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인들은 이상한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과학문명의 발달이 전쟁을 영구히 종식시키고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 가운데는 더욱 강력한 새로운 무기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각국 정부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려는 결단을 주저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도 있었다. 알프레드 노벨이 이런 주장을 하던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무기를 만들어 팔던 죽음의 상인이 자신의 이름을 딴 평화상을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더 강력한 무기를 더 많이 확보하고 있으면, 그래서 열강들이 서로 군사적인 균형을 이루게 되면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터진 게 바로 1차세계대전이었다. 그래서 1차세계대전을 일컬어 언젠가 터졌어야 할 전쟁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것이다. 열강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군비를 갖추는 과정에서 한 편에서는 자신들이 이미 확보한 군사력에 대한 확신과 자신을 가지게 된다. 이만한 군사력을 갖추었으니 상대의 약점을 적절히 파고들어 영리하게 행동한다면 상대를 누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독일은 주저하는 오스트리아를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전쟁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 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군사력이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오로지 막대한 비용을 소비해야만 하는 분야란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오로지 군비에만 쏟아붓고 있는데 하는 일 없이 그냥 대치만 하고 있으면 본전생각이 당연히 들게 되는 것이다. 기왕에 이만큼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뭐라도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회를 노린다. 방법을 찾는다. 독일 뿐만 아니었다. 영국도, 프랑스도, 국내상황이 영 아니었던 러시아를 제외하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회만 되면 전쟁을 해야겠다. 그래서 기회가 찾아왔다 여겼을 때 바로 전쟁을 일으켰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대로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만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바로 전쟁을 대비하면서 고양된 전쟁의지였다는 것이다.

 

전쟁을 대비하면 반드시 전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인류역사에 하나의 법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형편없는 군비를 가지고서도 결정권자가 자신의 군사력에 자신을 가지고 낙관하게 된다면 반드시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역사상 수많은 바보같은 전쟁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을 막는 것은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지가 아니라 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하는 반전과 항전의 의지인 것이다. 그런 반전과 항전의 의지 위에서 그를 위한 군비라는 것을 갖추는 것이 진정으로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대비일 수 있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하라는 말은 아무때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이 아닌, 전쟁을 막기 위한 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저 인용한 문구도 19세기 말에 나왔을 것 같은데. 귀찮아서 찾아보지는 않았다. 대충 그 언저리에 나온 말일 것이다. 당장 지금 일본의 자위대만 하더라도 기껏 세계 열강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나니 당장 어디든 보내지 못해 안달이지 않은가 말이다. 한반도에 자위대를 보내고 싶어서 저리 안달인데 그 길을 열어주겠다는 놈이 지금 대선후보다. 헌법에 의해 전수방위로 묶여 있는 일본의 자위대도 이런데 한국군은 어떨까? 여전히 휴전상태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명분상 크게 문제가 없다.

 

아마 윤석열의 선제타격론에는 그런 배경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군이 너무 비대해졌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넘어서 지나치게 강대해졌다. 북한 정도는 아무때고 가볍게 밟아 버릴 수 있다. 자기가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 결과를 향유하고 싶은 욕구가 아주 없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나면 자신은 전쟁영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북한을 점령한 주체로써 역사에 그 이름을 길이길이 남길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얼마가 죽고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그게 군이란 것이다. 후방에서 국민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당장의 총과 대포만 있으면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패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다.

 

아무튼 어설프게 아는 놈이 더 무섭다더니 어디서 말 한 마디 주워듣고 그대로 읊어댄 모양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대비한다는 것이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무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야겠다. 세계최강대국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발목이 접질리는 이유일 것이다. 전쟁을 하지 위해 전쟁을 대비하는 단순한 이치를 애써 무시해야 한다. 세계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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