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컴퓨터가 고장나서 한참을 헤맨 적이 있었다. 원인은 리셋단자에서 일어난 이상전류. 리셋단자에 스위치를 연결하면 이상전류가 발생하여 메인보드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무한재부팅. 그런데 설마...


무심코 파워단자와 리셋단자를 함께 연결한다. 메인보드를 테스트해도 굳이 리셋단자만 따로 테스트하지 않는다. AS센터에 가서 고장여부를 확인할 때도 파워버튼만 건드려 부팅여부를 확인하지 리셋단자의 이상전류까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정밀검사로 따로 들어가야 하는데 과연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물론 차근히 하나하나 원인을 따지다 보면 언젠가는 찾아내기야 하겠지만 과연 언제이겠는가.

하지

그동안 원인을 몰라 이것저것 부품을 갈아끼고, 용산의 서비스센터까지 왕복하고, 그 사이 컴퓨터를 쓸 수 없으니 피씨방에서 게임을 대신하고, 그 비용을 모두 더하면 최소 몇 만원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하다하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동네수리점에 맡기고 돌아나오면서 최소 한 5만원은 부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5만원쯤 불러도 나로서는 굉장히 싸게 한 것이라고. 10만원은 조금 비싸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아주 미안한 목소리로 2만원이라 말한다.


얼마나 시달렸을까? 굳이 부탁하지도 않은 컴퓨터 내부정리에, 무한재부팅으로 멈춰 있던 윈도우 설치까지 알아서 모두 끝마쳐놓고 있었다. 쇼트가 원인이지만 내부가 너무 엉망이라 그런 것일 수 있다. 그 정도 변명은 용인해 준다. 인터넷을 찾아보더라도 컴퓨터 수리비에 대한 원성들이 자자하다. 수리점 없이 혼자서 컴퓨터를 고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과 돈이 더 들어가야 할까?


어쩌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어째서 닭 한 마리의 값은 얼마인데 치킨값은 그 몇 배나 받고 있는 것인가. 집에서 만들어 먹으라. 닭을 자신이 먹는 치킨과 똑같이 조리해서 먹으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갈까? 하나의 맛을 개발하는데도 막대한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 그를 위한 회사도 운영해야 하고, 그러자면 사람도 고용해 써야 하고, 각종 기자재며 설비도 필수적이다. 원가만 따질 것이면 아무 노력도 않고 이익도 챙기지 말라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그 목적을 가지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 생산자의 노력이고 지식이고 기술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직접 만져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무심코 무시하게 된다. 당장 거기에 필요한 유형의 원자재들만을 보게 된다. 리셋단자에 쇼트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그것 알아내자고 따로 돈이 더 들어갈 리 없지 않은가. 그저 부품 하나하나 떼어내며 이상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그게 참 귀찮은 짓이다. 지루하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것을 대신한다. 무엇보다 리셋단자의 이상을 의심할 정도면 그동안 컴퓨터를 다뤄 온 경험과 내공이 보통은 넘는다 할 수 있다. 그저 개인 컴퓨터나 만지작거리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결국 수리점에 맡긴 탓에 아낀 나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들을 계산해 본다. 그래서 2만원이란 비싼 비용인가. 5만원도 사실 결코 비싸다 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럼에도 직접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며 따져묻는다. 어떻게 그렇게나 받아먹을 수 있느냐며 시비를 건다. 그만큼 수리기사의 말투는 지쳐 있었다. 그만큼은 받아야 가게도 유지되겠지만 그럼에도 받기 어려울 것을 알기에 굳이 변명거리를 만든다.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까지 더한다. 내가 더 미한하다. 곰곰히 생각했다. 과연 그것이 그렇게 미안해 할 일인가.


사회전반에서 발견되는 문제다. 공장노동자는 과연 그저 사용자로부터 월급만 받아먹는 존재인가. 누군가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다. 그 가운데는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도 적지 않다. 깡그리 무시한다.


새삼 확인한다. 얼마나 한국사회에서 사람의 존재란 하찮은가. 사람이 가진 지식과 경험과 기술의 가치란 이처럼 보잘 것 없는가. 보이는 것만을 보고 직접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인정한다. 즉물적 세계다. 일차원의 사고다. 덕분에 컴퓨터는 잘 쓰고 있다.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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