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이상 2030 남성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같이 가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된 계기를 꼽으라면 역시 인국공사태일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서든 2030 남성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며 이런저런 대안들을 쏟아내던 친민주당성향의 스피커들조차도 이때를 기점으로 2030 남성들의 공정이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다르며 그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상도 아들의 50억 퇴직금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2030 남성들을 6070과 마찬가지로 더이상 대화도 존중도 필요없는 정치적인 적대관계라 인식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토록 공정과 상식을 강조해 왔는데 곽상도 아들의 50억 퇴직금에 대해 최소한의 분노는 보여주지 않을까 여겼던 기대는 불과 몇 분도 지나기 전에 산산이 박살나고 말았었다. 하긴 나경원 아들에 대해서도 공부 잘하니까 상관없다던 2030들이었다. 한동훈의 딸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해서 나온 게 없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게 또 그들의 주장이었었다. 공부 잘하니까, 잘나신 검찰님들과 기자님들이 조용히 있으니까, 그리고 무려 아버지가 사법고시 합격한 검사 출신이고 현직 민정수석이었으면 50억이야 정당한 대가일 수 있으니까. 실제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가 그쯤 되었으면 기업 입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투자다. 그러므로 공정에도 상식에도 정의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수사해서 나오는 게 없으면 당연히 범죄 또한 아니다.
최근 역시나 젊은 층에서, 특히 남성들이 즐겨 읽는 장르소설을 이북으로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확히 이전부터도 계속 보아 온 문장이었는데 며칠 전 유독 그 문장이 눈에 밟히고 있었다.
"이것만 하면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여자까지도 모두 거머쥘 수 있다."
요즘 무협소설들이 전처럼 내 흥미를 잡아끌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이상 무협에 협이 없다. 무공이란 단지 개인의 열등감을, 열등감에서 비롯된 비틀린 분노와 증오와 질투와 탐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또한 최근 현대판타지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와 독자들이 지금 살고 있는 현대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주인공이 마침내 가지게 되는 힘과 그로부터 얻게 되는 것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에서인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지금 이렇게 우울하고 한심한데 그런 모든 것을 뒤집을 수단으로 판타지라서 가능한 특별한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힘을 얻은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그 힘을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고자 타인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혼자서만 모든 것을 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협잡과 기만과 배신은 너무 당연하다. 하필 또 그런 소설들의 경우 시점이 1인칭이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신분상승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2030 남성들이 민주당을 외면하기 시작한 또하나 계기였을 것이다. 사법시험을 폐지한다. 로스쿨로 사법시험을 대체한다. 사법시험은 말 그래도 한 방이다. 공부머리 좀 되면 방안에 틀어박혀서 열심히 법전을 달달 왼 다음에 시험 한 번으로 바로 판사도 되고 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인생 자체가 뒤바꾸는 전환점인 것이었다. 그렇게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신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어쩌면 그들의 부모세대가 가르쳐주었을 부와 명예와 지위와 권력과 여자와 기타등등등등 그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못하더라도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꺼이 대리만족할 수 있다. 아마 이쯤 되면 어째서 2030 남성들이 곽상도와 나경원과 한동훈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았는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어째서 학벌 빼고 내세울 게 없는 2찍 진보 새끼들이 그리 검찰에 목을 맸는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려고 2030 남성들도 코인에 부모돈까지 끌어다 때려넣고, 부동산에 빚까지 내서 돈을 쓸어넣었는데, 그러지 말라 하니 열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에서도 1인칭 주인공들이 내가 얻은 힘으로 다른 사람이 좋은 일 있을까봐 필사적으로 숨기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런 소설들에서는 주인공들이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특수한 스킬 같은 걸 얻게 된다. 아니면 성립이 안 되니까.
