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내가 평사원이다. 과장이 시켜서 그동안 해 오던 일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미뤄지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처리하려고 보니 이미 결제까지 끝나 있었다. 그것도 내가 해 오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벌써 실행까지 되고 있다.

 

과장을 찾아가 묻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러면 과장은 뭐라 대답할까?

 

"아, 그거 내가 처리했어.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돼!"

 

왜 나 모르게 멋대로 처리했느냐 물어봐야 좋은 말 듣기 어려울 것이다. 원래 과장의 권한 아래 있던 일이었고 자기는 단지 지시에 따라 수행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처리할 지 결정할 권한도 과장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시키는 다른 누군가에게 시키는 모두 관리자인 과장의 재량 아래 속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하던 대로 처리했어도 과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해야 했을 지 모르는 상황이란 것이다.

 

부대에서 사병이 당직을 서다가 휴가자가 복귀하지 않은 걸 알았다. 금요일에 복귀했어야 했는데 일요일인 오늘도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전화걸어 확인하니 집이라 한다. 그래서 미복귀라 여기고 상급자에게 연락했더니 휴가를 연기해주었다 한다. 과연 사병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나에게 말도 않고 휴가자의 휴가를 연장시켜 줬다고 항의해야 하겠는가? 원래는 안되는 휴가연장을 해주었으니 장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는가? 기껏 할 수 있는 말이란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지 않겠느냐는 한 마디 뿐인 것이다. 일개 사병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병은 그저 권한을 가진 장교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그냥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지휘관 입장에서 내가 그렇게 판단해서 결정했다는 한 마디 통보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묻지도 않는데 일일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이미 다른 사병에게 전달했는데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어찌되었거나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휴가가 연장되었는가는 권한도 없는 사병이 알 필요가 없는 책임 밖의 일이란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몰랐으니 부정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으니 사후에 부정하게 연장된 것이다. 도대체 자기를 뭐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한 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군대 갔다 온 인간들 군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거의 꿰뚫고 있을 것이다. 그럴만한 주제들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행정병들조차 굳이 간부들이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들이 거의 태반이란 것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다. 사병이란 그런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뭘 그리 많이 잘 알아서 그리도 자신있게 떠들고 하는 것인가.

 

일단 당일 당직이 아니었다는 게 하나, 더구나 일개 사병으로 휴가연장과 관련해서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게 하나, 마지막으로 지휘관 입장에서 일개 사병에게 그런 것까지 사전에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이 또 하나, 그런 이유로 뭐다?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신빙성은 없다. 군대 갔다온 놈들이 많다는 게 이런 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다 안다고 단정해 버리면 정작 진짜가 숨어 버릴 수 있다.

 

아무튼 요즘 취직한다고 크게 신경쓰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아보고 나니 이렇게 어이없는 일도 드물다. 진짜 의미없다. 정의당까지 이런 걸 물었단 말이지? 하여튼 답이 없다. 병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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