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열린민주당을 지지하겠다 말한 것은 그냥 홧김에 내지른 것에 가까웠었다. 범진보 비례연합정당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동의하던 입장에서 녹색당과 미래당 같은 선명한 정책적 지향과 대표성을 가지는 소수정당들을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 올려 태워 원내진출을 돕는 것이야 말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채우는 가장 이상적인 대안으로 여겨졌던 때문이었다. 그럼으로써 사실상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하면서 범진보진영의 단합된 지지를 민주당이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다시피 그 시도는 좌절되었고 범진보 비례연합정당은 말 그대로 민주당의 비례정당으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내 실망감은 그때 썼던 글들을 보면 알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름대로 여러 경로로 당시 상황에 대해 들어 알게 되면서 감정이 정리됨과 동시에 민주당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단 당장 마음이 가는 것은 보다 선명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열린민주당인데, 그러나 역시 또한 말한 것처럼 더불어시민당의 비례후보 후순위들이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을 걸고 검증한 원래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라는 사실이 걸리게 된다. 말하자면 동대문을 지역구에서 민병두 의원을 지지하는 민주당 당원의 처지와 얼추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마음은 민병두 의원을 지지하는데 자신의 소속은 민주당 당원이다. 민주당 당원으로서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해야겠지만 민병두 의원도 저버릴 수 없다. 한 마디로 민주당이라는 당에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민병두라는 개인에 투표할 것인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의 승리만을 바랄 것인가? 아니면 당보다 개인으로서 나의 의지를 우선할 것인가?
그리고 결론은 내려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고민할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열린민주당이 아닌 더불어시민당 - 당시는 범진보 비례연합정당을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당연히 민주당 당원으로서 민주당 차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당위에 따른 것이었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열린우리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 혹은 통합민주당 같이 지지자를 철저히 배신하며 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 판단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선거 때마다 민주당 이외의 후보들에 표를 주고는 했었다. 도저히 저놈들에게 내 소중한 표를 줄 수 없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겠기에 차차리 아무 다른 소수정당 가운데 골라서 표를 주던가 하자. 그런데 웬걸?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부터 조금씩 당을 일신해 온 결과 이제 민주당은 작은 실망은 있을지언정 큰 배신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가 되었다. 적당히 양보하며 적당히 타협하면 당의 입장에 내가 맞추지 못할 것도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당원으로서 그런 민주당의 결정을 지지하며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즉 중요한 것은 과연 내 한 표로 인한 결과가 내가 속한 민주당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의 여부란 것이다. 아니 얼마나가 아니라 기여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인 것이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더구나 원래 같은 진영에 속했덧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출마한 이들이 아니란 것이다. 그들의 승리는 절대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승리야 말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패배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실제 많은 언론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열린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을 두고 마치 더불어민주당이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받는 듯한 프레임을 만드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더불어시민당이 명분도 없고 여러 문제들을 내보이고 있기에 지지자들마저 외면하면서 열린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더불어시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불어시민당을 함께 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더구나 선거가 끝나고 결과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의석을 합한 만큼이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고 지원한 더불어민주당의 몫이 되는 것이다. 열린민주당의 승리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지지자의 승리는 될지언정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여겨지기 힘들다. 그래서 이해찬 대표도 자칫 당대당 통합의 경우 계파정치가 부활할 것을 걱정한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이만큼의 득표와 의석수를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지분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문재인 지지자 사이에서나 같은 정당이지 결국 당대당 통합 상황이 되면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별개의 정당이 되는 것이다. 그 혼란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무엇보다 열린민주당이 가져간 만큼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그 승리마저 온전히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현재 문재인 정부에게 있어 여당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받는 국민적 지지야 말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인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통해 얻게 될 의석수야 말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되는 것이다. 열린민주당은 곁다리다. 그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지지자들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한 여당이 얼마나 대통령을 도와서 힘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총선을 진두에서 지휘했던 지도부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소한 당원이라면 당의 승리를 위해서 더불어시민당에 투표해야 한다.
김홍걸은 진짜 싫다. 김홍걸만은 절대 당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딱 김홍걸 앞순위까지만. 그러나 그건 내 자신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민주당 당원이 되기로 결심히고 지금껏 꾸준히 당비를 납부해 오고 있는 것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내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되 결과에 대해 승복하겠다는 서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들지 않는 후보가 나왔다고 다른 당의 후보를 찍어야 할까? 내가 아무리 임동호를 욕하고 김해영을 욕해도, 아니 혹시라도 금태섭이 내가 사는 지역에서 경선에서 승리해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되어 출마했다면 당원으로서 당연히 당이 결정한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결정과정에서는 서로 쌍욕하고 멱살까지 잡더라도 일단 결정이 나고 나면 승복하는 것이 당원으로서 책임이고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말마따나 열린민주당의 비례후보들이 참으로 섹시하더란 것이다. 절로 눈길이 갈 정도로 달콤하고 향기롭다. 그래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더구나 윤석열 검찰의 선거개입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저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한 마디가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하긴 민주당이라고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고작 김어준도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음모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다. 오히려 민주당 차원에서 사전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 파괴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열린민주당에 기회가 되리라 여겼는데 더불어시민당에 더 기회가 되는 것일까? 지금 상황이라면 굳이 열린민주당 아니더라도 더불어시민당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사실 결론은 이미 며칠전에 나와 있었다. 다만 완전히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벌써 며칠 전에도 사전투표를 하면 당연히 더불어시민당에 표를 주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고는 했었다. 하지만 워낙 아직도 당비를 내는 당원이라. 지금 비례후보 가운데도 내가 투표해서 선출된 비례후보가 또 몇 명 있기도 하다. 책임을 져야 한다. 이래서 당원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다. 마음가는대로만 할 거라면 당원 같은 건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지해서 고른 후보들이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전투표를 앞두고 명확히 밝힌다. 당원이고 지지자라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승리에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