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여성이란 단지 자궁에 지나지 않았었다. 오로지 번식을 위한 수단이고 도구였다. 여성의 가치란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한 가지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심지어 아이를 여럿 낳았는데도 그 성별만을 이유로 내쫓기는 경우마저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아내의 자격도 며느리의 자격도 어머니의 자격도 없다. 그들은 단지 자궁으로써 여성을 맞아들였고 가족으로 함께 살았던 것에 불과했다.


분명 모성본능이라는 것은 있을 것이다. 아니었다면 태어난 순간 그토록 작고 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들이 자연의 엄혹함 속에서 무사히 자라 성체가 되고 지금까지 번성해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장차 그 유전자를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존재이기에 어미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새끼들을 지켰고 보살폈다. 그 과정에서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고 희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새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어미들의 선택이기도 했던 것이다. 때로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미들은 새끼를 죽이고 심지어 잡아먹기도 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상 보더라도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모성을 포기해야만 했던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었다. 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도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갓태어난 아이를 살해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산업혁명 당시 유럽에서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들이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보살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신 살해해 줄 업자를 찾아나서기도 했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그래서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전쟁통에 부모가 죽어서 고아가 된 경우도 당연히 많았지만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부모들이 그냥 버리고 떠난 탓에 고아가 된 경우도 결코 적지 않았었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이야기도 가난하던 시절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 있었던 딸의 존재에 대한 자조적인 위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모정이란 여성에게 반드시 무엇보다 우선해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가치일 것인가.


자궁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 자궁 안의 태아는 당연히 자신과 별개의 존재다. 자궁 안에 있는 동안은 자신의 일부지만 자궁에서 벗어난 순간 자신과 분리되어 존재하게 된다. 당장 자신의 삶이 있다. 자신의 목적과 지향과 가치가 있다. 자신이 살아야 하고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 자신이 오로지 존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와 함께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이유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 더이상 자신의 삶도 존엄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모성이라는 한 가지만을 위해 끝까지 아이를 지키며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이를 지키는 순간 자신의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지워진 의무고 책임이다. 낙태로 처벌받는 것도 오로지 아이를 임신했던 여성과 그 아이를 지워준 의사 뿐이다. 만일 모성본능이란 것이 진짜 있다면 어째서 여성은 낙태라는 선택을 했어야만 했던 것일까? 그나마 낙태라도 할 수 있는 시한을 놓치고 아무 대책없이 낳은 다음 직접 살해하거나 아니면 유기하여 죽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일 그들에게 모성본능이란 것이 없어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면 모성본능이란 사기일지 모른다. 여성을 아이에게 묶어두기 위한 가장 오랜 거짓말인 것이다. 모성본능이라는 것이 있는데도 그런 선택을 해야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낙태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그것일 것이다. 여성에게 자연이 부여한 모성본능이란 것이 있다면 어째서 많은 여성들이 그를 거스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경우 어미들도 새끼들을 죽이고 잡아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상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자신의 자식을 버리고 죽이며 생존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 진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임신한 아이를 지우고 그 충격으로 동거하던 남자와도 헤어진 경우를 알고 있다. 여성에게 있어서도 낙태란 상당히 큰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도 낙태를 해야 한다. 낳을 수 없으니까. 낳아도 기를 수 없으니까. 낳을 수도 있고 기를 수도 있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심지어 존재를 포기해야만 하니까.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어야 할 테고, 하던 일도 그만두어야 할 지도 모르고,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을 오로지 여성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혼자서 임신한 것도 아닌데 남성에게는 사실상 아무 책임도 부담도 지워지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사회적인 도덕적 책임을 지우면서도 그에 대해서 사회도 국가도 크게 도움이 될만한 지원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갓태어난 아이에게 태어난 환경과 조건을 이유로 왜 태어났느냐는 소리를 걱정을 담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아이와 산모를 위해서 정성스레 해 줄 수 있는 사회에서 그냥 무작정 어머니이니 아이를 낳으라 말하고 있다. 어째서? 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지 자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만이 그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낙태죄를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존엄과 인권과 관련한 이슈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 혼자서 임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여성 혼자서 낳아서 길러야 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판단과 선택 역시 온전히 여성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낳을 것인가? 어머니로서 낳아서 끝까지 책임지고 기를 것인가?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할 것인가? 이미 아이를 낳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릴 많은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인가? 자궁마저도 온전히 여성의 소유라면. 태어날 아이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아이를 임신한 여성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배타적인 자신의 권리여야 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사회가 나눠지라.


간단하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데 있어 여성에게 아무 피해도 손해도 가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서 책임을 나눠 지면 된다. 임신이 여성의 커리어를 단절시키지 않도록. 임신으로 인해 여성의 삶과 사회적 관계가 바뀌지 않도록.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재에 조금의 위해도 가해지지 않도록. 임신하기 전과 뒤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게 되었을 때 여성들도 자신의 뱃속의 아이와 끝까지 삶을 함께 할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어머니로써 책임을 다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여성이 모성을 포기해야만 했던 많은 경우들이 사회적 맥락과 이유를 함께 동반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강요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임신하기 전과 뒤가 다르고, 더구나 아이를 낳기 전과 이후의 자신의 삶과 존재가 전혀 달라진다면 인간으로서 여성을 자신을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러니까 지금의 낙태죄란 여성을 단지 자궁으로써 태어날 아이를 위해 종속시킨 전근대사회의 야만적 유산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이다. 자궁이 아닌 인간이다. 아이에 종속된 어머니가 아닌 독립된 인격이며 존엄으로서의 여성이며 인간이다. 몇 주부터 생명이고 인간인가는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여성 자신의 삶이고 존엄일 것이다. 어째서 여성만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과 존엄까지 포기해야만 하는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 심지어 과거의 기억과 관계마저 모두 희생해야만 하는 것인가. 더구나 많은 경우 낙태는 여성만이 아닌 상대남성의 무책임에서 비롯되고 있기도 하다. 사회도 남성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데 여성만 책임지라 하고 있다.


여성은 단지 어머니이기만 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여성은 단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자궁의 태아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피임과 낙태가 여성이 인권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존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낳기를 포기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자궁이란 단지 여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이유다. 너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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