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예전 일할 때 기억이 떠오른다. 점심시간이었다. 휴게시간이라 당연히 사용자의 지시와 통제로부터 벗어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더운 여름이라 작업복까지 벗고서 당당히 회사 안을 활보했다. 과장이 부르더라.

 

"윗 사람들 보기 안 좋으니 쉬는 시간에도 복장은 제대로 갖추기 바란다."

 

그러니까 점심시간이었다고. 사용자가 지시와 통제를 할 수 없는 고용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나 자신으로 돌아간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계약은 언제나 소중했으니까. 계약직이 계약연장이 안되면 그 날로 바로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냥 그때 들이받고 그만둔 뒤 다른 일을 알아보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데. 그래서 바로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는 안그러겠다 약속까지 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뭘 얼마나 잘못한 것인가.

 

뉴스에도 나온 적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쉬는 시간에 경비실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그것을 입주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태클거는 바람에 시설도 열악한 휴게실에서 강제로 쉬거나, 아니면 경비실 밖 야외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아파트 경비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못하더라. 휴게시간인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쉬도록 강제당한다. 그리고 휴게시간인데 입주민이 와서 뭔가를 요구하거나 시키면 또 따라야만 한다. 그래서 휴게시간이니 내 권리 챙기겠다고 하면 바로 한 마디 돌아온다. 관리비에서 월급 나가는 건데 고용주인 입주민을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었다.

 

결국은 태도 논란이다. 추석에 고향에 가는 것도 자제해 달라고 정부에서 권고한 것은 자칫 누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괜히 한 자리메 모였다가 감염이 크게 확산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이 추석이라고 고향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배아파서가 아니란 것이다. 어디 놀러가는 게 싫어서 여행도 자제하라 한 것이 아니라 괜히 여행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돌아올 경우 또다른 감염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이다. 설마 개신교가 싫어서 대면예배를 금지하고, 어차피 그동안도 마음대로 모여서 하고 싶은대로 다 떠들던 태극기집회가 갑자기 불편해져서 하지 말라 아예 광장까지 틀어막았겠는가. 그런데 아무도 없이 혼자서, 더구나 미국으로 가서 요트를 구매하고 동해안을 항해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배 안에 거의 혼자 머무느라 자체적으로 자가격리까지 하게 될 것인데다, 무엇보다 그러는 동안 국내에 돌아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뒤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요트사러 가서 항해까지 하는 그 어디에 코로나19의 방역과 직접 관계가 될 부분이 있는가.

 

그래서 집 팔고, 차 팔고, 대출까지 받아서 산 요트값 2억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일 게다. 어떻게 2억이란 돈을 마련했는가는 빼놓은 채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꽤 많은 액수일 2억을 전면에 내세워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이일병씨가 돈을 마련한 방식대로면 나 역시 2억까지는 무리더라도 그 반절 정도 되는 요트는 한 대 살 수 있을 법하다. 다 팔고 다 비우고 오로지 오랜 꿈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해외로 나가 바라던 요트를 사려 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정의연 때도, 조국 전장관 때도, 추미애 장관 때도, 결국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만 떼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인 것 마냥 부풀려 기사를 쏟아낸다. 그래서 뭐가 범죄고, 뭐가 부정이고 비리며, 뭐가 부도덕이고 비윤리인가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냥 감정적으로 보기 안좋으니까. 감정적으로 내가 싫으니까. 어쩌면 솔직할 것이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서 참언론인을 목표로한다던 강병수 기레기가 했던 말처럼,

 

"정부는 무조건 틀렸을 것이다. 무조건 잘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까발려야 한다."

 

