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국경이라는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예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을 누군가 넘으려 한다. 미국과 멕시코 정부로부터 어떤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무단으로 국경을 넘으려다가 그만 국경을 경계하던 미국 경찰에 의해 사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면 과연 멕시코 정부는 자국 국민을 사살한 미국 정부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국경을 무단으로 넘다가 걸린 밀입국자에 대해 사살도 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고지하고 있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것이 바로 주권이라는 것이다. 국경 너머는 상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다. 아무리 자국 국민이라도 자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에 정부의 역할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양국의 국력 차이가 너무 크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멕시코 정부에서 자국 국경을 넘는 미국 국민은 모두 사살하겠다 선언했다면 미국 정부로서도 선택은 두 가지 뿐인 것이다. 멕시코 정부의 주권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자국 국민의 이동을 제한하거나. 전자의 선택이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침략이고 전쟁인 것이다. 자국 국민을 살해하려는 너희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에 너희 영토 안에서 우리가 의도하는 바를 강제로라도 이루겠다.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넘어왔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 북한 군인이 판문점을 통해 넘어 올 때도 바로 앞에서 총격을 하던 북한 군인들이 해당 병사가 분계선을 넘는 순간 바로 철수하는 모습도 보인 바 있었다. 아무리 탈영병이고 조국의 배신자라도 분계선을 넘었는데 계속해서 총격을 가하다가는 자칫 한국 정부를 상대로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 안이기에 그 안에서 군사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과연 북한군이 배신자를 잡겠다고 한국 영토 안에서까지 총격을 한다면 한국 정부 입장에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행위를 용납한다면 그건 더이상 주권국가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연평도 포격 당시 전시작전권이 없었음에도 북한군을 상대로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자위권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누구도 북한을 상대로 포격을 가하고 상당한 피해를 입힌 한국군의 행위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월북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월북이라면 의도를 가지고 북한의 국경을 침범한 것이지만 표류라면 단지 사고인 것이다. 아무 의도 없이 자신과 상관없는 우연한 사고나 재해에 의해 북한 영토까지 떠밀려 온 이른바 난민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을 발견할 경우 인도적으로 구조하여 보호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국적인 규약에 따른 당사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가 아닌 속아서 넘어왔다는 류경식당 종업원들에 대해서만은 북한 정부가 아직도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던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속아서 남한으로 넘어 오게 된 경우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북한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다. 물론 역시나 남북한간의 특수한 사정이 그런 인도적인 규약 따위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테지만 말이다. 그동안 의도하지 않은 표류를 월남이나 남파로 몰아서 정치적으로 이용한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북한군과 마주한 상황이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워서 모면해보고자 급조해서 월북을 말했다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표류했다고 말하는 순간 어찌되었거나 북한 당국에게는 피해자를 구조하여 보호한 뒤 절차를 밟아 남한 정부에 인계해야 할 인도적 의무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아무리 막나가는 북한 군부라도 표류자를 함부로 사살해야겠다 결정할 수 없었다. 최소한 더 위쪽에 먼저 물어보고 판단을 들은 뒤 그에 따르지 않으면 자칫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해상에서 발견한 불상자의 입에서 월북의사가 나왔고 따라서 의도하여 국경을 넘은 것이 확실해진 이상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북한 당국의 결정에 넘겨지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북한 정부에 망명의사를 밝힌 것인데 받아들이든 말든 거기에 한국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인이 한국 정부에 망명을 요청해 왔는데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중국정부가 군대를 보내서 강제로 되찾아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사 거짓이었어도 월북의사를 밝힌 이상 따라서 더욱 한국 정부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지는 것이다. 송환요청도 하지 못한다. 당사자가 북한으로 넘어가고 싶다는데 의사에 반해서 송환요청을 하는 것도 정당한 사유 없이는 어렵다.

 

워낙 오랜동안 상대 국경을 넘어가는 것은 차라리 총을 쏴서라도 말리려 했으면서 넘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탓에. 당연히 넘어갔으면 환영해 주겠거니. 넘어왔으니 환영해 주겠거니. 그런데 중국인 밀항자들에게도 그러는가? 러시아인 밀항자들에게까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환영의사를 밝히는가? 그나마 대한민국 정부가 온건한 편이라 아무일없이 추방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하고 혹시 감염되었을지 모르는 중국인이 몰래 국경을 넘다가 발각되었으면 또 모르는 것이다. 자칫 접촉이라도 했다가 감염될 수 있으면 권한을 가진 선에서 판단하고 처리한 뒤 보고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국이 항의하려면 한국 정부의 방침이 그렇다 말하면 된다. 단, 그로 인한 중국 정부의 보복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에만. 아닌 경우라면 김정은처럼 납죽 엎드려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아무튼 그래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군대 있을 때 경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통제를 시도하고 안되면 바로 쏴 버리라고 선임이나 지휘관으로부터 교육받았던 세대다. 당연하게 월북자 가족이면 연좌되어 차별받아야 하고, 월북자의 작품이면 어느것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기며 자랐던 세대인 것이다. 하물며 월북자의 가족이 자기 가족 죽었다고 정부를 탓하며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경우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언론이 그런 월북자의 편을 들어주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가 월북자의 편에서 월북자도 국민이라며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월북을 시도하던 어느 국민은 군인의 총에 맞어 포상휴가와 기념비가 되어 사라졌다.

 

일단 월북자라는 점에서 동정심이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고, 그런데도 오히려 정부탓을 하면서 정치권과 언론을 등에 업으려는 모습에서 다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언론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하루 먼저 알아서 다 보도하고 있었다. 언론이 먼저 받아보고 그 다음에 대통령에게 전해진다. 월북의 증거가 있느냐? 자기들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당시 상황이 그래서 거짓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의미없다. 거짓말이었어도 이미 한국 정부의 보호를 거부하고 북한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이상 처분의 권한은 북한에게로 넘어간다. 인도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 책임을 묻기란 많이 곤란하다. 더구나 당사자도 아닌 한국 정부임에야.

 

북한 정부의 책임은 하나다.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 북한 영토로 멋대로 들어오려 할 경우 자칫 사살당할지 모른다. 더욱 엄격하게 국경을 관리하여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월경자를 사살할 수도 있다. 아마 그랬다면 월북의 의사가 있어도 한 번 더 망설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말 없다가 느닷없이 월북자라 하니 마음놓고 쏴 죽였다면, 더구나 시신까지 훼손했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너무 억울한 것이다. 죽을 줄 알고 간 것이 아니라 살려고 국경을 넘었던 것이었다. 딱 거기까지.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는 입장이면 또 이해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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