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이 해당 국가 민중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해당 국가 다수 국민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그러한 최악의 선택들을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개개인의 이성이란 것에 근본적 문제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독일의 경우 황제가 쫓겨나고 독일제국이 무너지면서 제국이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많은 이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제국이라는 강력한 억제장치가 사라지자 그동안 다수의 피지배 국민들 사이에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가 괜히 공산주의를 제 1주적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비슷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인 단합을 주장하는 나치의 주장은 기득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기에 그들의 선전과 선동은 기득권세력들의 동조와 협력에 의해 빠르게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고작 술집 구석에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던 놈팽이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스페인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 파시스트를 상대로 맞서싸우기까지 했음에도 끝내 군을 장악한 기득권세력들에 패배하면서 프랑코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고 있었다. 과연 이탈리아 국왕과 교황청의 승인이 없었어도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의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역시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는 파시스트 편에서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득권들의 동조와 협력은 그들이 장악한 언론까지 움직이면서 대중적인 여론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괴벨스가 제아무리 뛰어난 선전선동가였어도 언론의 협력이 없이는 그렇게까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실제 히틀러와 나치가 장악한 것 같던 독일에서도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소리소문없이 그러나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스탈린의 소련에 비해 전황이 불리해지는 동안에도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해 자원을 낭비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만 틀어져도 국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히틀러와 나치로 하여금 전쟁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비단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뿐이었을까?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도 국민 다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부와 기득권이 칠레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외세의 지원 아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뒤집은 경우었다. 단지 그렇게 정권을 잡고 난 다음 새롭게 들어선 정부의 강력한 억압과 유인에 의해 국민 다수가 하나의 사상과 지향만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정권을 잡은 주체가 언론을 통해 선동하고 교육을 통해 세뇌하며 경찰과 군부를 동원해서 다른 사고를 억압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란 하나의 목적과 지향을 가지는 단일한 사회라는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전혀 다름에도 구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역시 파시즘과 같이 취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구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란 전근대적인 전제주의에 근대적인 수취시스템을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군부가 천황의 승인 아래 천황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사실상 이전의 막부와 다를 바 없는 체제였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적인 막부체제의 강력한 행정력과 통제력은 기득권을 억압하는 약자들에 대한 더욱 강력한 억압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그나마 조금씩 일어나고 있던 사회주의가 아예 씨몰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괜히 대한민국 보수들이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 동안에는 사회주의가 아예 발붙일 수 없었다. 그러면 그 수혜자는 누구일 것인가?

 

어쩌면 이 또한 기득권에 의한 기만일 것이다. 어떻게 독일에서 나치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가. 밑도 끝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히틀러의 개소리가 독일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실제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치른 선거에서 사실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그를 승리로 포장하도록 도운 주체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나치가 정권을 잡고 난 뒤에는 그들 또한 기득권으로서 새로운 권력의 입장에서 경쟁자일 수 있었기에 그로 인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오스트리아 출생에 고작 부사관 출신이었던 히틀러를 경멸했던 육군참모부의 태업과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충실히 나치에 협력만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졌고 특혜도 누릴 수 있었다. 밀덕들을 기쁘게 하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난잡하기까지 한 비효율적인 무기체계 또한 이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이놈도 밀어주고 저놈도 밀어주고 여기도 던져주고 저기도 던져주고 하는 사이 정작 필요한 무기와 장비가 정치적인 이유로 도태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게 된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말하자면 파시즘이란 원인이 아닌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가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일본에서도 군국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이유다. 민중이 스스로 저항하며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끝끝내 강제되었던 스페인의 경우가 그 증거인 것이다. 칠레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기득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폭력을 요구하게 된다. 철거민들을 내쫓을 때나 파업중인 노동자들을 내몰려 할 때 조직폭력배를 동원하는 것처럼 자신들을 위해 얼마든지 부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대기업들이 기꺼이 막대한 재원까지 지원해가며 독재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절대권력 아래에서는 일선 기자들 역시 상당한 지분을 배려받을 수 있다. 더구나 당장 하는 일 없이 지식인입네 정치인입네 하는 놈팡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히틀러 역시 술집 구석에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던 놈팡이란 것이다. 딱 홍세화나 김규항 무리들과 비슷한 부류들이다. 괴벨스처럼 자신의 실력에 걸맞지 않은 불우한 현실에 불만을 가진 지식인 나부랭이의 표상과 같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득권과 정면으로 맞서려 하기 보다 대중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앞장섰다. 여기서 한겨레의 위치란 공산주의자를 악마화하던 당시 언론과 지식인들의 위치였을 것이다. 이준석에 동조하여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을 배제해야 할 악으로 몰아 2030을 선동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방적 구조를 고착화하기 위해 언론과 교육마저 마음대로 하려 하는 중이다. 그마저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심상정이 저리 지랄하는 이유인 것이고. 어차피 윤석열 욕해봐야 다음은 한동훈이란 믿음이 있다.

 

백주대낮에 대한민국 제 1야당의 대표가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한 엄중한 상황에서도 굳이 트집거리를 찾아 비난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하는 의사들의 행태란 그런 연장인 것이다. 개신교와 불교라는 종교권력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한 경제권력, 거기에 언론과 지식인사회가 합심한 여론권력에, 의사와 변호사 같은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 정치결사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인 행동에 나선다. 심지어 이러한 정치적 연대 안에서는 신천지와 개신교조차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결사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개신교조차 신천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보를 자처하던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반노동적인 주장과 행동들에 동조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여성주의자와 반여성주의자가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바로 거기에 한 발 걸치고 있던 것이 당시 정부여당의 대표 이낙연이었다. 사실상 문재인 포위망이었는데 이제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재명 포위망이다. 노무현 때도 다르지 않았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이 어디의 누구와 정치적 연대를 하고 있었는가.

 

원래 중국의 문화대혁명조차도 홍위병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럴 동기와 명분을 제공한 기득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도록 그들을 선동하고 실제 지휘까지 했던 당시 집권자 마오쩌둥과 그 주위의 사인방에 더 큰 책임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치가 패망하고서도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사회에서 배제되었지만 심지어 독일에서조차 진짜 기득권들은 살아남았었다. 인류 역사의 비극이랄까? 기득권은 어떻게 해도 기득권이다. 다만 나치 독일처럼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기득권은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다. 누가 선택되고 누가 배제될 것인가. 그 전에 현실은 바뀔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이유다. 저들은 언제까지 지금의 선택을 유지할까? 2찍 진보가 한동훈을 비판하지 않는 이유일 터다. 흥미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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