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공천해라, 누구를 공천하지 마라, 이런 걸 흔히 사천이라 말한다. 예전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이른바 제왕적 총재들이 당을 좌지우지할 때 하던 짓거리들이다. 아니 정확히 제왕적 총재라기보다는 그냥 김영삼당, 김대중당에 가까웠다. 당대표가 곧 당의 정체성이고, 당대표의 선택에 의해 당의 행보가 결정되었으니까. 당연히 공천 역시 당대표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다. 경선? 그게 뭔데?

 

유시민이 개혁신당 만들면서 - 이때도 개혁신당이었던 것 같네 - 가장 앞세웠던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에 의한 상향식 민주주의 정당이었다. 당비를 내는 당원들의 결정에 따라 당의 정책과 운영과 행보를 달리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여기에는 당원들에 의한 경선에 따른 상향식 공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후 민주당에서 갈라져나온 열린우리당과 합당하고 나서도 상향식 민주주의 정당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간신소리까지 들어가며 오만 삽질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 나온 말이 바로 당권파라는 것이었다. 당권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제 민주당에서 이 말 쓰는 놈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괜히 문재인이 민주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게 아니란 뜻이다.

 

열린민주당에서도 처음 상향식 민주주의에 동의했던 정동영 등이 김한길 부류와 손을 잡으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었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고 다시 민주당과 합쳐 만들어진 통합민주당에서는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래서 제왕적 총재제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계파정치라는 것이었다. 공천을 하면서 당의 유력인사들이 서로 합의해서 계파에 따라 공천을 일방적으로 나눠 하던 시절이었다. 어디는 누구 계파에게 주고, 그래서 전체 의석 가운데 누구 계파에 몇 석을 주고, 그렇게 얼마나 되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정치적인 위상까지 갈렸다. 그렇다보니 지지자의 바람과 상관없는 인사가 계파 보스의 의중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천되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그래서 지지자임에도 정작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생겨났다. 선거에는 이겨야 하는데 인물이 개떡이라 도저히 투표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였다. 그것을 바꾼 것이 바로 문재인 대표체제 아래에서의 개혁이었던 것이고.

 

그때 안철수며 박지원이며 우상호며 오만 놈들이 문재인의 혁신에 반대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었다. 자기 이름으로 한 자리 내주어야 하는데 시스템공천을 당헌당규에 명문화함으로써 더이상 그럴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때 정세균의 이미지가 좋았던 것은 정작 최대계파를 이끌던 수장이었음에도 자기 계파가 와해되는 상황에조차 당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었다. 뒤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럼에도 철저히 중도를 지키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이미지 그 자체였었다. 그리고 당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견인했던 시스템공천은 2020년 총선에 이르러 더욱 확고해지며 민주당의 압승까지 이끌어내었다. 철저히 지역구 지지자와 주민들의 니즈에 맞는 인물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걸러 공천함으로써 승리의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래도 2016년에는 비대위장이었던 김종인의 입김이 적잖이 영향을 끼쳤었지만 2020년에 이르면 당대표였던 이해찬조차 공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리고 2024년이 되었다.

 

비명학살이라면 가장 먼저 컷오프되어야 할 인사가 고민정일 것이다. 박용진도 하위 20%가 아니라 그냥 컷오프되어야 한다. 반면 이재명과 사이가 좋았던 이수진은 어찌되었거나 살아남아 경선이라도 치를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수진이 괜히 이재명에게 저주를 퍼부어대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자기는 살려줄 줄 알았는데 무심하게 내쳤으니 원망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래서 이재명이 지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낙연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당대표로써 공천관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겠지만 최소한 지금 이재명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설사 이재명이 공천관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더라도 과연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는 말아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민주주의에 있어 타당한 행동일 것인가.

 

임종석을 공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대표도 아니고 최고위원회도 아니고 공천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공천관리위원회인 것이다. 그것을 누가 공천해라 마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공천하고 싶은 사람을 공천해야겠다고 자기에게 주어진 당무까지 거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행동일 것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괜히 고민정이라면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공적인 책임을 개인적인 감정을 위해 휘두르려 한다. 의견제시까지는 할 수 있어도 그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되는데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이다. 당대표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인가.

 

언론이 민주당 내부의 공천갈등을 보도하려 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들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공천받지 못했다고 자기가 속했던 당을 저주하고 당대표를 비난하는 행동들이 과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타당한 것인가. 자기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당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내는 행동들이 과연 정당한 것이가. 하물며 자기랑 가까운 사람이 공천받지 못했다고 당무까지 거부하는 것을 옹호할 필요가 있는가. 언론만 보는 사람이야 무조건 이재명의 잘못이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그래서 2찍 진보라 하는 것이다.

 

특정한 유력 정치인들끼리 합의해서 자기 사람을 일방적으로 공천하는 계파정치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해서 상향식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와 가까운대로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는 공천하지 말 것을 일방적으로 공천하는 것이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을 막고자 시스템공천이라는 것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언론만 보면 친명이라서 안되고 비명이라서 되어야 하는 과거 계파정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 같다. 그것이 현재의 가치에 과연 부합하는 것인가. 웃기는 것이다. 주장하는 년놈들이나 그걸 감싸주는 언창들이나. 공천은 끝나고 여론조사를 봐야 한다는 이유다. 중도층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 내부의 혼란일 테니. 하여튼 고민정 이건 가장 먼저 컷오프했어야 하는데. 공사 구분도 못하는 주제가 최고위원이기까지 하다. 정말 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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