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한 유언 가운데 하나가 절대 사대문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대문을 벗어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떻게든 도성인 한양에 남아 있어야 가문에도 미래가 있다. 

 

그래서 이너서클이라 부르는 것이다. 권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고리다. 울타리다. 그것을 벗어난 순간 영영 권력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안에서 머물 수만 있으면 권력에 대한 끈은 이어지는 것이다. 권력이란 주류다. 권력에서 멀어진 순간 비주류가 된다. 용의 꼬리가 될 것인가 뱀의 머리가 될 것인가. 그저 터럭 하나라도 용의 몸에 붙어 있으면 용인 것이고 아무리 대단해도 뱀의 머리면 그냥 지나가는 말발굽에도 밟히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에 계속 있을 수 있는가.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복종하며 따르는 것이다. 아무리 왕이라도 주류의 논리에서 벗어난 순간 오히려 주류로부터 따돌림당하게 된다. 그렇게 쫓겨난 왕이 조선시대에만 둘이고,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했던 왕이 또 여럿이다. 조상이 양반이라고 모두가 양반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귀족이라도 결국 행동하는 것이 귀족의 주류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비천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류가 스스로를 주류라 여기는 상식이고 교양이고 예절이고 품위다. 어찌되었거나 양반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주류라는 증명이 된다.

 

수십년간 한국사회에서 주류는 보수정당이었다. 이승만 이래로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순간을 그들은 이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입법부야 국민이 뽑는다지만 사법과 행정 등 공공과 민간 거의 모든 분야에 그렇게 어떻게든 지배세력인 그들과 연관된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선택했고 그들이 길러냈으며 그들을 배경으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기존의 지배세력인 보수정당 이외의 다른 정치세력을 그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란 이념이라기보다는 인적인 계승에 가깝다. 근대적인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특정한 개인에 대한 숭배와 추종을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승만인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인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는 애국도 반공도 아닌 이들 권력자들이다. 이로부터 자신들의 권력은 발생했고 이로부터 자신들의 권력은 이어져 왔다. 권력이야 말로 그들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은 보수정당이다. 그래도 국정경험도 많은 보수정당에 정권을 맡기는 것이 옳다. 인물도 많고 경험도 많은 보수정당이 아무래도 진보정당보다는 유능하다. 그래서 아마추어라는 진보정당에 대한 낙인에도 대부분 대중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언론 역시 다르지 않다. 실제 어느 기자가 그러더라. 그래도 중소기업 사장들과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니 그들과 생각도 주장도 같아지더라.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세상을 보게 되더라.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하물며 그토록 목숨까지 내걸고 부정한 권력에 맞섰던 이들마저 권력의 주변에만 가면 달라지기 일쑤인데 기자라고 다를 리 없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달라질 리 없다. 그러니까 주류인 그들이 옳다. 주류인 그들은 옳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과 주장과 입장을 같이 하는 자신은 그들과 같은 주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성공과 승리야 말로 자신들의 성공이고 승리다. 말 그대로 한 몸이 된다. 이해도 목표도 공유한다.

 

이념이 아니다. 보수의 이념을 추구한다면 때로 보수의 가치를 벗어난 보수정당을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보수의 가치를 부정하는 주장이나 행동에 대해 가차없이 채찍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조차, 심지어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조차 감싸기에만 급급하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 역시 보수의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적 연대다. 보수라고 하는 그들만의 울타리다. 수십년 간 주류였던 그들의 이너서클이다. 그러므로 나도 그 안에 포함되고 싶다. 그들과 함께 주류로 남아 있고 싶다. 나름대로 의식있는 인사들로 꾸렸다는 방통위가 오히려 민주당 추천인사들로 인해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보다 더 형편없이 망가지고 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름대로 개혁적인 인사라는 김명수의 사법부 역시 이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왜이겠는가. 

 

단지 자신들도 주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밖에서 열심히 비판만 하다가 기회가 되니 바로 주류의 논리와 사고를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식조차 없이 그럴 기회가 주어지자 바로 주류의 사고와 논리를 긍정하게 되어 버린다. 그럼으로써 자신 역시 주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 착각 자체를 즐긴다. 저들과 나는 같다. 나 역시 저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가장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원래 그들 역시 이념과 가치를 추구해서 개혁세력이 된 것이 아니라 주류에 속하지 못해 그를 비판하는 입장에 선 것 뿐이다. 기회만 주어지면 표변해 버린다. 그래서 진보개혁의 풀은 좁고도 좁다.

 

원래 한국사회의 가치란 것이 바로 출세다. 신분상승과 부귀영화다. 더 높은 지위에서 모두를 굽어보며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린다. 우병우야 말로 한국사회의 모범이다. 양승태야 말로 한국사회의 정의다. 그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이승만이고 박정희다. 전두환이다. 우병우를 욕하는 것은 자기가 그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며, 양승태를 비난하는 것도 자기가 양승태가 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기자라고 다르지 않다. 누구처럼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어디 공기업 사장자리라도 하나 꿰차고. 주류가 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통령 앞에 다소곳이 손모으고 하는 말들만 받아쓰는 것이야 말로 마음대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보다 그들에게 더 소중한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더 분노한다. 어째서 자신들을 개취급하지 않는가. 과거 검찰이 그랬고 지금 판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째서 자신들을 권력의 노예로써 부리지 않는가. 권력의 터럭이라도 되어 그와 한 몸이 되고자 한다.

 

한겨레나 경향의 기사를 보더라도 몇몇 기자를 제외하고 논조는 한결같다. 손석희도 이제는 주류라고 정치권을 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다. 주류의 문법을 따라간다. 주류가 보는대로 자신들도 본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주류에 민주당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절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차라리 서울대 나온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을 응원해도 부산 출신의 듣보잡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바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의식의 실체인 것이다. 그마저도 조금 나아진 것이 더 높은 곳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싸잡는 것이다. 너무 높은 곳에서 한참을 굽어보니 어차피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똑같은 것들이다. 자기들은 이 사회의 주류이며 엘리트라는 것이다.

 

어째서 언론은 이토록 편향되어 있는가. 진보고 보수고 중도고 할 것 없이 자유한국당에 편향된 기사들만 쏟아내는가. 좋은 대학 나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기자까지 되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이 어떠할 것인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라고 부모들이 가르쳤다. 허리 휘어가며 과외까지 시키고 대학에 보냈다. 배운대로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정의다.

 

민주당이라고 물론 항상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서도 기회만 되면 자유한국당에 들어가고 싶을 정치인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전까지의 자유한국당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주류와 한참 거리가 멀다. 지금은 민주당이 자유한국당보다 더 강하다. 만에 하나 민주당이 진정 주류이고 자유한국당은 더이상 주류가 아님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바뀔까. 그래서 대북문제가 중요하다. 비핵화와 더불어 남북간 화해와 경제협력이 본격화되면 새로운 시대의 주류는 지금의 집권세력으로 바뀌게 된다. 그때도 언론들은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일까.

 

이념도 아니다. 신념도 아니다. 그냥 논리고 주장이다. 그들만의 문법이고 방식이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주류가 되기 위해서. 엘리트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것이 지금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사회 각계에서 보여지는 엉터리같은 모습들의 실체인 것이다. 바로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인 것이다. 그를 위해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불쌍하기도 하다. 원래 기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인간들이었다. 학자가 되어서도 안되는 인간들이었다. 정치인은 상관없다. 원래 그런 인간들이 하는 것이 바로 정치란 것이니. 더 불쌍한 것은 한국사회일 것이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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