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벌써 작년이다. JTBC의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이 제대로 지적한 바 있었다.
"선한 약자를 위해 악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다."
많은 사회운동가, 혹은 진보정치인들이 쉽게 빠지고 마는 함정일 것이다. 사회적인 약자일수록 선하고 순수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약자의 편에 서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도 그런가.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리쌍의 건물 정도 되는 입지에 자기 가게를 냈을 정도면 엄밀히 사회적 약자라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권리금으로 리쌍이 챙겨준 돈만 거의 2억 가까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입지다. 어지간한 서민들은 그런 곳에 자기 가게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저 건물주와 세입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한다. 건물주니까 갑이고 세입자니까 을이다. 갑이니까 악하고 을이니까 선하다. 하지만 법원의 명령에도 불응하며 건물주가 인기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을 이용해서 압박하는 세입자의 모습을 본다면 이제는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벌써 몇 년 째다. 도대체 어떤 을이 벌써 몇 년이나 법원의 명령에까지 불응해가며 다른 사람이 소유한 건물 주차장과 지하를 이용해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번 이슈에 발을 담근 사회운동가들이나 정치인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이유다. 선의는 인정한다. 그럴수밖에 없는 나름의 동기 역시 이해한다. 그러나 시한을 지나 버렸다. 리쌍이 지급한 권리금만으로도 그 사이 얼마든지 다른 건물을 찾아 새롭게 가게를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리쌍으로서는 최선의 성의를 다 보여주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권리금까지 2억 가까이 주고, 임대료도 안 받으면서 건물주차장이며 지하를 이용해 장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그런데도 여전히 안 나가겠다. 오히려 건물주가 인기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이용한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사이는 분명 갑과 을이다. 그런데 연예인과 대중의 사이는 오히려 연예인이 을이고 대중이 갑이다.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에서 을의 위치라 불리해지니 언론을 통해 대중을 끌어들인다. 대중의 평판에 민감한 연예인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 한다. 여기에 정치인까지 가세한다. 정치인들도 가만히 고민해봐야 한다. 혹시 자신의 개입이 또다른 갑을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측면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건물주와 세입자 두 가지 입장만 놓고 생각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고도화되어 있다. 당장 지금 세입자의 주장대로 세입자의 일방적인 피해만을 인정해서 건물주인 리쌍을 압박할 경우 이번에는 오히려 리쌍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몰리게 된다.
몇 년 전 처음 이슈가 되었을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도저히 세입자의 편에서 생각할 수 없게 된 이유다. 아무런 합의를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리쌍에게 양보만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그 사이 리쌍이 지급한 권리금을 가지고 다른 가게를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리쌍에게 언제까지 퇴거하겠다 일단 약속하고 이전을 위한 비용 등에서 추가로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건물에 가게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부담이었다면 그 부분만 해결해달라 요구하고 원만한 합의를 시도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기는 그러니 을이라 말하기도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도 여전히 리쌍의 건물에서 임대료도 내지 않은 채 장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익만을 계속해서 챙기고 있었다. 더 오래 계속해서 이익만을 챙기겠다. 리쌍이 연예인이 아니었어도 그럴 수 있었겠는가. 자기는 양보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어느 일방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는 것인가.
꿈에서 깰 필요가 있다. 세입자라고 모두 가난하고 힘없는 그런 소외된 이들이 아니다. 몇 억 단위가 오갈 정도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서민의 범주에 놓기도 애매하다. 그동안 리쌍의 건물을 일방적으로 점유한 채 장사하며 얻은 이익만 하더라도 을의 범주를 훨씬 넘어선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강자와 약자로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때로 강자가 약자보다 더 약자이기도 하다. 이론은 책에서만 찾아야 한다.
어지간하면 이런 경우 세입자의 편에 서야겠지만 이번에는 해도해도 너무했다. 그런 일에 끼어든 사회운동가들이나 정치인 역시 그런 점에서 크게 오판했다. 오히려 비슷한 이슈가 다시 발생했을 경우 대중이 일방적인 판단으로 어느 한 쪽의 편에 서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선입견이 생긴다. 이슈가 크게 되었기에 그래서 더 조심해야만 한다. 과연 당사자들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표성을 가지는가. 남을 위하기가 그래서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