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 사실 그렇게 오랜 건 아닌데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드는 예전 어느 때 - 안철수가 '극중주의'라는 것을 들고 나온 것을 보고 한 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극중주의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극단이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치우치지도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양쪽의 한 가운데 위치하는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넘치고 모자르고 치우치는 그 사이의 수많은 공간 가운데 어느 한 곳만을 고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넘치고 모자르고 치우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냄비에 라면을 끓이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너무 작은 냄비라서 라면 봉지에 적힌 대로 550ml의 물을 넣었더니 넘치려고 한다. 혹은 너무 큰 냄비라서 550ml를 넣었더니 겨우 바닥에 찰랑거리는 정도다. 혹은 혼자 먹을 때는 물을 절반만 부어 끓이면 되었는데 친구가 놀러와서 두 사람 몫을 끓이려니 아슬아슬하게 겨우 들어간다. 그런데도 중용을 지켜야 하기에 물을 절반만 부어야 한다. 당장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좋을 것이다. 냄비가 작은 것 같으면 물도 줄이고 스프도 줄이고, 냄비가 너무 크고 넓어서 면이 완전히 잠기지 않는 것 같으면 끓이는 도중 한 번 뒤집어주고 풀어주는 요령도 필요하다. 한 마디로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물이라 다행이지 넣는 것이 얼린 고깃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공자도 예를 강조하면서도 오히려 예를 너무 엄격하게 고집해서는 안된다 말하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옳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틀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중간지점이면 되는 것인가. 지식 없는 지혜란 없다. 인지없는 의식도, 의식없는 사고도 존재할 수 없다. 알아야 한다. 지금 두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더 구체적으로 더 상세하게 더 명징한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통해서 엄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중용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나의 판단도 틀릴 수 있다.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피해서는 안된다. 둘 다 모두 옳고 모두 틀릴 수 있기에 말하지 못하겠다. 지금 당장은 말하지 않겠다. 나중에 모든 것이 밝혀진 뒤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당장 두 사람은 나의 판단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가장 비겁한 순간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타진요라고 하는 미친 놈들이 에픽하이의 타블로를 상대로 진실을 밝히겠다며 인터넷에서 온통 난장을 쳤던 적이 있었다. 아마 인터넷에서 목소리 좀 내던 인간들은 거의 거기 휩쓸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평소 정의로운 척 제법 하던 인간들 대부분이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고 타블로는 물론 그 가족과 주변인들까지 온통 헤집으며 상처입히고 있었으니. 그런데 그때 역시나 중립적인 척 객관적인 척 꽤나 하던 인간들 가운데 양자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던 놈들이 몇 있었다. 공중파에서도 그런 시도가 있었다. 타진요는 타블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타블로도 타진요가 요구하는 사실들을 나서서 밝히라. 무슨 의미인가. 명백히 타진요가 일부 사실들을 트집잡아 부풀리고 왜곡해서 타블로와 그 주변을 무리하게 공격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양자의 입장을 모두 긍정하자. 근거도 희박한 타진요의 주장은 일부가 긍정되고, 명백한 사실인 타블로가 입은 일방적인 피해도 일부만 인정된다. 이 뭔 개똥같은 짓거리인가.

 

