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그럴 여유가 없다. 반드시 이번 대선만큼은 이겨야 하는데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다. 설사 이길 수 있다 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권을 잡고 정국을 주도하려면 최대한 높은 지지로 당선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내가 이렇게 절박한데 유승민이 뭘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광화문광장에서 직접 배를 가른다 해도 거기에 더해줄 동정따위 나에게는 없다.


둘째 그러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동안 유승민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것이다. 가끔 잘못된 결정들에 대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었다. 하지만 반대는 원희룡도, 남경필도 했었다. 김무성도 해야 할 때는 했었다. 그래서 얼마나 정부와 당의 잘못된 결정에 반대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는가 하는 것이다. 셋째 이유와도 바로 이어진다. 그래서 박근혜가 잘못했고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잘못했으니 반성하고 새로 시작한다면 뭣한다고 다시 정권을 잡아보겠다고 기어나왔는가는 것이다. 다시 기어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김대중 노무현때도 그랬다. 진짜 반성하기는 하는 것일까?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선의는 결코 선의라 할 수 없다. 최소한 동전 몇 개라도 던져주고 불쌍해해도 해야 그것을 선의라 인정하는 것이지 그저 말로만 베푸는 선의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유승민이 얼마나 희생해 왔는가. 얼마나 헌신해 왔는가. 하다못해 지난 총선에서 불출마라도 선언했다면 유승민의 처지가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총선에서 아예 작심하고 불출마선언한 뒤 다음을 기약했다면 오히려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보수의 중심은 유승민에게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있다. 유승민이 배신자인 것은 박근혜를 등져서가 아니라 그러면서도 여전히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계산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과연 유승민이 진정으로 참보수를 위해 저리 버티고 있다 생각하는가.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파들 가운데 일부를 절대 받지 않겠다 거부한 것을 보면 똑똑한 유승민이 왜 지금 사퇴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상정의 자살골이 인상적이었다. 처절한 실수였다. 아직 사람들이 정의당과 심상정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막연히 말 잘하고 들어줄만한 말을 하니 능력있다 여겨서 진보에 대한 만역한 호감으로 심상정을 지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의 표를 빼앗아오겠다고 - 최소한 문재인에게로 가려는 표들을 막아보겠다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정의당과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치명적인 한계만 노출시키고 말았다. 아예 문재인의 선거운동을 하러 토론에 나선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을 정도다. 현실적으로 증세할 수 있는 한계를 이야기하며 점진적인 개선과 개혁을 이야기하는 문재인에게 당장 70조의 세금을 더 거둬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뤄보겠다고 윽박지르듯 나서고 있었으니. 심상정이 그동안 말해온 입바른 말들과 문재인이 그동안 보여온 답답한 모습이 그 순간 정확히 크로스되고 있었다. 그저 말뿐인 이상과 답답한 현실로써.


홍준표는 사실 그러려니 한다. 대한민국 특히 노년층의 도덕적 수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노인들이 말하는 버르장머리란 자신의 부도덕을 가리기 위한 덮개다. 자신의 사악함을 상대의 싸가지없음과 등치시킨다. 내가 잘못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너의 태도가 더 잘못이다. 그런 식으로 쓸데없이 먹기만 많이 먹은 나이 뒤에 숨어서 오히려 올바르게 자란 젊은이들을 훈계하고 그들을 자신과 같이 타락시키려 애쓴다. 악마가 따로 없다. 인간을 악으로 유혹하는 악마가 있다면 바로 이 사회의 기성세대들이다. 바로 그 증거가 그들이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홍준표의 수준인 것이고. 노인들의 도덕적 감수성에는 홍준표 정도가 딱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의 지지가 그리로 몰려가는 것이고. 홍준표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도 전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토론에서 무슨 짓을 했든 딱 그 수준이라 여기기에 굳이 말을 더하지 않는다. 말할 가치도 없다.


안철수는 확실히 내가 본 것이 옳다. 안철수에게는 옳고 그름이 없다. 바르고 어긋남이 없다. 한 가지다. 잘하고 못하고. 도덕관념이 일반 사람들과도 크게 다르다. 정치인치고도 상당히 이질적이다. 아무리 국민통합을 위한다고 유언으로 지금의 자리에 묻히기를 바랐던 노무현을 다시 파내서 현충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다니. 유족들에게 먼저 의견을 물은 것도 아니고 방송에서 그냥 뜬금없이 제안부터 던지고 만다. 사실 안철수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도 이런 도적적 감수성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러니 2015년 분당사태를 보고서도 오히려 문재인에게 책임을 묻지. 이희호 여사와 관련한 녹취록 사건은 진짜 인간으로서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보좌관을 사적으로 부리려 한 아내를 응원하던 모습은 그 연장선에 있을 테고. 참 인간이 싫어진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고 끊지 않으면서 또한 지나치게 공격하지 않는 문재인의 태도는 역시나 서로를 물어뜯고 쓰러뜨려야 하는 이같은 토론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지적에도 진지하게 듣고만 있고, 무례하게 말을 끊는데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갈 기회를 기다리고, 심지어 경쟁후보를 진심으로 동정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홍준표에게 저렇게까지 예의를 지키며 말하는 후보도 문재인밖에 없다. 인격은 드러나는데 안타깝게도 젊은 층에서는 그다지 인격같은 것은 잘 보지 않으니까. 리더의 토론방식이다. 리더가 앞장서서 말을 끊고 자기 주장만 앞세우면 아래에서는 그저 복지부동만 하게 된다.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리더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유승민이 또 읍소 좀 했다고 흔들리는 인간들이 몇 있다. 심상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원래 유승민은 바닥을 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고. 휘황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 판단을 가린다. 똑똑하기는 하다. 말도 꽤 잘한다. 하지만 그를 위해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유승민이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왔었는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한다. 그나마 홍준표보다 낫기는 하다. 같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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