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선사시대 인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특히 농경을 시작하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인류들은 실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고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을까? 실제 원시적인 삶을 여전히 이어나가는 오지의 부족들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특히 유전적으로 근육발달에 다른 인종에 비해 우월하다 여겨지는 아프리카인들의 경우를 본다면 더욱 답은 명확해질 것이다. 그런 일 없다.

 

말하자면 근육이란 군대와 같은 것이다. 확실히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쓸데없이 부족한 열량만 소모한다. 다이어트하려면 일단 근육부터 키우라는 이유다. 먹는 것만 줄여서 다이어트 해봐야 배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육이 많으면 대사량도 늘어난다. 같은 움직임으로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하게 된다. 문제는 근대 이전 대부분의 인류는 충분한 열량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멜서스가 주장한 그대로 아무리 식량생산이 늘어나도 그보다 인구의 증가가 더 앞서기 때문에 항상 식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거의 항상 영양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충분한 영양을 항상 섭취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소수의 지배층 뿐이었으며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을 확보하는 것조차 항상 버거웠다. 그런 사람들에게 근육이란 과연 필수기관일까? 아니면 유지조차 버거운 잉여기관이었을까?

 

아니 이와 같은 진화는 인류의 역사 이전, 지구상에 생물이라는 존재가 출현하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통해 획득하고 유전되어 온 형질인 것이다. 항상 먹을 것은 부족했고, 따라서 부족한 가운데서 생존을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필요이상의 근육은 잉여이므로 따라서 굳이 단백질을 더 먹는다고 근육을 키우는 경우란 거의 없다. 일정 이상의 근육을 획득한 상태라면 대부분의 단백질은 대사과정을 거쳐서 다른 영양분으로 전환되어 에너지로 쓰이게 된다. 당연히 그러니까 육식동물들이 단백질로 이루어진 고기만 먹고서도 잘도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곡물도 채소도 없이 오로지 고기만 먹어도 다른 필수 비타민과 무기질만 충분히 공급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일정 이상의 열량을 지속적으로 소모하는 노동에 종사할 경우 주기적으로 에너지로 사용할 탄수화물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지방과 함께, 아니 지방에 우선해서 단백질을 에너지로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대부분 노동자들이 앙상하게 마른 근육을 가지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른바 실전근육이란 것이다. 근육이 너무 많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에너지도 너무 많이 소모하게 된다. 분명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힘도, 심지어 유연성이나 민첩성에서까지 근육이 많은 쪽이 더 우월할 테지만, 그러나 필요한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며 지속적으로 노동할 경우 필요 이상의 근육은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해하려 한다. 분해해서 에너지로 쓰려 한다. 그리고 줄어든 근육 만큼 약화된 활동대사는 이후 보충된 열량을 다시 지방으로 저장하려 한다. 팔다리는 깡마르고 배만 튀어나온 노가다체형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배만 나오는 것도 영양이 넘쳐나는 현대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일 테고 대부분 시대에서는 그냥 깡마른 몸에 겨우 필요한 근육들만 단단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면 혹시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조각들은 어찌된 것이냐? 과거 인류가 마른 근육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그리스 조각상에서 남성들은 그처럼 우람한 근육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연구한 결과가 나와 있다. 한 마디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서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근육은 상상의 산물이었다. 실제 남성의 근육을 모델로 그것을 최대한 크게 키운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상상속의 근육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도 대부분 남성들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든 지식노동에 종사하든 현대의 대부분 평범한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근육은 환상이다.

 

오죽하면 20세기 초반 한 차력사가 자신의 힘자랑을 하려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그 근육에 매료되어 그것을 구경하겠다고 돈까지 지불했겠는가. 바로 보디빌딩의 시작이었다. 이후의 보디빌딩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근육이었지만 그조차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다. 육체노동을 시작하고 오히려 근육이 줄어든 것은. 작년까지 줄어든 근육을 이제서야 겨우 1 kg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은 근육이 많을수록 보수적이 되는가?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근육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심지어 직장에서 동료들이 나를 두고도 그런 말을 한다. 저런 몸은 보충제 먹어가며 빡세게 운동하고 관리해야 가능한 몸이다. 그렇게 대단한 근육도 아닌데 그마저도 매일매일이 힘들고 고단한 동료들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긴 나 역시 지금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기도 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운동하고 씻고 밥먹고 그냥 바로 잠들어 버린다.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오로지 운동과 식사와 휴식만으로 보내는 것이다. 동료들과 밥을 같이 먹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사회적 관계를 위한 투자는 등한히 할 수밖에 없다. 고작 주말이나 되어야 겨우 시간을 내서 이것저것 할 수 있지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평일에는 인터넷에 글쓰는 것조차 때로 너무 버겁다. 민주당 깽판짓에 아예 글쓰는 자체를 포기해버린 또 하나 이유다.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 주 52시간이 정착되기 전에는 이나마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종료들이 나를 대하는 시각이 그때 내가 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12시간 이상, 심지어 때로 주 6일까지 일하고 나면 그야말로 지쳐서 운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겨우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작 5년 전에서야 겨우 운동이란 것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와 같은 노동자가 근육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참고로 저 연구가 나온 곳은 계급의식이 벌써 오래전부터 강하게 정착된 영국이었다. 계급과 정치성향이 상당부분 일치하는 동네라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과는 다르다. 그래서 근육이 많으면 보수적이 되는 것이다. 근육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계급적으로 상위에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더 적은 시간을 더 저강도의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란 것이다. 남는 여윳시간동안 정교하게 계산된 프로그램 아래에서 자신의 근육을 위해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고, 더불어 그렇게 키운 근육이 불필요한 에너지 대사에 소모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적절한 영양섭취를 위해 필요한 비용까지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 요즘 물가 올라서 삼시세끼 고기로 필요한 단백질 섭취하려면 허리가 뽀개질 지경이란 것이다. 닭가슴살도 맛있게 먹으려면 돈이 오지게 깨진다. 그런 것들이 가능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내가 하루에 먹는 고기양 들으면 역시 동료직원들은 경악한다.

 

그나마 내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몸이 문재인 정부가 이루어낸 성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의 어떠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좋은 걸 알면서도 운동할 시간도, 체력도, 돈도 부족하다. 너무 힘들고 너무 버겁고 너무 가난하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2번남은 2번남인 것이다. 더 적은 돈을 받으며 더 오래 일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 살면서 하다하다 그런 병신들은 정말 참신할 지경이었다. 버러지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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