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그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남성을 위한 정책이란 게 뭔데? 어떤 정책을 펴야 20대 남성을 위한 것이 될까?


고용에서 남성할당제라도 할까? 그런데 이미 신규채용자 가운데 남성의 비중이 여성보다 훨씬 더 높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법도 그렇게 강제하지 않고 현실도 남성과 여성이 5:5 비율로 딱 맞게 채용하는 경우란 매우 드물다. 오히려 공무원이나 교사 같이 여성의 비중이 더 높은 경우는 성별균형을 위해 남성을 특별히 추가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인원으로 가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남성폭력방지법은 어떨까? 그런데 평균적인 남성들보다 체격도 작고 힘도 약한 나지만 심지어 화제가 된 유튜브 여성파워리프터조차 막상 싸우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는다. 사실 많은 남성들이 여성경찰이나 여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여성경찰이 과연 범죄자를 제압할 수나 있을까? 여군이 만일의 상황에 적과 전투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의 성적 발언이나 행위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은 자신이 말한대로 행동에 옮길 힘이 있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남성의 말이나 사소한 행동도 여성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지만 남성에게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여성들이 불쾌해야 할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를테면 남성을 대상으로 특정한 범죄는 그리 흔치 않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특정한 범죄는 남성 자신이 인지할 정도로 매우 빈번하다. 성범죄의 대부분은 여성을 대상으로 특정하여 일어나는 것들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나, 혹은 혼자서 길을 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저질러지는 범죄의 빈도나 흉악성은 남성들마저 주변의 여성들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다. 그래서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남성들도 여성을 집앞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주려는 것 아니던가. 혹시라도 밤늦게 남자들과 함께 있으면 걱정되고, 혼자서 자취하면 문단속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신경쓰이는 것이다. 그 밖의 범죄들은 특정한 성별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그냥 가장 흔하게 눈에 뜨이는 대상이 남성이기 때문에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 범죄피해자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남성인 이유는 그만큼 여성들이 그렇지 않아도 범죄위험에 대한 자기방어로 바깥활동을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같은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범죄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법률과 제도를 통해 예방과 처벌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를테면 MAN과 WOMAN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작가도 남성은 그냥 작가인데 여성은 굳이 여류작가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남성은 그냥 기자고 여성은 여기자여야 했다. 마찬가지로 그냥 뭉뚱그려 20대를 대상으로 청년정책이라 하고, 그 가운데 굳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들만 여성정책이라 부른다. 그러면 청년정책들은 20대 남성들과 전혀 무관한가. 당장 복무중인 군인에 대한 처우개성도 대부분 20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20대 남성이라 하지 않고 복무중인 군인이라 부른다. 청년정책 역시 굳이 20대 남성을 특정하지 않고 단지 여성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이 20대 남성들은 전혀 아무것도 배려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창업지원에서 여성의 가산점이 높은 것도 그만큼 가산점을 줘도 창업하려는 여성들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않는 것일까?


창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도 기술이 있어아 나온다. 그리고 창업할 수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려면 일단 대학부터 이공계로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 알지 않은가? 아직도 이공계로 진학하는 여성의 수가 아직도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아무것도 없이 그냥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업하고 지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여성들도 창업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라. 아이디어를 내놓으라. 그래도 사실 창업하는 여성의 수는 현실에서 매우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정히 그렇게 여성에게 주어지는 가산점이 아까우면 창업하면서 여성을 함께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이다. 여성과 함께 하면 남성들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가산점은 여성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제도를 이용하는가는 자기들 하기 나름이다.


청년고용에 쓰이는 예산들도 성별과 상관없이 실제 고용된 청년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청년취업지원예산 역시 특별히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취업하려는 모든 특정연령의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 대상에는 남성도 포함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취업에서의 어려움이나 그로 인한 포기까지 고려하면 남성들이 받는 혜택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성이 아닌 청년이니까. 아마 정부도 답답할 것이다. 20대 남성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라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특별히 20대 남성들만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금 현실에서 20대 남성들만을 특정해서 더 좋게,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공정할 수 있는 것일까? 난감한 문제인 것이다. 도대체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민주당과 정부 안에 있는 여성주의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논리의 문제라기보다 감정의 문제다. 실제의 문제라기보다 정서의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성을 모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남성을 무시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주장들이 나오는가? 바로 남성을 적대하고 혐오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극단적인 여성주의 진영과 그를 옹호하는 제도권내 여성주의자들 때문이다. 그런 여성들을 위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남성을 적대하고 혐오하는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목적과 의도 때문이다. 남성을 억압하고 남성을 차별하고 그나마 남성들이 누리던 것들마저 빼앗아가려는 그들의 악의에 의한 것이다. 


여성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생물학적인 한계로 현실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모르는가면 대부분 남성들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직장생활이란 것을 하다 보면 여성들의 위치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불안하고 더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치우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남성을 포함한 청년대책 이외에 특별히 여성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그 의도다. 그리고 불만을 가지는 것은 여성들의 현재다. 몇 번이나 지적했었다. 사실 이해는 한다. 그만큼 열악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아예 자포자기한다. 그렇더라도 그런 여성들의 모습이 모든 여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성갈등에 대한 발언도 그런 점에서 틀린 것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공포와 증오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감정들이다. 공포가 공포를 낳고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 끊임없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서로에 대한 갈등과 충돌만 부추기고 만다. 그러면 지금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실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처럼 그저 청년정책들만 청년들을 위해서 잘 구상해서 입안하고 실행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당과 정부에 있는 여성주의자들의 선택이다. 여성의 남성에 대한 혐오와 증오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여성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모두 아우르며 모두가 화합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여성만 대표해서 여당의, 그리고 정부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기들이 잘해서 올라간 자리도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불리한 현실에 대한 주류의 동정과 배려에 힘입어서. 그래서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되는 것인가. 주체적인 인간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의 책임이란 것을 생각한다.


아무튼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20대 남성을 위한 정책들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20대 남성이란 다양한 이름을 가진 존재다. 무엇보다 여전히 현실은 굳이 남성을 특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성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가만 있어도 여성보다 더 취업도 잘 되고, 진급도 잘 되고, 더 안전하게, 더 선택지를 넓히며 살 수 있다. 다만 남성과 여성을 아울려 모든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여성을 그보다 조금 더 배려하자. 그마저 문제가 된다면 사실 답이 없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는 선생은 문제있는 선생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논리의 문제가 아니니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그 답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비난하고 욕할 것이다. 정작 책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를 외면하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사악한 것들이다. 혐오를 억누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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