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재명을 못미더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너무 계산이 빠르다는 것이다. 이해에 대한 판단이 빠르다. 신념이나 가치보다 유불리와 손익만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한 마디로 진심이 안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권도라 하는 것이다. 이재명에게 정치는 기술이다.

이낙연을 믿었던 이유는 특유의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행보에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조차 나름의 정치적 계산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낙연 지지자들도 인정하는 바일 것이다. 이명박근혜 사면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계산과 계산이, 기술과 기술이 부딪히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더 계산도 기술도 능숙한 사람을 선택하면 된다.

이재명은 자기정치를 위해 정부정책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영리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인상을 주면서 민주당 지지층에는 홍남기로 대표되는 기재부 경제관료들에 대한 질타로 느끼게 했었다.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음으써 부담을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한다. 반면 이낙연은 어떤가? 대통령의 사면 결정을 압박하려 당론으로 정하고 각계 인사들과 만나 설득하겠다 선언한 상태다. 벌써 언론은 지금 상황을 사면 정국이라 부르며 대통령의 반응만 기다리는 중이다.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부담 만큼 후과도 그대로 이낙연에게 돌아간다. 과연 정치인으로서 기술적으로 성숙한 판단이었는가.

그래서 더욱 이번 이낙연의 사면 발언에 대한 이재명의 반응이 주목받는 것이다. 선물을 받아들이는 정석이라 할 수 있다. 준다는데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 모두가 안다. 이재명이 이명박근혜 사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진심이든 어쨌든 그동안 해 온 말들이 있으니 이번에도 나올 말은 뻔하다. 그런데도 자제한다. 자기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자칫 사면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을 압박하거나 여당의 두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이낙연의 월권으로 인해 빛을 발한다. 딱 이낙연에 실망한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살 만한 발언이다.

배운 것이다. 그보다는 역시 영민하게 계산해낸 것이다. 지금이라면 이낙연에게 집중된 대통령 지지층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지 모른다. 더구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당내 원내인사들의 호감도 적립해 놓을 수 있다. 누가 더 대통령을 위하고 배려하는가.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는가. 지금은 신중하고 주의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이낙연이 성급하고 과격해지니 딱 그 반대로 간다. 이낙연이 이재명 의식하다가 헛발질하니 침착하게 받아먹는 것이 연륜까지 느껴진다.

유시민의 말이 옳다. 진정성이라는 게 사실 현실에서 큰 의미기 없는 것이다. 드러나는 것은 행동이고 결과다. 더구나 둘 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면 결국 나타난 결과를 통해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누가 더 기술적으로 무난하게 거슬리지 않게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결과를 내놓았는가. 이재명 적립 20점이다. 원래 마이너스라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래도 정치인으로서 성장했다는 것은 알겠다. 이낙연에게 기대한 모습이었는데.

오늘 최고위원회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까지 끌고 들어간다. 진짜 당론으로 사면이 결정되면 민주당은 끝이다. 다시는 적폐청산을 입밖에 내놓을 수 없다. 물론 어떤 놈들은 적폐청산이 윤석열을 위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을 테지만. 박살나봐야 다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겪어봐야 진짜 가치를 안다. 빌어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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