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말한 계약종료를 통보받고 더이상 출근하지 않게 된 젊은 친구들 이야기다. 통보받고 그러더라.

 

"일하는 것으로 시험이라도 봐서 누가 잘려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으면 좋겠다."

 

여기서도 시험인가? 정말 시험 좋아한다. 시험이야 말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 평가수단이다.

 

아마 자신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일을 잘한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차마 그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는 못했다.

 

"뭔 일을 그따위로 하지?"

 

항상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선배인 나이많은 직원들을 험담하기 바쁘다. 뭐가 어떻고 뭐가 저떻고 그러니 저들보다 자기들이 훨씬 낫다. 하지만 정작 내가 주위로부터 들은 평가는 일도 더럽게 못하면서 남의 말 죽어라 안듣더라는 것이다. 즉 자기들이 아직 모르고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은데도 자기들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만 하느라 정작 자기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20대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그토록 기성세대를 비난하며 자신들만의 정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많이 아는 줄 알았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모자른 인간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대의 순수한 정의를 인정하되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옳다고만 인정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자기들 기준이 보편의 표준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 어설프다.

 

아마 많은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드라마 '미생'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었던 것 같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여겨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료들을 정리해 놓았는데, 정작 그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기존의 방식이야 말로 그동안 직장 내에서 공유되어 온 표준이고 규준이었던 것이다. 한 개인의 합리와 효율보다 집단의 합리와 효율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것을 흔히 일을 잘한다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이 잘나도 주위와의 조화가 깨지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일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그래서 사람은 더 용감해지고 단호해지고 과감해진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가 진짜 공동체를 위한 공정이고 정의일 것인가. 그런 점에서 20대를 설득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감정이 아닌, 직관이 아닌, 본능이 아닌, 사유와 고찰과 고민의 결과로써 진짜 공정과 정의를 들려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지 않는데도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건 가족이나 연인 뿐인 것이다. 유권자들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일까.

 

80년대 그토록 뜨겁고 순수했던 586이 뻔한 기성세대로 타락해 버린 이유인 것이다. 현실을 알아가며 진정한 자신에 대해서도 일깨우게 된다. 사실 지금 40대들도 20대 시절에는 지금 20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장들을 펴고는 했었다는 것이다. 자식 부양할 능력이 안되면 결혼도 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던 자칭 노빠도 겪어 봤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력하게 개발정책을 펴야 한다는 자칭 노빠의 주장도 들어 봤었다. 그래서 결국 국민의힘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 자칭 진보 정의당 아니던가. 그게 원래의 자리인 것이다. 아직 젊었던 시절이 무지와 미숙함에 의한 오류였던 것이고.

 

20대 청년 어쩌고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준석 나부랭이가 떠드는 소리와 20대 남성의 주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준석이 옳단 것인가. 이준석이 하듯 민주당도 따라가야 하는가. 그런 건 어른의 태도가 아니다. 마냥 부정해서도 안되지만 무작정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도 이 말 만큼은 그 친구들에게 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차마 너희들 일 못해서 잘렸단 소리를 못하겠다. 시험 봐서 잘랐으면 자기들은 남았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을 테니. 세상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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