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청와대에서 대변인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면 당연하게 자기가 궁금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혹시라도 빠진 내용이 있지 않을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대변인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집요하게 묻고 사실을 확인해야지만 비로소 기사로서 가치가 있다.

 

물론 대변인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기사를 쓸 수는 없으니 따로 취재라는 것도 하게 된다. 혹은 팀을 나누고, 혹은 담당기자가 직접 취재에 나서기도 한다. 현장을 찾고, 관계기관의 주변을 뒤지고, 관계자를 찾아서 인터뷰도 한다. 이미 보도된 각종 기사나 보도자료, 혹은 공식, 비공식적인 문건들을 뒤져서 필요한 근거들을 찾아낸다. 그렇게 철저하고 엄정하게 사실여부를 검증한 뒤에 비로소 신뢰할만한 가치있는 기사가 생산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들이 생략될 때도 있지만 그때는 청와대에서 대변인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정도로 사실여부에 대한 판단은 미룬 채 기사로 내보낸다.

 

하긴 그러고보면 이명박근혜 시절 기자들이 질문이란 걸 한 경우를 모두 꼽아도 아마 대충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피의사실 공표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기자들이란 한 번도 대변인의 브리핑에 대해 질문이란 것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추가취재라는 것도 거의 해 본 적 없었다. 그냥 불러주는대로 받아적으며 적당히 기자단에서 합의한 자기들 생각을 추가하면 그것으로 기사는 내보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겨레와 경향마저 현정부를 싫어하며, KBS, JTBC 할 것 없이 보수언론과 하나가 되어 자유한국당의 집권과 박근혜의 복권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인 것이다. 이명박근혜 때는 그저 두 손 모으고 부르는대로 받아적기만 하면 되었는데 현정부들어 너무 일이 많고 복잡해지고 힘들어지고 번거로워졌다. 다시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기소전 검경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방침에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검경이 부르는대로 받아적는 것이 언론의 자유이며, 검경이 의도하여 흘린 내용을 국민이 알게 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란 것이다. 정히 그렇게 국민들이 알아야만 하는 사실이라면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검찰과 경찰이 흘리지 않아도 기자들이 알아서 협업을 하든 분업을 하든 해서 검찰과 경찰이 밝히지 않은 사실들을 취재해서 국민들에 알리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당정청이 준비하고 있는 방안 역시 심사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에 알릴 수 있는 사건을 정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면 공식적인 브리핑을 통해 검찰과 경찰이 수사한 내용을 듣고, 그에 대해 물은 뒤, 다시 추가취재로 사실을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당연히 공식적인 브리핑이라면 발표하는 검찰이나 경찰은 물론이고 그를 받아쓰는 기자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가게 된다. 검찰과 경찰이 잘못된 내용을 브리핑했는데 아무 비판도 검증도 없이 받아썼다면 그 책임은 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지워진다.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신의 기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기사에 대해 비판을 받는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김덕훈 기자는 왜 그렇게 민감하게 제정신이 아닌 듯한 행동을 보였었을까? 학교 다닐 때 항상 공부 잘한다며 칭찬만 듣고, 졸업하고 나서는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치르고 기자까지 되었다. 그 자부심에 상처를 내려 하고 있으니 그깟 교수따위가 되는 것이다. 그깟 시청자따위가 되는 것이다. 기자로서의 자부심은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나 의리보다 더 높다. 그런데 자칫 공식 브리핑으로 검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으면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금 기소전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공식적인 브리핑을 통해서가 아닌 기자와의 사적인 관계를 통해 비합법 비공식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라는 데에 있다. 원래는 주어진 정보에 대해 질문도 하고 추가취재도 하며 사실여부를 판단하고 진실을 드러내야 할 테지만 자칫 정보를 주는 쪽의 감정을 건드릴까봐 감히 그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엄두는 커녕 충실한 개가 되어 똥이라도 좋다고 핥으며 꼬리를 흔들게 된다. 그만큼 수사기관 역시 언론이 좋아할만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만 골라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여론을 움직이기 좋게 흘려주는 교활함까지 갖추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흘리는 정보는 뉴스가 된다. 그것도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단독이 되고 특종이 된다. 당연히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정보이니 정보를 흘리는 수사기관이나 받아쓰는 기자나 어느 쪽에도 그 내용에 대한 책임같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원래 없었던 일이니 굳이 책임을 묻는다고 책임을 질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하고 그것을 받아쓰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이고 국민의 알권리가 되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받아쓰는 자유다. 굳이 힘들게 취재같은 걸 하지 않아도 그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출입처에 편하게 앉아서 불러주는대로 기사를 쓸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사기관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내용들을 그들이 바라는대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에게 기사거리를 주는 수사기관에 대한 의리이자 사명일 수 있는 것이다. 수사기관을 도와서 수사기관의 의도한대로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언론의 본분이며 사명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 방해하려 한다. 아예 못하게 막으려 한다. 감정이 좋겠는가.

 

더욱 언론이 미쳐 날뛰며 되도 않는 의혹들을 사실인 양 떠들어대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검찰은 이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검찰이 자칫 개혁되어 힘을 잃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그나마 평소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잘도 연기하던 김덕훈 기자가 한 순간 무너지며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 이유였던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자신의 선배들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이유였다. 손석희가 이제까지와 달리 진실추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이기도 했다. 검찰이 없으면 언론도 망한다. 검찰이 약화되면 언론도 같이 약화된다. 일본이 망하면 친일파가 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제 라이브에서 보여준 KBS 김덕훈 기자의 모습과 선배들이기도 한 데스크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한겨레 젊은 기자들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한국 언론의 현주소에 대한 적나라한 자백이자 폭로가 되고 있을 것이다. 언론이 어째서 저리 하나가 되어 미쳐 날뛰고 있는가. 불과 10년 전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어찌되었거나 자신들의 입으로 읊어댔던, 심지어 불과 얼마전 다시 반복해서 변명처럼 떠들었던 알량한 반성과 다짐마저 뒤로하며 다시 같은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는가. 진정 저들이 저토록 간절히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와 같이 악착같이 추구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다. 그들이 주장하는 언론의 자유의 정체에서. 그들이 명분으로 삼는 국민의 알권리의 실체를 통해서. 저들의 오만한 만큼이나 저들의 진실은 그토록 빈곤하고 비루하기만 하다. 그런 언론을 위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언론의 자유란 것은 얼마나 분에 넘치는 것인가. 차라리 모욕이지 않을까. 그저 역겨울 뿐이다. 쓰레기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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