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이 소련 영토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들과 독일 영토에서 저지른 소련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평가가 다른 이유는 하나다. 소련군은 단지 독일군 영토에서 자신들을 침략하여 학살과 강간, 약탈, 파괴를 저질렀던 독일인들에 복수를 했던 것이었다. 반면 나치 독일은 슬라브인에 대한 자신들의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여지없이 행동에 옮긴 것이었다. 이해가 가는가?

 

오래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후손이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이 미치후사의 머리를 잘라 뱃머리에 걸었던 행동을 두고 너무하다며 비판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오다 노부나가가 자기 처남이기도 했던 아자이 나가마사의 머리를 술잔으로 만들어 연회에서 사용한 사실이 있었다. 그만큼 급박했으니까. 아자이 나가마사가 돌아서며 퇴로까지 끊기고 하마트면 오다 노부나가 자신의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복수다. 그만큼 나를 위험하게 만든 적이었기에 철저한 보복을 통해 그를 되갚아주려 한다.

 

적을 살해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더욱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강력한 적을 철저하게 말살하여 미연에 예방하는 행위는 오히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은 행위라 할 수 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세 척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고 수 천에 이르는 일본군을 몰살시켰어도 누구도 그것을 전쟁범죄라 부르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일본의 민간인들이 일본군을 도와 미군을 살해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 민간인들 역시 적으로 간주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 수단 가운데 필요하다면 생명을 빼앗고 생활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드레스덴 폭격은 끔찍한 비극이지만 당연히 전쟁 도중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인 것이다. 도쿄대공습이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군인만이 아닌 민간인을 포함한 일본이란 국가 자체가 적이었고 따라서 그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간일을 대상으로 한 공격 역시 정당화된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질렀더는 민간인 학살이 나치 독일이나 구 일본제국군의 학살과 다른 성격을 가지는 이유다. 남경에서 일본군은 전혀 자신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 중국인 민간을 상대로 그야말로 자신들의 쾌락과 만족을 위한 학살과 약탈을 저지르고 있었다. 남경의 중국인들이 위협이 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그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살과 강간, 약탈, 파괴라는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소련에서 나치 독일이 보인 행동 역시 유사했었다. 차라리 소련군이 자신들과 맞서 인정할만한 성과를 보였다면 그렇게까지 무심한 잔혹함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슬라브인은 열등하다. 러시아인은 자신들 게르만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들이다. 차라리 분노다. 혐오고 증오다. 저런 열등한 존재들을 가만 내버려두고 있는 자체가 자신들에게 죄책감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베트콩인지 무고한 일반인진지 구분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바로 직전까지 무고한 베트남의 일반인이었다가 한 순간에 베트콩의 일원이 되어 한국군을 위협으로 내몬다. 어찌해야 하는가.

 

만에 하나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인들이 더 두려워하고 긴장해야 한다 말하는 이들이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열등한 대상들에 대해 학살을 저질러 왔지만, 한국인들은 적을 말살하기 위해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제거해 왔었다. 적이라 여기면 잔인해진다. 한 번 적이라 여기고 나면 무감각해진다.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본능이다. 인종적인 학살에는 죄책감이 있을 수 있어도 적에 대한 말살은 죄책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광주에 대한 양심선언이 그동안 거의 없다시피 했던 이유였다. 적을 향한 모든 행위는 가혹할수록 정당하다.

 

적은 죽인다. 적은 말살한다. 적은 파괴하고 배제한다. 대신 적이 아니라 여기면 그때부터는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그랬었다. 아군이라 여기면 누구보다 친절하다가 적이라 여기면 누구보다 악독하고 가혹해진다. 인종적인 우월감에 기대 약자에게 더 가혹했던 나치 독일이나 구일본제국군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물론 덕분에 한국전쟁 당시도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 공산당은 적이다. 공산당에 부역하는 것도 적이다. 적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 지금이라고 다른가. 적은 적이고 오로지 아군만이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할 인간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베트남에서의 학살이나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이전의 다른 학살과 구분할 수 있게 된 이유인 것이다. 나치독일과 구일본제국군이 특별한 이유인 것이다. 아니 제국주의 이후 열강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저지른 범죄들이 이전과 다른 이유들인 것이다. 적을 살해하는 것은 정당하다. 적은 철저히 파괴하여 무력화시켜야 내가 안전할 수 있다. 그들은 적인가? 아니면 단지 무력한 약한 존재일 뿐인가. 항상 생각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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