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사람도 없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이성과 마주쳤을 때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감정이 서로 다르다. 남자화장실에 여자가 우연히 실수로 들어왔을 때와 여자화장실에 남자가 그랬을 때도 역시 비슷하게 놀라고 당황하기는 하겠지만 느끼는 감정의 정도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당장 지하철에 여성전용칸과 남성전용칸이 있을 때 남성이 전자에 올라카는 것과 여성이 후자에 올라타는 것이 당사자나 주위가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솔직히 나라고 해도 남자들끼리 놀러가기로 해놓고 뜬금없이 여자를 끼워넣으면 당황할 듯하다. 여행사에서 남자들끼리 놀러가는 거라 해놓고서 여자를 끼워 넣으면 환불할 것 같기도 하다. 남자끼리 할 수 있는 것과 여자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이 분노하고 어느 정도로 분노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가는 각자 개인이 판단할 영역이다. 당연히 책임 또한 자신이 져야 한다. 남들 보라고 분노하는 게 아니다. 남들 이해하라고 분노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건 분노도 아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는 것도 분노하는 당사자의 몫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화낼 일이 아닌데. 그러나 당사자가 보기에 화낼 일인 것이다. 왜 고작 그까짓 것 가지고. 그건 당신 생각. 내가 보기에 그건 충분히 그 정도로 화낼 수 있는 일이라면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그 수단이 좀 과격해진다면 내가 그만큼 화가 났다는 증거겠지. 그러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화나게 만든 당사자가 풀면 된다.
그냥 그런 논의가 있었을 뿐이다. 단지 아이디어 단계였을 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긴 하다. 어떤 조치나 변화들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항상 그 주체가 변명삼아 하는 말이다. 대개 밀실로 이루어지는 경우 아이디어가 곧 소수의 판단에 의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벌써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에서도 어차피 결정을 내리는 것은 소수일 것이기에 그마저도 단지 검토단계라 말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현정부에서 그토록 수도 없이 보아 왔을 그 문구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며 절대시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단지 학교측에서 그리 주장했으니까 학생들은 모두 틀린 것이라 단정할 수 있는 근거란 과연 무엇일 것인가. 어차피 자기들도 당사자가 아닐 텐데. 어떤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학생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어, 마침내 이번 사태처럼 표출되게 되었는가 직접 보고 듣고 겪어서 아는 것은 아닐 터다. 간접적으로 들어서 아는 것인데 아예 아무 의심없이 확신까지 한다.
더구나 그런 것들이 단지 학교와 학생 사이의 갈등을 넘어 여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인 나 역시 남자끼리 가기로 한 여행에 누군가 독단으로 여자 끼워 넣으면 항의부터 하고 볼 것이다. 애초에 남자들끼리 가기로 하고 사람을 모으고 돈까지 받았으면서 거기다 독단으로 남녀평등을 앞세워 여자를 끼워 넣으려 한다. 여대란 그저 여성전용 카페나 노키즈존 식당처럼 시장의 수요가 만들어낸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여성 가운데 남성과 같이 공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라면 선택지로서 존재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성들도 여성들과 같이 대학 다니는 게 싫다면 남자대학이란 것이 존재했을 테지만-아니다. 원래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대학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다시피 했었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워낙 낮다 보니 대학 갈만한 환경의 여성이면 당연하게 일반대학보다 여자대학을 선호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남자들끼리 대학 다닐 거냐 물으면... 아, 지금 나라면 고민 좀 했겠다. 여자들과 어울리는 거 솔직히 많이 성가시거든. 이것저것 신경쓸 것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하지만 누구도 그런 걸 바라지 않으니 남자대학은 없다. 그래서 그게 여성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인가.
더불어 여대라는 타이틀을 보고 대학을 선택해서 들어온 학생들이 그 여대라는 타이틀을 치운다 해서 반발하는 것을 두고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더니 갑자기 페미로까지 급발진한다. 여기서 전가의 보도가 나온다. 외부의 불순세력. 부산쪽 대학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행사를 외부학생들이 포함되어 진행했다는 이유로 외부의 불순세력이라며 경찰력까지 동원했었다. 순수한 학생이란 무엇일까? 순수한 당사자들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래서 그것이 페미문제로 이어지더니 느닷없이 스윗한 4050까지 나오고 만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하게 민주당이다. 남의 대학 문제에 이리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현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가 낮아지니 다시 전가의 보도를 이용해서 여론을 모아보려는 것이다. 4050과 민주당은 스윗한 페미이고, 페미가 지지하는 여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안이 남녀간의 문제냐는 것이다. 남자들만 쓰는 원룸이라 굳이 비싼 돈 주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여자를 받는 바람에 옷차림도 편하게 하고 다니지 못하게 생겼다. 상관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남자전용이라 들어온 사람에게는 절대 상관없을 수만은 없는 이유일 터다.
어째서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고 있는가. 그럴만한 일이기는 한가. 또다시 작전이 시작되었고 넘어가는 놈들이 진영을 넘어서 수두룩빽빽 튀어나오고 있다. 거의 바퀴벌레 수준이다. 건드리면 반응한다. 어딘가는 반드시 숨어 있다. 단지 이유가 필요했을 뿐인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제공해 준다. 너무 투명해서 화도 나지 않는다. 병신은 병신이다. 그냥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