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2030 남성들을 위해 해 준 것이 무언가?
"월급 올려주고, 복무기간 줄여주고, 목돈 마련하게 해주고, 부대에서 핸드폰 쓰게 해주었다. 그래서 난 좋았다."
징집대상인 현역, 예비역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리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징집은 결국 안하지 않았는가?"
바로 이게 2030 남성이다.
민주당이 2030 남성들을 위해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어느 30대 남성이 대답한다.
"주 52시간제로 퇴근도 일찍하고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나는 도움이 되었다."
"청년채움공제로 전세금 마련이 더 쉬워져서 좋았다."
"청년임대주택 입주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여가 올라 여유가 생겼다."
당연히 이들은 2030 남성이라기보다는 그냥 청년노동자들일 것이다. 내가 일해서 내가 먹고사는 노동자들로서 남녀의 문제보다 당장 내 생활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리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봐야 결국 여성들까지 좋은 정책들 아닌가. 남성들만을 위한 정책을 말하라."
그래서 2030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추운 날씨에 한남동에 나가 있는 많은 남성과 여성들 역시 다르지 않다. 이른바 개딸이라 불리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젊은 여성지지자들이 대단하다는 것이 자기들끼리는 어떨지 몰라도 공개적으로 민주당을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는 절대 여성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가 아닌, 그래서 여성을 위해서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위해 행동할 때 그들은 더 크게 뭉치고 강하게 나선다. 사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2030 여성이라기보다는 그냥 시민들이다.
역시나 이 추운 날씨에 거리로 나가서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 대부분 젊은 남성들 또한 다르지 않다. 그 순간 그들은 남성과 여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젠더니 페미니 하는 것은 당연히 후순위로 밀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유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하려 하는 것 뿐이다. 심지어 민주당의 여성주의 정책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마저 그 순간만은 그런 것들은 그냥 따위로 전락한다. 남성이 어떻고 여성이 어떻고 그래서 자기들에게 어떤 혐의가 씌워지고, 그보다는 더 우선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한다. 결국 이들 또한 그냥 청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고 유권자고 민주주의 시민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또 당연하게 젠더를 말하고 페미를 말하고 남성과 여성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민주당 누가 어쨌다더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누가 무어라 말했다더라. 탄핵에 찬성하는 누가 어떤 행동을 보였다더라. 계엄에 반대하던 누가 자기들을 어떻게 취급했다더라. 오로지 2030 남성이라는 정체성 위에서 그런 자신들의 감정을 위해서만 가장 우선해서 행동에 나선다. 그런 식으로 하면 탄핵에 반대하겠다. 아니 나아가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이 걱정되어 탄핵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못하겠다.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면 이들을 무어라 정의해야 하겠는가?
전에도 말했지만 회사에도 입만 열면 페미페미 떠드는 젊은 직원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그들에게는 자기의 급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최저임금도 내가 알 바가 아니고, 근로시간 연장도 자기와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다. 오히려 해고를 더 쉽게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는 단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계엄을 다시 해야 한다거나, 계엄에 성공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 하는 노동자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분명 노동자가 아닌 여성과 여성주의에 분노하는 2030 남성들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원래 성향이 보수라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냥 보수유권자들이다. 그들은 페미니 여성이니 하는 말 굳이 입밖에 내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반중, 반북이고,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이고,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의지주의의 이상이다. 다만 이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할 때 항상 반페미, 반PC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째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가? 자신들이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못해서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걸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나다를까 여성주의와 반남성주의다. 그래서 이들도 싸잡아 2030 남성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우스운 것이다. 민주당이 2030 남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기에 자신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2030 남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을까? 그토록 장담하던 여가부폐지도 없던 일이 됐고 아예 예산마저 더 늘려 놓았는데?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에서 그나마 추진했던 청년들을 위한 정책들을 대부분 폐기했을 때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무어라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민주당이 못해서 지지한다면 국민의힘이 뭐라도 나아야 하는데 정작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하다못해 그렇게 2030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지지한다면 그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에 대한 지지가 국민의힘보다 더 높았어야 하는데 아마 거의 지지율이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2030 남성들인가?
