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가톨릭 교회의 역사란 영지주의와의 투쟁의 역사라 봐도 좋을 것이다. 영지주의란 당시 지중해세계에서 유행하던 비의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의 한 분파다. 심지어 이 영지주의야  말로 초기 기독교의 주류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었다. 당연한 것이 성경의 비밀을 자신들이야 말로 알고 있다지 않은가. 문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성경의 진짜 비밀을 자신들만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것이 성직자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이들을 정리하며 보편적 교리로 묶은 것이 가톨릭, 가톨릭이란 자체가 보편을 의미한다.

 

중세까지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무런 기반지식 없이 섣부르게 성경을 직접 읽었다가 자기 멋대로 해석하겠다고 나서면 바로 영지주의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보편적인 해석이 있고, 로마 교회에서 교황과  여러 추지경들에 의해 새롭게 갱신되어지고 있을 텐데, 신자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들고 나와 이게 진짜다 주장하기 시작하면 난감해지는 것이다. JMS같은 미친 놈들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발에 차이도록 널리고 널렸었다. 그런데 워낙 신자들이 성경을 읽는 자체를 금지해 놨더니 성직자란 것들이 성경을 자기 멋대로 유리하게 해석해서 이용하기 시작하니 반발해서 나온 것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었다. 이제부터 로마 교회가 아닌 자기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하겠다. 루터 이후 이루어진 종교개혁에 대해 영지주의 음모라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이유인 것이다. 이로부터 별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기의 해석이 진짜라며 떠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개신교회에서 심지어 신도 성경도 아닌 목사를 믿고 섬기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인 것이다. 초기 영지주의 교회와 비슷하다. 소수의 영지주의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비의야 말로  진정한 신의 말씀이고, 따라서 영지주의 성직자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신의 뜻에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진정한 신의 말씀을 알고 있다 주장한다. 심지어 신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주장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신의 대리인이다. 신 그 자체다. 신의 뜻을 대변하는 목사가 그리 말했으므로 이야말로 신의 의지이며 유일한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중요할까? 현실의 가치나 정의가 중요할까?

 

신천지도 원래 그렇게 시작된 종교였었다. JMS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은 자기만의 해석이 진짜 성경의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이 진정한 신의 말씀이란  주장이다.  그런데 어쩐지 닮아 있지 않은가. 순복음교회나 혹은 사랑제일교회나. 아니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또 신자가 모이기도 한다. 보편적인 개신교의 가르침이 아닌 이 교회 목사만의 해석을 쫓아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떻게 사람들이 귀기울일만한 자기만의 매력적인 해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진짜 신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목사들은 인기가 없어 하루살이도 걱정해야 한다.

 

차라리 사람의 해석을 더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읽고 믿으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도 이놈저놈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필요한대로 끌어다 이용해대고 있으니 그냥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순수하게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러고보면 한 편에서 영지주의를 그토록 악마화하며 오만 것에 대해서까지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 한국 개신교였을 텐데. 그러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어째서 가톨릭이 영지주의를 그토록 적대했는가만 새삼 확인하게 만들 뿐이다. 광화문 코로나 사태로 더욱 분명해진다. 이대로 개신교를 내버려두어도 좋을 것인가.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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