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소득주도성장이라 말하니 헷갈리는 것이다. 살짝 바꿔서 소비주도성장이라 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부에서도 계속되어 온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말 그대로 정부가 나서서 생산을 늘리고 수출을 늘리는 것은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수출 늘려보겠다고 무리하게 환률 끌어올렸다가 수출은 늘지 않고 소비만 박살났던 것을 떠올려 보라. 다만 문제는 무엇으로 소비를 늘릴 것인가?

 

김대중 정부에서는 카드빚으로 소비를 늘리고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감히 내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지 못했었다. 카드빚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에도 버거웠던 때문이었다. 여기에 다시 내수를 늘리자고 정책을 펴는 순간 자칫 더 큰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부채나 가계부채는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뒤를 이어 들어선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였었다. 차라리 정부 빚만 늘렸으면 상관없는데 그것이 문제가 될 것 같으니 가계빚도 함께 늘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박근혜 정부의 초이노믹스는 말 그대로 가계의 빚을 늘려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최악의 정책이었다.

 

지금도 정부 공무원이나 언론, 심지어 지식인 사회에서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에 회의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엇하러 국가재정 헐어서 개인들에 돈을 쥐어주는가. 굳이 임금노동자의 소득을 늘려주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싶으면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더 많은 아파트를 짓고 개인에게 빚을 내어 그것을 사게 하면 된다. 가계부채는 정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정부나 사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반면 정부의 부채는 자칫 담당공무원인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고위공무원 가운데는 비싸게 팔아야 할 아파트가 몇 채 더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경제이론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경제정책이다. 그동안 해 온 일들이다. 이미 박정희 시절부터 대부분 기업들이 상품을 만들어 팔기보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있었다. 정부의 개발계획에 따라 건설로 돈을 벌고 다시 땅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 80년대 전두환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기업들을 압박해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상품을 판매해 얻는 이익을 억제하며 대신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익으로 보전해준다. 대기업들이 한결같이 건설기업을 중요한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알짜배기에 확실한 자금줄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부동산부터 살려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야당과 언론, 심지어 공무원 가운데서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내놓는 대안들이라는 것이 거의 그와 연관된 것들이다. 당장 금리를 낮추면 대출받기 쉬워지고, 대출받기 쉬워지면 그만큼 부동산을 사기도 쉬워진다. 그래야 부동산 가격도 오른다. 멍청한 놈들은 대출을 규제하면 서민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데 결국 대출 풀어봐야 이득보는 것은 부동산에 먼저 투자한 다주택자들인 것이다. 앞으로도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게 될 부동산부자들인 것이다. 화폐단위를 조정하자는 제안 역시 그래야 아파트 가격이 싸 보일 테니까. 일산 신도시에 대한 보도를 보더라도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올라야 하며 절대 떨어져서는 안된다. 떨어지면 정치적으로도 타격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아파트 가격을 올리라. 어떻게?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해 온 대로.

 

그러면 굳이 기업이 돈을 헐어 노동자의 주머니를 채워 줄 필요도 없고, 정부가 재정을 헐어 개인의 지갑을 채워 줄 필요도 없다.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정부는 더이상 재정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경기를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빚을 지게 된 개인들은? 그런 것 알 게 무언가? 과연 정권을 바뀌기 전 지금 영세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을 그토록 걱정하고 있는 그들이 그에 대해 한 마디 우려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양극화에 대해서도 전혀 아무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빚을 진 개인들의 회생을 위해 탕감해주는 정책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인은 빚을 내야만 한다.

 

뻔뻔한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속내다. 그동안 개인이 빚을 내서 지탱해 온 내수경기를 앞으로도 계속 개인이 빚을 내가며 버텨주면 되는 것이다. 이후는 생각지 않는다. 내일은 생각지 않는다. 당장 내가 팔아야 할 아파트가 있고 사야 할 아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들만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거기 넘어가는 것이 병신이다. 서민들도 빚내서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달라. 그러니까 당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러라고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가채무논란은 소득주도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내수를 책임져 온 것은 국민 개인이 진 빚이었다.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는 개인들의 빚이었다. 그를 소득으로 대신하려 한다. 기업이 내고 정부가 내서 소득을 보전함으로써 더이상 빚을 지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서 앞으로는 국민 개인이 아닌 정부가 빚을 내고자 한다. 정부가 가능한 범위에서 대신 빚을 지고 국민이 마음놓고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결과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득이 늘어난 만큼 가계부채도 줄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처분소득이네 어떻네 결국 절대 소득 자체는 늘었고 그만큼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추세도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다시 정부를 대신해서 국민 개인이 빚지게 하려 한다.

 

그 속내를 읽어야 한다. 과연 국가채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지. 저들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러자면 무엇보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수출만으로 한국경제는 발전해오고 있었는가. 오로지 수출만으로 한국경제는 성장해 오고 있었는가. 그러면 그 소비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왔는가. 박근혜 정부 말기 국민의 실질소득은 하위 60%에서 하락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월급은 쥐꼬리만큼이나마 올랐는데 더욱 살기가 힘들어진 기억이 있다. 별 무리없이 내던 보험금마저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정도였다. 맥락을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새삼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다.

 

다시 말하지만 생산과 수출은 오로지 기업의 책임이다. 기업이 알아서 노력할 부분이다. 기업의 경쟁력까지 정부가 일일이 챙겨주지는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대부분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내수를 관리하는가. 그리고 그동안 정부가 내수를 관리해 온 방법이 거의 개인의 빚이었다. 개인이 빚을 내어 소비하는 구조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것을 바꾸자는 것이다.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사악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자기희생이 넘치는 것인지. 답답한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