그러니까 말하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이라 자신들을 지칭하는 그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굳이 애써 변명할 필요 없이 그냥 늬들이 보수적이라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못해서가 아니라 못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힘이 그들과 더 맞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위선보다는 악이 낫다. 세상에 악을 위선보다 더 좋아하는 경우란 중2병 어린애들 빼고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악이 위선보다 더 선하고 정의롭다 여기기에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이라 말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그들이 선이고 정의다. 그래서 악이다. 악이라 정의하는 그것에 숨은 사람들이 모르는 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가. 결국 이른바, 혹은 자칭 2030 남성들이 주장하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란 오롯이 자신들만을 위한 정책들이라는 것이다. 여성까지 모두 좋아지는 것은 안된다. 자기들 아닌 군대에 있는 젊은 남성들이나, 혹은 고용의 안정을 바라는 비정규직 젊은 남성들을 위한 정책들 역시 안된다. 4050 늙다리들 쉽게 해고해서 자기들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여성들보다 자신들만을 우대해서 남성들만을 위한 정책들도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자기들 이외의 대상들에게 고통이라는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정책을 과연 민주당이 추진할 수 있을까? 그런 건 국민의힘도 못하는 것들이다.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그들은 정작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2030 남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비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지 부동산으로 코인으로 돈을 벌게 해 주니 좋다. 여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좋다. 그런 것을 민주당에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을 지지하는 다수는 그런 민주당을 바라지 않을 테니.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청년정책들과 법안들로 인해 혜택을 입었다 여기는 젊은 남성의 비율이 대략 40% 조금 안되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이 정도도 무척 많다. 그리고 대부분 원래부터 같은 이유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딱히 자신을 2030 남성이라 특정짓지 않고,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과 별개로 2030 남성으로서 자신을 정의하거나 정체성을 규정짓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현실에 널려 있으니까. 사실 게임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런 것들보다 당장 이번에 나올 게임의 최적화가 거 중요한 이슈가 아니겠는가. 거기서까지 굳이 PC를 찾아 비난부터 하는 놈들이 과연 게이머일까?
같은 4050 안에서도 한동훈 같은 인간도 있고, 김민전 같은 부류가 있다.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어도 조국과 진중권처럼 명확히 갈리는 이들이 있다. 6070이라지만 호남의 6070과 영남의 6070 사이에도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한국 개신교 가운데도 전광훈 같은 극단적인 인간들만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러나 결국 개신교라고 할 때는 그를 앞세워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대표적인 존재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저 묵묵히 자기 신앙에만 열심인 이들은 그래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대표적으로 개신교라는 종교가 가지는 이미지가 그런 것을? 불교는 안으로 파고들만 그리 악취가 풍길 수 없는데도 드러나는 이미지만 쓸데없이 좋기도 하다. 그래서 거기서부터는 자기들 안에서 투쟁해서 바꿔나갈 부분들인 것이다. 한동훈과 김민전 같은 부류를 앞세워 4050 어쩌고 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아, 김민전은 이제 60대 들어섰으려나? 그러나 그런 놈들이 대세가 되어 나서서 설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4050 남성들이 기득권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최저임금협상에 울고웃는 가련한 처지거든. 그나마 정년이 보장되어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슬금슬금 그동안 한 걸음 물러나서 보고만 있던 청년 남성들이 논쟁에 가세하는 것이 요즘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2030 남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느냐 했을 때 그에 대해 내가 반박하는 것과 그들 세대에서 반박이 나오는 것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페미도 싫고 여성주의자도 싫고 민주당의 여성정책도 싫은데 내란만큼은 용납하지 못하겠어서 일단 민주당부터 지지하고 보겠다 했을 때는 남자다! 감탄부터 했었다. 쉰내나는 정치병자와 쿨내나는 정치혐오자 사이에 또다른 이들이 논쟁에 가세하면서 더이상 논쟁이 전처럼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인터넷에서 키보드로 정의질하는 놈들에 비해 대부분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하루하루가 고되거든. 매일이 바쁘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2030 남성이란 자신을 2030 남성이라 정의하는, 2030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우는, 그래서 2030 남성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이미 했던 말인데 다시 반복하는 것도 우습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그것이 새삼 다시 확인해주어야 할 정도로 그 세력이 많이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더이상 인터넷에서도 저들이 2030 남성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저들은 2030 남성들인 것이다. 직장인도 아닌, 생활인도 아닌, 누군가의 가족도, 민주주의 시민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도 아닌 그냥 2030 남성들이다. 여전히 그 말 밖에 그들을 정의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