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KOKO라는 파생상품으로 인해 한창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물론 상품 자체도 비대칭적 손익구조로 문제가 적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환율이 모두가 예상한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면 그렇게까지 크게 문제가 커질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만수의 몇 마디 말이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버린다. 고환률이 수출에 유리하다며 환률에 개입할 것처럼 섣부르게 말을 꺼낸 탓에 환률이 급등하면서 옵션으로 인한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환률이 오르면 같은 값에 수출해도 더 많은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익을 넘어선 손실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흑자도산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말았다. 갑작스런 환률의 변화가 가져오는 폐해 중의 하나다.


전근대 조선에서도 전황이라는 폐단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었다. 열심히 돈을 찍어 시장에 푸는데 정작 몇몇 세도가들이 그 돈을 독점하느라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었다. 조선은 원래 구리가 귀했다. 조선에서 몇 차례 화폐의 유통을 정착시키고자 돈을 찍어 시장에 풀어도 심지어 그 구리를 녹여서 생활도구를 만들어쓰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화폐로 쓰기에는 구리가 나지 않는 조선에서 화폐의 소재인 구리의 가치가 너무 높았다. 중세말에도 그래서 유럽에서 금의 수요가 너무 높아진 탓에 금을 구하기 어려워져서 자칫 화폐경제가 무너질 뻔한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것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지리상발견이었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막대한 금이 비로소 늘어는 금의 수요를 충당하며 유럽의 경제를 지탱했던 것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더 가치있는 돈을 확보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돈을 시장에 유통시킨다. 비슷한 개념이다.


지금 세계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달러다. 정확히 지금 미국이 기록하고 있는 막대한 재정과 무역의 적자인 것이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기 전 세계는 주기적인 공황을 겪었었다.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과도 같은 것이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화폐에 대한 수요는 늘고 그에 비해 화폐의 단위가 되는 금의 양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그때마다 화폐가치는 불안해지고 시장은 동요하고 마는 것이었다. 한때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뒤에도 같은 위기를 겪을 뻔한 적이 있었지만 아예 태환을 정지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력과 신용만을 담보함으로써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이상, 아니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이상 자신들이 발행한 달러의 신용과 가치를 미국 그 자체로써 담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그 신용과 가치가 유지되는 달러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현물가치와 상관없이 무한정 찍어내면서도 그 가치가 보장되는 달러라고 하는 기준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며 지금과 같은 지속적인 번영과 발전이 가능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같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원래 화폐의 가치라는 것이 그렇게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화폐의 가치가 너무 높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낮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그래서 화폐의 폐단에 대해 지적하는 상소가 적지 않았었다. 화폐의 가치가 변동하는 것을 이용해서 돈 많은 놈들만 이익을 본다. 화폐를 가지지 못한 다수 농민이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당시에도 일정하게 가치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화폐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았었다. 중세 유럽에서 자국의 화폐가 아닌 아랍에서 발행한 디나르화를 결제수단으로 더 선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달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엔화가 떨어지고 원화가 오르는 것이지 달러 자체의 가치가 변동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부터가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이 일정한 가치를 가지면서 생산수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화폐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화폐를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화폐의 가치라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화폐보다 현물을 더 선호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절대화폐라는 금이다.


지금 사람들이 가상화폐라 불리우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에 몰려들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이유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일단 시장에 돈이 너무 많다. 돈이 너무 많아서 돈으로 돈을 불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적당한 투자처가 없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같은 것도 일어나고 있었다. 투자할 곳이 없으니 투자할만한 곳이 있으면 갈리지 않고 뛰어든다. 그만큼 현재의 화폐체계가 불안하다는 뜻도 된다. 현재의 화폐를 대신할 대안으로서 가상화폐에 주목하게 된다. 언젠가 가상화폐가 진짜 화폐처럼 현실에서 쓰이는 날이 올 것이다. 문제는 만일 글렇게 가상화폐들이 현실에서 교환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게 될려면 가치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 씩 널뛰듯 가치가 바뀌어서는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불거질 뿐이다. 당장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오르는데 그것을 교환의 수단으로 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늘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사먹으면 내일 비트코인이 오른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 한 편으로 그렇게 가치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미술시장과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미술작품의 가치란 작품 자체의 가치 뿐만 아니라 미래의 투자가치를 포함해서 결정된다. 일단 사서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떻게든 값이 오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미술시장에도 거품이 낀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거품이 모두 걷힌 것이 아니다. 다행히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금처럼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냥 자기들끼리 얼마다 결정하면 그것이 미술작품의 가치가 된다. 그렇게 서로 돈을 주고받으며 미술작품의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더이상 투자대상으로서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졌을 때 미술작품들은 도리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 미술작품에는 그럼에도 투자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졌어도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은 남게 된다. 가상화폐에는 그럴 경우 무엇이 남게 될까?


가상화폐가 가진 불안요인은 둘이다. 사실은 둘이지만 하나다. 지금처럼 가치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는 실제 화폐로써 교환수단으로 사용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 실질가치를 가지기 어렵다. 반대로 시장에서 실질가치를 가지는 교환수단으로서 쓰이게 되면 지금처럼 가치가 요동치지 못하게 된다. 투자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가치가 올라야 하는데 그러면 정작 시장에서 화폐로써 실제 가치를 갖는 교환수단으로 쓰이지 못하고 만다. 투자가치가 아니게 되거나, 시장에서 실제 가치를 가진 교환수단으로 쓰이지 못하게 되거나. 무엇보다 금과 마찬가지롤 가상화폐는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 어째서 달러가 불태환화폐가 되었는가 저 한참 위에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도 가상화폐는 시장에서 실제 가치를 가진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돈이 너무 많다. 시장에 돈이 너무 넘쳐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상당한 돈이 꺼져버린 상황에서 다시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너무 많은 돈이 시장에 풀리고 말았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인데 돈은 많고 투자할 곳은 없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의 하락일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넘쳐나는 돈을 투자할 곳을 찾아 아무데든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도 여전하다. 즉 돈이 넘쳐나고 돈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과거 미술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 가상화폐의 가치는 지금처럼 상승하며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꽤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편이다. 그만큼 현재 자본주의 시장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 우려는 너무 먼 이야기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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