그러니까 하다하다 공관 4천 평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공관 부지 4천평을 강경화 장관 혼자서 다 쓰는가? 공관 400평을 강경화 장관의 가족이 다 쓰고 있는가 말이다. 더구나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한다면 저 넓은 바다에 비하면 4천 평은 너무나 좁은 것이다. 때로 오토바이를 타고, 때로 차를 타고, 그리고 이제는 요트를 타고 저 넓은 세상을 누비던 사람에게 4천 평이 그리 넓은 평수일까? 무엇보다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기 집도 아닐 텐데 평수가 갑자기 앞에 나온다. 그냥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내가 진중권, 김경률, 서민, 혹은 심상정 나부랭이들은 더이상 지식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나마 감정은 낫다. 감정은 이성의 결론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 뒤 그를 행동으로 옮길 때는 감정의 에너지를 빌린다. 어째서 시민들은 박근혜가 밉고 싫다고 그 추운 거리로 쏟아져 나가 촛불을 들었었는가. 그래서 무엇이 그토록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게끔 만든 것인가. 논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인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보편적인 어떤 규범과 이해를 침해했기에 마땅히 그에 대해 분노하고 단죄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막연하게 싫다. 막연하게 밉다. 그래서 박근혜 동정론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박근혜도 불쌍하더라. 박근혜도 억울하더라. 제대로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저 남들이 싫다 밉다 하니 나도 덩달아 싫고 밉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자식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인턴 좀 한 것이 뭐가 문제란 것인가. 그 과정에서 부정이나 비리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냥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라고 인턴 좀 도와달라 했다면 그게 그리 큰 잘못일 수는 없는 것이다. 군 규정에 휴가를 더 연장해 써야 할 이유가 있다면 자기 휴가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90년대 군대에서도 굳이 복귀할 수 없는 사유가 있으면 부대장에게 사전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으면 되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다. 아무나 무릎수술을 받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복귀날까지 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경우도 드물고, 그런 때 부모 말고 믿고 부탁할 보좌관씩이나 있는 경우는 더 없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결혼하고 다섯 번 집 산 것도 문제란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 주고서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쉼터 관리하게 한 것도 잘못이란다. 왜? 이유는 없다. 내가 보기에 안 좋다. 남들 보기에도 안좋다.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

 

그래서 박덕흠의 3천억 이해충돌보다 요트사러 미국 간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 안 좋으니까. 수십억 재산을 속이고 신고한 것보다 아들 휴가연장 규정대로 한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보기 불편하니까.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너는 못했지? 너는 안해봤지? 그러니까 분노하라. 그러니까 증오하고 원망하라. 여행금지가 아니다. 지금도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다만 현지에서, 그리고 돌아와서 자가격리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기에 그것까지 감당하기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다 감수하겠다고. 달리 특혜를 누린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주어진 권리 그대로를 그런 모든 것까지 감수하며 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고 너는 할 수 없다. 딱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정의감이라 생각한다. 어째서 노인이 앞에 있는데 젊은 놈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가. 내가 이후로도 노인들에게 어지간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서 조퇴하고 집에 가는 중인데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식은 땀 뻘뻘 흘리는 어린 학생을 그런 식으로 윽박질러 일어서게 한다. 비틀거리는데 어린 놈이라고 또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딱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어딜 감히 내 돈으로 월급 받는 아파트 경비원 주제에 쉬는 시간에 보기 불편하게 의자에 편히 늘어져 있는가. 에어컨도 못참겠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면 내가 싫으니까. 내가 불편하니까.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미국으로 요트사러 간 행위가 방역에 어떤 피해를 주었다는 것일까? 그리고 이미 성인인 남편이 공인이 아님을 스스로 선언하고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그것이 장관인 아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그래도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론이 좋아라 저 지랄들인 것이다. 진짜 정의감에서 그러고 있다면 진심으로 한국 공교육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한국의 가정교육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아니 제대로 가르친 결과인지 모르겠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지 마라. 남 잘 되는 건 절대 참아서 안된다. 작년 그리 조국 전장관을 비난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대학생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댓기자' 같은 물타기 채널 보고 괜한 기대 같은 거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정부는 잘못하고 있다. 민주정부가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틀렸을 것이다. 그런 예단이 논리가 되고 정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를 위해 끼워맞추려 결국에 여행자제권고마저 강제로 금지하는 법적 규제가 되어 버린다. 4천 평 공관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너희는 틀렸고 잘못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부역하는 놈들이 바로 자칭진보들인 것이고.

 

아무튼 KBS가 크게 한 건 했다. 윤석열이 오랜만에 힘 좀 썼다. KBS 기자들 한동훈이 민사소송 걸었다더니만 한겨레 하어영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일없이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진짜 한국 공교육의 문제인 것일까? 가정교육 전반의 문제인 것일까? 되도 않는 일로 다시 언론이 총발기한 상태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문제를 만들려 어떻게든 이유들을 끼워다 붙인다. 민주당이 잘못했다. 너무 인정이 빨랐다. 똥같은 상황이다. 빌어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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