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어느 여성주의자는 자신의 SNS에 와인잔을 들고 축배를 드는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극우유튜버는 박원순 시장이 죽은 자리를 찾아 방송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새벽부터 열받아서 여성주의자들을 공격하는 글을 쏟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저쪽 진영에서야 이쪽 진영의 유력 대선후보가, 그것도 서울시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이가 죽었으니 환호할 만하다. 그런데 여성주의자들은 왜?

 

그런데 말했듯 낯선 모습이 아니란 것이다. 바로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박근혜가 단지 여성이라서 과도하게 비난받고 탄핵까지 당한 것이라며 무고함을 주장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시도 같았었다. 전부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주의자들은 박근혜를 정치적으로 지지했었고, 탄핵정국에서마저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단지 여성대통령이기에 겪는 시련에 지나지 않았었다. 저들에게 세상은 여성과 여성 이외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고 여성은 오로지 일방적인 피해자이며 나머지는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가해자일 뿐이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로 고소당한 남성이 죽은 것은 너무나 잘 된 일이다.

 

내가 여성주의자들 모인 곳에 가면 어지간해서 말섞는 것도 꺼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마주 논거와 논리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도 결국에는 비난으로 끝나고, 혹시라도 여성주의자들의 입장에 동의해서 편들어주어도 결국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만 받고 끝난다. 그럼에도 아주 최근까지도 그래도 여성주의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애써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주위에 설명하고는 했었다. 그러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반여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저들은 더이상 공감과 공존의 대상이 아닌 단지 적에 지나지 않는다. 저들이 먼저 적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

 

당연히 나는 위에 언급한 유튜버들을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다. 그동안 저들이 해 온 행동들을 보면 대부분 바로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들과 같은 행동을 보인 인간들에 대해서도 더이상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적인 입장이 갈리면 때로 서로 적대하기도 하는 법이다. 죽음을 모욕하고 훼손하는 것이야 그런 과정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행위들을 용납해야 하는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의 행동이 인간으로서 정당한가. 그렇다면 단지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로 단정짓고 죽음마저 모욕하려는 저들의 행동은 정당한 것인가. 그런데도 그들을 옹호하고 지지하며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또다른 여성주의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연대는 깨졌다. 저들에게 남성은 인간이 아니다. 최소한의 연민이나 존중, 혹은 배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적이며 말살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도 일부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 수가 생각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공공연히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일베는 숨어다니기라도 한다.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데 연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물론 내가 남성이기에 저들은 그런 연대따위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뒈지라 말해주고 싶다. 어째서 탁현민이 고작 글 몇 줄 때문에 아직까지 욕먹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안희정이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어도 모친상조차 주위에서 챙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겠고, 한 사람의 죽음을 그가 설사 저질렀을지 모르는 죄보다 더 무겁게 조롱하고 비난하는 꼬라지 또한 공감하지 못하겠다. 스스로 적으로 여기겠다면 적으로 받아들일 밖에. 나는 한 번 적이라 여기면 절대 뒤를 돌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남긴 의외의 소득이다. 솔직히 잘한 선택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다지 연민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럼에도 그동안 이 사회를 위해 노력해 온 것들이 있는데 그렇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난 사실이 같은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것 뿐이다. 다만 그 죽음을 대하는 모습에서 적과 아군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적은 적일 뿐이란 사실만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여성주의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은 그냥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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