기득권 남성들의 판단에 의해 주어지는 특혜만을 누리려 한다.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남성의 선의에만 기대려는 그같은 여성주의를 과연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이다. 기생들이 남들보다 잘나가는 이유는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뛰어나고 말재간이 훌륭한 것도 결국은 남성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서구적인 빼어난 외모도 남성의 취향이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옛스러운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얼굴보다 못할 수 있다. 누군가는 글래머를 좋아하겠지만 누군가는 슬랜더를 좋아할 수 있다. 중국의 전설적인 미인 가운데 하나인 양옥환은 꽤나 비만한 체형이었다고들 한다. 그래서 미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달라지는 기준에 따라 많은 여성들은 기를 쓰고 맞춰가려 한다. 그러니까 기생이 누가 더 잘나고 더 훌륭한가 따지는 기준은 결국 자신을 선택한 남성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보여주는 방식도 자신을 선택한 남성의 사회적인 신분과 권력과 부에 있는 것이다. 그를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것도 따라서 그를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실질적인 무언가일 것이다. 조선시대 의상이나 장신구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것들이 대개 기생들로부터 유래하는 것은 그런 결과인 것이다. 오히려 신분이 고귀한 귀부인들보다 상류층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들이 더 화려했고 더 사치스러웠다. 그것만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사치스럽지 않은 매춘부를 굳이 존중해줄 사람이란 현실에 거의 없다. 그러니 그 사치가 얼마나 진실한가가 더 중요하다.

 

고가의 명품을 개인적인 자리에서 선물로 받았다. 권력자에 대한 선물은 아무리 순수한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결국은 뇌물이다. 가족이 아닌 이상 타인이 주는 모든 선물은 그 신분과 지위와 가진 바 권력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와 상관없이 일단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가의 선물을 개인적으로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선물이 진짜이냐에 더 관심을 가진다. 실제 그 선물이 그만한 가치를 가지느냐에 더 집중하며 비중을 둔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다. 진실하게 그만한 가치를 가진 선물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더 큰 죄다. 아마 진심을 것이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게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일 테니까. 선물을 주려면 진실하게 진짜를 주어야지 다른 의도를 가지고 가짜를 준다는 것은 너무 무례하고 무엄하지 않은가. 그런 분이 심지어 여성주의자를 대표하는 위치에서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와 관련해서는 오만 별 사소한 것까지 들추고 씹어대던 2찍 진보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조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오히려 목소리는 보수를 지지하는 언론들과 인사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그에 비해 2찍 진보들은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여성을 위한다면 선물을 해도 진짜로 해야 하고, 의도 역시 진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그쪽을 더 비판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나마 지금껏 비판적인 기사도 간간히 쓸 수 있었던 것은 아직 가짜라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일 분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만간 입장이 달라지지 않을까. 대선 내내 온몸을 던져 지금 영부인을 수호했던 게 2찍 진보, 특히 여성주의자들이었으니. 김규항이나 홍세화 등이 현정부 비판하는 거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안들리는 곳에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 귀에 들릴 정도가 아니면 아무말 않는 것이다. 모르는 곳에서 떠드는 놈을 지식인이나 논객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런 점에서 어째서 2찍 진보는 현정부에 대해 저토록 조용한가. 여성주의자들은 더욱.

 

류호정은 그런 점에서 참 투명하다 할 수 있다. 너무나 솔직하다.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소속정당도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마저 달리할 수 있다. 단지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류호정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던 것이 2찍 진보들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설마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정당을 지지해서 기사를 쓰면서 그런 본성을 아주 몰랐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을 위해 얼마든지 지금까지 주장하던 여성주의도 포기할 수 있다. 반대 입장에서 주장도 할 수 있다. 양성징병제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게 바로 한국 여성주의고 2찍 진보들의 실체인 것이다. 전부터 느껴왔지만 새삼 확실해진다. 그래서 기생페미니즘이다. 스스로 감탄하는 네이밍일 것이다. 너무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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