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에도 말했을 것이다. 자칭 진보는 원래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다. 러시아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를 떠올려 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민중은 무시하고 어리석다. 그러므로 누군가 그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 어리석은 민중에 정치를 맡기기보다 자격을 갖춘 자신들이 강제로라도 민중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만 한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자마자 가장 먼저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자칭 진보들이 보는 세상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지방대 나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모욕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비정규직이라고 대놓고 비웃으며 조롱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자신들은 서울대를 나왔다. 아니더라도 연고대나 혹은 이화여대 등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대학에 나와 괜찮은 스펙까지 갖췄다. 자신들이 판단하는 것이 무지렁이 지잡대 출신이나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비정규직이 판단하는 것과 같을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자신들과 동급인 검사, 판사, 기자, 국민의힘 엘리트 정치인들이 잘못된 소리를 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따르는 것이 옳다.

 

민주당 지지자가 저들 보기에 비국민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국민의힘 지지자나 중도층이 자기들이 뭐라 하면 귀도 기울여주는 순종적인 '국민'인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사건건 따지고 반박하기 일쑤이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놈들은 시베리아로 모두 보내버려야 하는 반동에 불순분자들인 것이다. 정치는 저런 놈들을 배제한 순종적인 자격을 가진 '국민'과 그런 국민을 바로 이끌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란 필요없다. 당연히 정당운영에서도 권리당원의 참여란 배제되어야 한다.

 

웃기는 게 오래전 내가 민주당을 욕하면서 오히려 한나라당을 부러워했던 것이 바로 그런 당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정당의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이념을 넘어서 당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실제 현실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참고로 지금 국민의힘의 시스템은 박근혜를 거치면서 오히려 예전 한나라당 시절보다 후퇴한 지 오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만 후퇴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들 정당의 민주주의까지 후퇴시켰다. 그런데 한겨레는 그런 국민의힘이 더 부럽게 여겨졌던 것인가.

 

민주당 최고위원을 권리당원이 직접 투표해서 선출하겠다 하니 한겨레가 미쳐 날뛰고 있다. 그러지 말고 중앙위원회에서 간접투표로 결정하자. 권리당원이 직접 투표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정치인이 최고위원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가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간 박정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체육관에서 선출된 전두환이 그리 정통성도 확실한 대통령으로 여겨지는 것인가.

 

이념이 달라도 당원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받을 일인 것이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낸 결론이라면 기꺼이 따를 줄 아는 것도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승복의 미덕인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고 구성원들의 참여를 아예 배제하자 주장한다. 이놈들 진보 맞는가?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자칭이라고. 볼셰비키가 진보면 한겨레도 진보다. 조선노동당이 진보면 정의당도 진보다. 뭐가 다른가? 당대표를 탄핵하고 내쫓는 과정부터 딱 조선노동당에서 유력인을 숙청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니 민주주의 선거에도 관심이 없다.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강제하는 것이지 아래에서 위로 쟁취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긴 뭐 실망이고 뭐고 그냥 알고 있던 사실의 재확인에 지나지 않지만. 벌레는 벌레다. 똥걸레는 똥걸레다. 냄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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