그게 2030 남성들의 공정인 것이다. 그래서 수시에 대해 2030 남성들이 비판하면서 든 예 가운데 어째서 부모가 열심히 돈 벌어서 부자가 되었는데 가난한 집 아이들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자기들도 지방이 싫으면 서울에 살면 된다. 가난해서 공부도 못할 것 같으면 부모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돈 벌었으면 된다. 그래서 또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때 노오오오오력이라면서 개인의 노력에만 책임을 지우는 기득권의 논리에 반발하던 이전의 젊은 세대들과 달리 지금의 2030은 스스로가 타인에게 노력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모가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부자로서 자식까지도 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저소득층이나 농어촌에 사는 학생들을 위한 전형은 불공정하다. 진정으로 동등해지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합격하면 남들처럼 고용이 안정된 직장에서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보안원들을 정규직도 아니고 무기직으로 전환하겠다 했을 때 그리 분노했던 것이었다. 시험도 안 치른 계약직 나부랭이들이 고용도 안정되고 연봉으로 4천 이상 받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대부분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들이었음에도.
2030 남성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주 52시간근로제가 공정하지 않다 분노한 이유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면, 설사 다른 환경적인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조차도 결국 부모세대가 노력한 결과일 터이니 그래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오래 일해서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 공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일 12시간 넘게, 주말까지 일하더라도 남들과 겨우 비슷하게 살 수 있는 현실을 겪고 나서야 노력할 동기도 생겨나게 된다. 그러니까 판교에서 젊은 IT직원들 만났을 때 주 120시간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아마 그들 젊은 세대들로 이루어진 MZ노조가 앞장서서 그같은 주장들을 펴고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도 낮추고, 근로시간도 늘리고, 주휴수당도 없애자. 그래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고 경쟁해서 성공도 할 수 있게 된다. 성공했다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깨닫고 보니 2030 남성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안달하던 나 자신이 얼마나 하찮고 초라해 보이던지. 하필 인국공 사태 당시 내가 보안원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던 곳에도 거기서 있다가 온 사람들이 몇 있어서 대충 그쪽 돌아가는 사정을 알았다. 그냥 경비도 아니다. 공항은 특수경비고 그만큼 요구하는 자격요건도 꽤 엄격하고 일도 무척이나 힘들다. 그리고 어차피 무기직이라는 게 그냥 보안원으로 들어갔으면 보안원으로 끝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마저도 용납하지 못한다. 온갖 수당 다 붙여서 4천 좀 안되게 받았을 텐데 그것도 너무 많이 받는다. 왜? 시험봐서 들어간 게 아니니까. 그래서 서울대에서 미화원이 불행한 선택을 했을 때도 저들은 오로지 조용하기만 했었다. 심지어 그 말 많던 진보들조차 한 마디 보태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과연 저들의 공정을 위해 민주당 스스로가 바꿔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저들의 공정이 민주당의 공정이 되었을 때 나는 그때도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더욱 정권이 바뀌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공정과 상식과 정의라는 단어가 아예 쏙 들어가 버린 것을 보고 새삼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놈들이 그놈의 공정이란 것을 포기한 것이냐? 웬 뜬금없는 예능프로그램을 두고 공정 어쩌고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다. 저들의 공정에 있어 보수당과 보수정권은 예외다. 정확히 그만한 자격이 있는 판검사, 기업인, 아무튼 성공한 사람들은 예외다. 민주당은 그 자체로 성공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민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돈을 많이 벌었거나,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고 지위가 높거나, 아무튼 뭐라도 잘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다. 돈 많이 벌어서 코인투자도 하고 집 비싼 것 샀다. 명품 안경에 가방에 옷에 악세사리들을 두르고 있다. 민주당이니 문제가 된다. 그것이 2030 남성들이 주장하는 공정이고 상식이고 정의다.
현정부에 대한 2030 남성들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것은 원래 그 나이대 사람들이 워낙 반골기질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모두까기다. 선택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놈저놈 다 까면서 혹시라도 자기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건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 선거에서 2030 남성들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그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당장 모두까기를 하는 와중에도 정작 공정과 상식을 이유로 현정부와 여당을 까는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아, 이래서 이렇구나. 원래 좋아하던 판타지, 무협이었는데 최근 갈수록 읽기가 힘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도저히 주인공 대가리속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1인칭이라 더 뭐하는 개새끼인지 도저히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만큼이나 다르다. 그들의 공정이란, 상식이란, 정의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인국공이었고, 더욱 확실하게 확인시켜준 것이 곽상도 아들이었다. 그게 바로 2030남성, 2찍남, 이대남들인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