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올렸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100명도 찾지 않는 격오지 블로그에서 옛날글까지 찾아 읽을 사람따위 없을 것이기에 역시나 이번에도 반복해야 할 듯하다. 한 번 썼던 글을 다시 쓰면 내용이 더 잘 정돈되어서 취미삼아 글쓰는 입장에서 나름 의미가 없지 않기도 하다. 아무튼 기회가 되어 다시 한 번 자유주의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미국의 거대양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둘 모두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 쪽이 훨씬 더 권위주의적으로 보인다. 물론 권위주의적이라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기는 하다. 우리 사회 기준에서는 공화당조차도 충분히 급진적일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아무튼 그럼에도 두 정당의 자유주의가 서로 다른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결국 그 자유의 주체에 있을 것이다.

 

자유란 공적인 것인가? 개인적인 것인가? 자유라는 것은 공공의 가치인가? 아니면 개인의 소유물인가?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자유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는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사회 전체의 공공의 보편적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 굳이 비유하자면 N번방 사건 당시 정부에서 사건의 증거물들인 성착취물에 대해 개인이 더이상 찾아볼 수 없도록 했을 때 젊은 남성들이 보였던 반발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착취물이든 뭐든 인터넷에서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은 엄연한 개인의 자유이므로 정부에서 나서서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어연히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피해를 키울 수 있는 성착취물을 개인이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와 같은 논란은 현재 2030 남성들 사이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반PC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특정한 대상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그것을 강제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억압이고 강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내내 2030 남성들은 마치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른바 누칼협이라는 것이다. 누가 칼들고 협박했는가. N번방 피해자들에게도 역시나 적용된 논리였었다. 칼들고 목숨을 댓가로 협박하지 않은 이상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당해도,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정히 그렇게 싫으면 떨치고 나와야지 거기서 자기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 자기 일은 알아서. 더구나 그로 인해 자신이 피해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이재명이 서울대에서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했을 때 돈이 많다고 건강보험 더 걷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쓰는 것은 불공정하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왔었던 것이었다. 건강보험으로 인해 돈이 많은 사람들도 온전히 자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과 같은 의료환경을 감수하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돈 만큼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기에 그를 제한하는 건강보험은 민영화가 되어야 한다. 비슷한 논리로 가난한 놈들이 싸게 전기를 많이 쓰는 바람에 돈 많은 사람도 전기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전기요금도 올리는 것이 옳다. 

 

아무튼 그래서 같은 자유주의임에도 미국 민주당은 리버럴, 공화당쪽 자유주의는 리버레이터로 영어에서도 아예 명백하게 구분지어 놓는다. 한자로 번역할 때는 전자를 자유주의, 후자를 자유의지주의로 번역하고는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둘 다 자유주의다. 그래서 혼동이 생긴다. 자신은 자유주의자인데 그런 자신을 억압하니 민주당은 권위주의적이다. 자신의 당연한 자유를 억압하려드는 문재인과 민주당은 권위주의적인 독재자이자 악이다. 문재인을 자유주의자라 여기고 지지했던 젊은 남성들이 흑화했다 여기며 그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하지만 명백히 양자는 다르며 따라서 처음부터 자유의지주의자가 자유주의를 지지한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지지해서 계엄 이전까지는 문제없었지 않은가. 다시 선거해도 이재명이 아닌 윤석열을 선택하겠다 할 정도로.

 