강간범과 강간피해자 사이를 진정으로 중재하려 한다면 강간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입장부터 정해야 하는 것이다. 강간인가? 아닌가? 강간이라는 행위가 실제 있었는가? 없었는가? 강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일단 강간인가 아닌가 다음에 서로에 대한 책임 여부를 따져 볼 수 있는 것이다. 강간인데 사실은 강간이 아니다. 강간은 아닌데 사실은 강간이었다. 사실은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모든 성행위는 강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관계를 갖기 전에 상대의 동의를 구했는가? 아닌가? 상대가 동의했다면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동의의사를 전달했었는가? 구체적인 동의가 있었다면 강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 동의없이 성관계를 했다면 다만 전후맥락에 따른 처벌수위만 달라지는 정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강간인가? 아닌가? 그러면 그를 전제로 어떻게 해야 두 사람 사이에 서로에게 이익이 될만한 원만한 해결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중립이어야 하니까.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되니까 끝까지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를 윽박지르게도 되는 것이다. 강간이라고만 계속 주장하며 고집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인 것이다. 네가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회적으로 목소리 좀 낸다는 사람 가운데 그런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타진요사태의 경우에도 평소 호감으로 보던 자칭 평론가 가운데 그런 입장을 내보이는 경우가 몇 명 보였었다. 내가 진중권을 욕하면서도 그래도 한 편으로는 인정하게 되는 것이 이런 경우 항상 명확한 자기 입장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자칭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남 듣기 좋으라고 입바른 소리나 내뱉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요즘 진중권의 모습에 어떤 연민같은 감정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남 들으라고 떠들고 있다. 자기 목소리를 열심히 받아 적어주는 언론들을 위해 듣기 좋은 말들만 영혼없이 꾸며서 배설하듯 내뱉고 있는 중이다. 언론은 열심히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충 써놓은 글들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유일한 존재가치마저 스스로가 부정하고 있다.

 

국회의장 박병석에 대해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며 내리게 된 결론이다. 국회란 대화와 합의와 공존의 공간이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독주해서도 안되고, 당연히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독점하려 해서도 안된다. 서로 다른 이념과 견해와 주장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더라도 서로 최대한 양보하고 타협하고 합의해서 함께 의회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는 가운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을 다투며 고민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옳다. 그래서 민주당도 처음에는 국회의장과 입장을 같이하며 미래통합당과의 국회개원을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상임위에서도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미래통합당의 요구 가운데도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들어주면서, 최대한 낮은 자세로 협상을 타결지으려 그동안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미래통합당이 아예 협상 자체를 거부하면서 미래통합당과의 합의를 통한 국회개원이라는 대의는 미래통합당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돌변해 버렸다.

 

지금 국회의장이 하는 일이란 미래통합당의 의견을 들어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전달하는 것 뿐이다. 어떻게든 양당의 합의 아래 본회의를 열어야 하게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미래통합당을 달래고자 오로지 미래통합당의 편에서 민주당을 압박하며 설득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편부당이 편파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자기 중심 없이, 자기 기준과 판단 없이 그저 양자의 중간에만 서고자 했던 고집이 결국 그를 부정하는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는 결과를 낳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마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박병석은 지금 자신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꽤나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 민주당 출신으로 민주당의 편을 들지 않고, 대화와 합의와 공존의 국회를 위해서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지지자들조차 그런 선의를 몰라주는 무도한 무리 쯤으로 여기고 있을 지 모른다. 결국에는 모두가 자신의 의도와 역할을 알아주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위에도 썼듯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형이다. 차라리 최악의 판단은 그보다 나은 판단을 위한 반면교사가 되어 줄 수 있다. 이명박이 어설프게 나빴기에 박근혜라는 최악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라는 최악이 있음으로 해서 문재인이라는 그보다 훨씬 나은 대안도 나올 수 있었다. 개새끼 씹새끼 욕하며 서로 싸우는 가운데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찾은 근거들과 개발한 논리들이 자신의 사유와 주장들을 훨씬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주기도 한다. 내가 옳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인데 주장하기 때문에 나쁘다. 내가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인데 양보하고 철회하지 않았으니 나쁘다. 그래서 옳지 못하고 틀린 주장이 훨씬 온건하기에 옳은 것이 되어 버린다. 생각하니 또 열받네.

 

한 마디로 그냥 자아도취라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국회의장이라는 역할극에 스스로 취해 버린 것이다. 양자를 합의케 해야 한다. 양자가 서로 합의하고 사이좋게 국회문을 열 수 있도록 자신이 중재하며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국회의장이 된 이상 자신은 어느 정당의 소속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편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지금 미래통합당의 편에서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있는 사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흔히 미쳤다고들 말한다. 민주당을 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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