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1억짜리 전세집을 예로 들어보자. 전세금 1억을 모으려면 도대체 얼마씩 얼마나 모아야 하는 것일까? 대충 지금 최저임금 기준으로 한 달 실수령액 200 정도를 기준으로 매달 100만원씩 모아도 무려 100개월, 햇수로 계산하면 8년 4개월 쯤 된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모아도 사실상 매달 100만원씩을 주거비 명목으로 쓰지 않고 모아야 1억짜리 전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달에 100만원이라니, 월급의 절반을 쓰지도 못하고 모아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아마 그리 말할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모아놓은 1억은 남아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1억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가? 전세 한 번 들어가고 말 것인가? 기존의 전세계약도 연장해야 하고, 또 계약이 끝나면 다른 전세집도 알아봐야 한다. 그때마다 기존의 전세금은 그대로 인상분을 더 지불해야 할 텐데 그 돈까지 계속해서 정해진 급여 안에서 모아야 한다. 사실상 월세다. 그 돈이 몇 년 전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기준으로 2년에 5%정도였는데 그것도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심지어 세입자들까지 나서서 난리였었다. 그 정도로는 안된다는 것이니 그 이상을 법으로 보장된 4년 뒤까지 생각해서 계속해서 모아야만 한다. 그렇게 죽는 그 순간까지 써보지도 못할 돈을 전세금으로 묻어둔 채 인상분을 모아야 하는 구조다.

 

물론 도중에 잘 풀려서 전세금에 보태서 집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모아서 어디 아주 싼 아파트 한 2억에 샀다고 쳐보자. 역시 200만원 월급 기준으로 2억을 모으려면 한 달에 100만원씩 16년 8개월을 모아야 한다. 그냥 산수다.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다. 당장 집이 2억이라는 것부터 혼자 살 것 아니면 대부분 사람들에게 고려의 대상조차 아닐 것이다. 2억짜리 자산이 생겼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집을 팔아야 생기는 이익이다. 완전한 주거의 안정이 보장되어 죽을 때까지 평생 일정한 월세만 세면서 살고 싶을 때까지 마음껏 쓰며 살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까지 돈을 모아서 집을 사야 할 의미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내가 전세라는 제도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당장 부모님이 따로 나와 살 때 전세금까지 마련해 줄 형편이 아니었던 터라 처음부터 내가 벌어서 월세까지 내야 했던 때문이었다. 최저임금도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한 달에 얼마씩 모으면 단칸방 전세금이라도 모을 수 있을까? 괜히 사람들이 전세금 사기로 날렸다고 자살하고 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한 달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쓰지도 않고 모아야 젊은 나이에 전세금도 모으고 하는 것이다. 진짜 먹고 입고 쓰는 돈을 최대한 아껴가며 모았는데 날렸으면 그때 느꼈을 절망감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서 전세 얻고, 그리고 다시 악착같이 모아서 전세금 올려주고, 그렇게 또 악착같이 모아서 내 집 마련하면... 결국 좋은 것은 내 자식들 아니겠는가. 결혼도 않고 혼자 살 것이라면 그렇게 집이라고 남겨봐야 물려줄 사람도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일정한 월세만 내고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있다면 더 여유롭게 벌어놓은 돈 다 쓰고 깔끔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전세든 내집마련이든 -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내집마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어차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결국은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그들에게 물려줄 자산으로서 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혼자 살다가 물려줄 사람 없이 죽을 것이면 내 집이라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영구적으로 임대해서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쪽이 더 나 자신의 이해와도 맞는다. 더구나 부모들도 자식의 부양을 바라지 않고 자식들도 부모의 상속에 기대지 않는 개인주의사회에서는 더욱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더 많은 집을 공급하라면서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적대적인 젊은 세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사실 이 이야기는 벌써 10년도 더 전에 내집도 필요없고 그냥 월세전세 살면서 쓰고싶은 만큼 쓰다 가겠다는 세대들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던 것이었다. 흥미롭지 않은가.

 

아무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도 한국사회에서 결혼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일 수 있다. 당장 일본만 해도 결혼하면 관공서에 신고하고 자기들 경제수준에 있는 월세 아무거나 얻으면 된다. 아마 월세 몇 달 분을 사례금조로 지불하고 밀리지만 않으면 계속해서 살 수 있는 구조일 것이다. 그러므로 딱히 결혼했다고 전세집 마련하기 위해 집에 손을 벌릴 필요도 없고, 전세금 마련하겠다고 결혼을 미룰 이유도 없다. 그냥 마음 맞아서 하고 싶으면 결혼해서 적당한 월세집 찾아 들어가면 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시작부터 전세로 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손도 벌려야 하고, 전세금 부담에 결혼도 늦춰야 하고, 그러다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마저 생기게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월세로 하기에는 전세에 비해 당장의 부담이 또한 너무 크다. 전세가 모으기 어려워 스렇지 일단 전세로 들어가면 인상분을 생각하더라도 상당히 경제적인 부담이 줄어드는 이점이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인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전세를 옹호하는, 특히 젊은 세대들의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세가 서민들에게 유리한 제도일 수 있는 것은 맞다. 단, 그것은 이미 전세금을 마련한 경우다. 그런데 그래도 혼자서 살 만한 전세집을 구하려 해도 최소 몇 천만 원 이상의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막 사회에 나와 직장을 얻은 초년생이 그 돈을 모으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 부모의 지원 없이 오로지 자기 능력만으로 그 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아껴가며 악착같이 모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부모의 지원을 배제했을 때도 전세는 일반 서민들에게, 특히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에게 유리한 제도일 것인가? 더구나 임대차보호법에 반대하던 논리 그대로 5% 정도의 인상률에 4년이나 계약을 보장해주면 전세라는 제도를 유지할 매리트가 없을 만큼 불안한 제도이기까지 하다.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면서 그 이상의 인상분을 마련해 올려주어야 한다. 그동안 그 돈으로 먹고 입고 쓰고 혹은 투자를 잘 해서 자산을 불리는 경우를 가정해 보라. 이익일까?

 

뭔가 요즘 청년세대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을 다시 재생시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PC와 관련해서 저들이 말하는 그동안 문제없이 잘 굴러왔는데 괜히 세상만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듣고 있으면 진짜 나이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전세가 서민을 위한 제도이던 것은 아직 금리도 높고, 따라서 급여도 빠르게 올랐던, 그래서 목돈을 묻어두고 있어도 그만큼 빠르게 모아서 더 많은 돈을 모아서 집도 살 수 있었던 시절에나 통하던 이야기다. 그때는 전세금을 목돈으로 받아서 이자만 받아도 집주인들 역시 안정적으로 월세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상황이 전혀 다른데도 예전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도일 것인가. 

 

아무튼 결론은 이거다. 내가 살고 싶은 만큼 일정한 임대료만 내면서 이사하지 않고 정착해 살 수 있으면 그냥 임대주택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기상환한다고 번 돈 대부분을 은행에 때려넣느라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 사먹는 지지리 궁상인 지금 처지를 본다면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매달 일정하게 월세 내면서 먹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더 여유롭게 쓰는 쪽이 더 내 삶의 질을 위해서도 낫다. 아파트는 사는 게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물며 전세야. 결혼해서 자식 낳으면 그나마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 역시 나와는 상관없지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