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초기만 하더라도 민주당 지지자 다수의 여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민 스스로가 다양한 성향과 지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세력들이 제도권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이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나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제도권 정치가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할 수 있으면 좋다. 다만 지금 해도 좋은가면 안좋은 사례를 이미 보아 버린 터라 많이 회의적이다.

 

당연하게 그 안좋은 사례란 정의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금도 이따위인데 괜히 진보정당을 배려한다고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거나 혹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연합해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정의당이 총선에서 20석을 가져갔다면 국회에서 국민의힘 지분이 20석 더 늘어나는 것이다. 진보정당에 파이를 나눴더니 오히려 수구진영의 파이가 커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거의 모든 이슈에서 수구정당과 연합하는 진보정당을 보면서 과연 저들을 위해 민주당의 의석을 나눠야 하는가 회의가 드는 것이다. 저들에게 표를 주는 것이 과연 이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인가? 당장 저들의 입장에서 진정한 노동존중과 여성존중의 정당이란 국민의힘일 것인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혜택을 보게 될 비제도권 정치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인 것이다. 대부분은 다른 일 안해도 되는 그래도 이 사회에서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일 것이다. 나처럼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알량한 월세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의 평범한 서민들이 아니라 입바른 소리만 해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그런 신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부모를 잘만났거나, 자기가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혹은 남들이 알아주는 대단한 직업을 가졌거나, 그런 자부심 위에 그래도 사회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입바른 소리도 하고 실제 행동으로도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런 선의에 의한 선행조차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들만의 엘리트 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지난 정부에서 보여줬던 자칭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의 검찰에 대한 맹종이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검찰이 수사하면 나쁘다. 검찰이 혐의를 가지면 이미 죄인이다. 검찰이 무고하다 하면 무고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문재인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고 당사자인 검사는 승진도 막아야 한다던 것이 바로 여성주의를 앞세우던 2찍들의 태도였었다. 검찰이 무고하다 했으니 무고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한 것은 범죄다. 심지어 검찰이 수사하지 않았어도 조선일보가 그렇게 보도했으니 문제라는 인간들마저 있었다. 그래서 지난 정부에서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대부분 단체나 개인들은 정부의 반대편에서 수구세력과 손을 잡고 있었다. 수구언론과 연대하고 검찰에 협력하며 민주당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힘을 모으고 있었다. 실제 드러난 현실이 그런데 그런 놈들의 제도권 진출을 돕는다는 것이 민주당과 지지자 입장에서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다양한 정치세력이 제도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을 통해 반윤연대를 만들자. 명분은 좋다. 그런데 누구와 반윤연대를 만들 것인가? 이준석은 아예 처음부터 반윤연대 같은 건 않겠다 선을 그었다. 정의당은 대선 전부터 국민의힘과 연대하며 같은 노선을 걸었었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국정감사에서 따지고 이성윤 고검장의 승진조차 막아섰던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다. 김건희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고 대변인을 앞세워 오히려 민주당을 공격했던 정의당과 반윤연대를 한다? 검찰이 읊으면 읊는대로 민주정부를 욕하던 자칭 시민단체들은 어떤가? 검찰이 주장하니 송영길도 이재명도 이미 유죄라는 그놈들과 과연 연대가 가능할까? 검찰이 주장하면 당장 민주당사에 쳐들어가 불이라도 싸지를 그놈들을? 도대체 누구와 반윤연대를 만든다는 것인가? 진정 윤석열 정권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그에 맞서기 위해 의회권력이라도 지켜야 한다면 민주당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실재하는 가능성은 무시한 채 불확실한 희망에 모든 걸 걸려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고 반윤연대일 것인가?

 

이미 물은 흘러갔고 배는 지나왔는데 배에 새겨놓은 표식을 보고 잃어버린 칼을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일컬어 각주구검이라 한다. 이미 시대는 흘러갔고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예전 시대의 상식과 정의를 고수하려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고사다. 이미 주는 몰락했고 열국이 쟁패하며 새로운 가치가 대두되고 있는데 이전 시대의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란 뜻이다.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야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의미를 가졌다. 정의당과 자칭 진보들이 수구언론과 검찰을 맹종하는 꼬라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이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한 동력이 되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드러난 현실은 조선일보를 보고 아예 지령을 받듯 기사쓰는 자칭 진보 언론들과 검찰이 주장하면 그것을 근거로 삼아 공격하는 2찍 진보 인사들과 아무 근거 없이도 민주당이면 공격할 수 있는 단체와 개인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것이고 국민의힘과 연대하는 것은 따라서 너무나 정당하다. 그래서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를 공격하는 한 검찰에 대한 어떤 개혁시도도 불의하고 부당하다. 그래서 그런 놈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그런 확신을 가지는 근거가 무엇인가.

 

지난 정부에서 지겹도록 보았고 정권이 바뀐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칭 진보, 그러니까 2찍 진보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서 살아있는 권력인 지금 정부와 그를 견제하고 있는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을 더 많이 욕했을까? 민주당 안에서도 윤석열 정부와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는 이들과 오히려 윤석열 정부에 협력적인 이들 가운데 누구를 더 많이 거세게 공격했을까? 모르면 병신이고 알면 공범이다. 이탄희를 좋게 보았었기에 이제는 오히려 환멸만 남았다. 자신이 여기저기 언론에 불려갈 수 있는 이유를 모르는 것인가? 알면서도 그 의도에 동의하고 있기에 그러는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지금 민주당의 현실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민주당을 보다 진보적인 쪽으로 이끌기보다 결국 그로 인해 이 사회의 수구성만 강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라기에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 당시만 하더라도 당장 최저임금 1만원으로 올리고 근로시간도 주 40시간으로 낮춰야 한다 떠들며 정부와 여당을 욕하던 2찍 진보들이 지금은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이다. 정권퇴진하라고 앞장서서 시위하던 놈들조차 그런 일이 있었는가 아예 입다물고 쥐죽은 듯 조용히 있다. 성인지감수성이라는 이야기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저놈들이 저리 떠든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2찍 진보들이고 진보를 자처하던 집안좋고 학력좋은 놈들의 실체인 것이다. 그런 놈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와봐야 좋은 놈은 따로 있다. 그것을 원한다면 그놈은 그냥 적일 뿐이다. 지금 가장 진보적인 정치세력은 유일하게 민주당 뿐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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