지금 윤석열과 한동훈, 그리고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이 보이는 민주당 지지자로써, 혹은 진짜 중도적인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들은 바로 그와 같은 나름의 이념적 토대 위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합리적인 사유의 결과라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모든 보수와 진보의 정치인과 언론인과 지식인이 나서서 검찰은 독립적인 존재이며 검찰의 모든 것은 검찰 자신들만의 천부적인 소유이며 권리임을 주장하고 나섰었다. 대통령이 임명했음에도 대통령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장관이 법에 명기된 상관으로써 당연한 권한에 의해 취하는 조치들조차 검찰의 천부적인 권리를 침범하는 것이기에 부당하다. 검찰은 윤석열 개인의 사유물이다. 검찰의 권한은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까지 합력한 검찰이라는 엘리트들의 사유물이다. 나아가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지자체장도 당선되어 지위가 주어진 이상 그 모든 권한은 개인의 권리이고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아마도 민주당이 민주화 이후 세 번이나 집권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영광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을 뿐인 보수정당에 비해 한 발 앞서서 미래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주유한 아젠다들을 선점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미국 민주당을 닮아서 공공의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당에 맞서서 공화당보다 더 극렬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의 진보정당 역시 다르지 않다. 민주당에 의해 대부분 진보적인 아젠다를 빼앗기다시피 한 진보정당과 진보주의자들 역시 그래서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공적인 자유보다 개인의 자유에 더 천착하게 되었다. 그동안 오히려 진보정당들이 보수정당과 더 자주 잘 야합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유였다. 공공의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 지난 코로나 시국에서 그래서 한국 진보주의자들은 공공의 안전을 위한 정부의 방역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그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보수주의자들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출범한 정부인 것이었고. 당연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어 한 번 자리에 앉은 이상 그 모든 것은 대통령인 자신의 소유다. 마음대로 빌려줄 수 있고 양보할 수도 있으며 얼마든지 독점할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고 사회가 용인해 주었다. 다수의 구성원들이 오히려 그러라고 등을 떠밀어 주었다. 민주당만 망하게 할 수 있으면. 문재인을 죽이고 이재명만 잡아 넣을 수 있으면. 보수와 진보가 문재인 정부 내내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던 것이 문재인 심판과 처벌이었었다. 이재명 구속과 처벌이었었다. 그를 위해서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준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개인의 인권이니 법치주의니 헌정질서와 같은 공공의 가치가 있을 자리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그래도 된다. 

 

그냥 자신의 자유일 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일 뿐이다. 공공의 이익따위 상관없다. 공공의 자유따위 알 바 없다. 그것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으니 자신은 판단하지 않겠다는 태도와도 일치한다. 계엄이라는 위중한 상황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온전한 자신의 자유일 뿐 그에 대해 타인이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민주주의도 헌정질서도 모두 남의 일에 지나지 않으니. 차라리 그보다는 계엄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한다며 명확히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명백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최소한 공동체를 위해서 방향이야 어쨌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가 어찌되었든 자신과 상관없으니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해 말하는 것도 듣지 않겠다. 그로 인해 누가 죽든 다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런 것을 개인주의라 말하지 않는다. 이기주의라 그러지. 그리고 자유주의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해야 하는 것은 그나마 미국에서 권위주의적이라 말하는 공화당조차도 한국에서는 매우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반PC적인 사람들조차 한국으로 오면 누구보다 PC적일 것이다. 단지 이름만 빌려 온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라는 말도 마음대로 오용하고 있는 것이고. 리버럴과 리버레이터가 다르듯 자유주의와 자유의지주의도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근본적인 차이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가 바로 한국의 상황인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헌법마저 무시한 채 공동체에 피해를 입혀도 그 또한 대통령 개인의 자유이며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이 나온다. 그래도 된다. 권력마저 사유화한다. 오래전부터 경고해왔을 것이다. 저들 보수정당의 자유는 권력마저 사유화하는 자유다. 그마저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물론 이름없는 블로거의 경고따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테지만.

 

어째서 저들은 저러는가. 어떻게 저들은 저럴 수 있는가? 저럴 수 있는 사고의 근간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모든 언론은, 지식인들은, 그리고 젊은 남성들은 저들의 저와 같은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왔었는가? 그 논리적 근거다. 사상적 근원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지적하고 경고해 온 부분일 터다. 찾아보면 아마 있을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본 부분이니. 아마 이명박 때부터였을까? 물론 보다 정교하게 다듬은 것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그때 키배 뜨던 2030 남성들의 논리가 꽤나 흥미로웠었으니. 이런 건 예상대로 되지 않아도 좋은데. 아무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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