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이 상당했던 이유는 사실 별 것 아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사회주의자들 뿐이었다. 심지어 소련의 경우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계급해방의 연장에서 제국주의의 압제와 착취에 신음하는 약소민족들을 해방시키겠다며 적극적으로 식민지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의 호치민도 이때 소련으로 가서 스탈린과 만나고 있었다.


고립무원이었다. 지금 서방이라 불리우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야 당장 자신들부터 식민지배를 하던 입장이었으니 조선의 독립투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중국은 청이 망하고 여러 군벌이 난립하며 당장 자신들부터 일본의 침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 항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의기투합하여 중국공산당과 손잡은 독립운동가들도 적지 않았다. 일단 중국공산당을 도와서 일본을 무찌르고 나아가 조선과 조선인을 해방시키겠다. 바로 같은 목적에서 일본의 사회주의자들도 자국의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해 제국주의의 압제에 신음하던 조선의 민중과 연대하려 했었다. 이른바 국제사회주의라는 것일 터다. 자본가와 제국주의라는 압제자들과 싸우려는 자신들은 오로지 동지고 형제들이다. 다만 일본의 사회주의는 해방도 되기 전에 일본이 고도로 군국주의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일본 국내에서도 사라지고 있었다.


더구나 만주침략이 시작되고 일본제국주의의 지배가 더욱 강화되며 식민지 조선 내부의 상황은 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사회주의자들은 이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마지막까지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던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을 유린하고 서구열강을 패배시키며 동남아시아까지 석권한 일본제국주의의 위세에 눌리며 조금씩 이탈자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유럽의 열강들마저 패배시키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무찌르고 독립을 이룰 수 없을 테니 그런 일본에 협력함으로써 최소한의 자치라도 얻어내자. 미국과 유럽의 열강들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일본의 힘을 배우고 일본의 지배 아래서 조선인의 자치와 발전을 이루도록 하자. 사실 일제강점기 말 친일로 전향한 이들에 대해서는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어느 쪽이든 현실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을 위한 최선인가 고민한 결과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말 독립운동을 하려면 사회주의자여야 했고 사회주의자들만이 끝까지 독립운동을 하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나마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거의가 친일로 돌아섰거나 최소한 타협노선을 걷고 있었기에 사실상 국내에 독립운동이라고는 좌익계열밖에 남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오죽하면 임시정부가 귀국하며 당시 조선 국내에 남았던 이들은 모두 친일파라며 일갈하고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좌익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겠다 말하고 있으니. 그러면 좌익계열을 제외하고 당시 식민지 조선에 남았던 독립운동가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이며,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틀어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까 뉴라이트에서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며 옹호론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빼면 조선인들은 그다지 식민지배에 항거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니까.


해방 이후 노선투쟁은 노선투쟁이고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이다. 일단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이루고 난 뒤에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배제한 바로 그 해방까지의 행적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여운형은 온전한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단지 그나마 당시 조선에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사회주의자들 밖에 없었기에 그들과 연대해서 하루빨리 조선의 안정을 되찾고 국가로서의 체계를 갖추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시도들까지 깡그리 부정한다면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역사에 순종과 타협 말고 무엇이 남겠는가 하는 것이다.


좌파라서 안된다? 그 좌파들이 독립운동을 했으니까. 빨갱이 때려잡던 우익 우국지사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에 굴종하거나 혹은 타협하며 조선의 인민들을 약탈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 빨갱이 때려잡던 손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까지 때려잡고 있었다. 그래서 인정하기 싫은 것일 게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빨갱이 때려잡던 그 우국지사들에 있다. 나경원의 발언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다. 한국사회의 뿌리는 좌파 독립운동가가 아닌 그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앞잡이들에게 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역사다.


정말 뭣같은 것이다. 그래도 미국이든 유럽이든 서방의 열강들이 우리의 독립을 도왔었다면. 심지어 어느 개신교인은 일제의 지배가 있었기에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며 긍정하기도 한다. 차라리 개신교 있는 일제의 지배가 개신교 없는 독립보다 낫다. 현실이 그랬었다.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았고 단지 사회주의자들만이 우리를 도우려 했었다. 모두가 깡그리 잊으려 하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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