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의 심리에는 그런 것이 있다. 오랜 유교문화의 유산인지 모르겠다. 거물을 좋아한다. 아무튼 널리 이름이 알려진 대단하게 훌륭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선거때만 되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유다. 기성정치와 관계없고, 그러면서도 유명하고, 자기 분야에서도 실적을 남긴 그런 인물이라면 무조건 한 번 맡겨 볼 수 있다. 정치는 그런 거물들이 하는 것이다. 정치에 물들지 않았으니 더 잘할 것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도 그래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서는 몇 명 씩 대통령만을 노리는 저격수가 자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기 지역 정치인이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상대로 싸움도 걸고 고함도 지른다. 대통령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거물이다. 그런 이미지를 노린다. 실제 재야와 운동권의 거물이었던 전력과는 달리 과거 한나라당에서 김문수와 손학규가 전국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김대중과 노무현을 제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할 정도의 인물이라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전국에 알린다.


불과 얼마전까지 이재명이라면 그저 서울에 붙은 성남이라는 도시의 아는 사람이나 겨우 이름을 들어 아는 시장 정도에 불과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이재명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들을 일도 없고, 설사 듣더라도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성남에서나 겨우 알아줄만한 전국적으로 보면 피라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일개 지방도시의 자치시장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상대로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아니 이재명이 먼저 부딪히기 전에 청와대와 행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재명을 견제하고 있었다. 청와대와 행정부마저 움직이게 만드는 전국구의 거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검찰이 움직인다. 행정안전부가 움직인다. 경기도가 움직인다. 마치 형주의 관우를 상대하기 위해 위와 오가 뭉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고작 형주에서도 강릉 하나만을 겨우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조인과 우금, 서황, 오에서는 육손에 여몽까지 움직일 정도로 관우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달리 만인적이 아니다. 그정도 동원해야 확실하게 관우를 잡을 수 있었다.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는 검찰과 행정부와 광역자치단체까지 나서서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만한 힘이 움직이면 언론이 침묵해도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정치인 개인에 대한 선호도만 놓고 본다면 문재인보다는 이재명이다. 문재인은 인간적으로 존경하지만 이재명은 정치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바라는 것을 그대로 현실에 옮겨주는 그야말로 자신의 대리인이다. 내가 성남시민이 아닌 것을 그래서 항상 안타깝게 여긴다. 만일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나와 당선을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른다면 마땅히 나는 그를 위해 투표할 것이다. 굳이 이재명을 지지하더라도 야권의 승리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한 표를 행사한다. 그런데 그 이재명이 그를 견제하는 청와대와 행정부, 광역자치단체로 인해 거물이 되어 가고 있다.


그냥 단식이 아니다. 행정부에 맞서는 단식이다. 행정부의 뒤에 도사린 청와대에 맞서는 단식이다. 이미 이재명은 청와대라고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일개 자치시장에 불과한 이재명이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다. 모르긴 몰라도 성남시민들은 무척이나 뿌듯해 할 것이다. 원래 자기 동네에서 거물이 나온다는 건 그런 의미일 테니까. 비로소 성남에서도 전국에 내세울 인물이 나왔다.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간다.


그야말로 이재명프로젝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무시하고 넘어갔다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의식했으며 티나게 견제했다. 표나게 압박했다. 그 결과 숨어있어야 할 이재명이 드러났다. 이재명의 이름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현정부의 반대편에 있다. 현정부의 실정의 정반대편에 그의 존재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다. 의외의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란 언제나 있어왔다.


흥미롭다.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벌써 단식 8일째다. 언론은 침묵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은 그의 단식에 주목하고 있다. 주목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폄하하고 누군가는 비난하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더 열성적으로 지지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는 있다. 청문회장에서 명패를 던지고, 장례식장에서 원수라 할 수 있는 이에게 허리를 숙인다. 계기는 아무때도 찾아올 수 있다. 기대가 크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다. 꿈을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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