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혼외자를 가질 경우 대개는 자신이 아닌 내연관계의 여성에게 보호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성의 혼외자 문제는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 인정과정마저 복잡할 때가 많다. 진짜 혼외자인가 아닌가 따지기가 유전자검사라도 해보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반면 여성의 경우 거의 반드시 혼외자라도 자기가 직접 낳아 기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모계는 분명하다. 낳은 사람이 확실하기에 따라서 혼외자일 경우 책임소재도 분명해진다. 네가 누구의 아내인데 다른 남자의 자식을 낳았으니 부정하고 불결하다. 아마 그래서 부계사회란 결혼이란 제도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 부당하고 불공정하며 모순적인 현실인 것이다. 여성은 직접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에 책임소재가 분명하다. 남성은 아이를 임신시키고도 분리되어 있기에 책임을 회피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혼외자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여성에 비해 남성의 경우는 혼외자를 인정하는 자체만으로 평가가 올라가는 경우마저 생긴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려 한다. 정말 뭣같지 않은가. 왜 여성만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혼외자 문제는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남성의 혼외자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여성의 혼외자에 대해서만 엄격한 현실이야 말로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사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가. 정의당이 조동연씨에 대한 논평을 내면서 과연 여성의 혼외자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가세연이나 언론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는가. 아니 오히려 조동연씨를 보호하려 한 민주당을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을 것이다. 절대 국민의힘이나 언론이나 가세연은 강하게 비판하지 못한다.

 

하여튼 정말 뭣같은 상황이란 것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했고 남편에게서 안정과 애정과 신뢰를 얻을 수 없었고 그래서 다른 상대를 찾았다. 결혼이란 제도에 구속되어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서려 했었다. 그런 개인의 문제를 결혼이라는 법적인 관계에 귀속시킨다. 결국 이혼했고 10년이나 지난 일들을. 어쨌든 자기 아이로 지금껏 기르고 있는 아이의 신상까지 까발리면서. 하지만 여성주의자 누구도 그런 사실에 대해 한 마디 비판도 못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가짜다. 현재 한국의 여성주의는 그냥 거짓말이다. 여성주의란 그저 기득권 여성을 위한 한가로운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김건희는 지켜야 하지만 조동연은 아니다. 황보승희는 지켜야 하지만 정경심은 아니다. 나경원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고민정은 아니다. 선택적이다. 너무 철저하게. 완벽하게. 쌍년들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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