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도 상당히 위험한 병이기는 하다. 하지만 또 굳이 당뇨가 있다고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천식도 비슷하다. 여러가지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당히 주의하며 관리만 잘 하면 어떻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는 될 수 있다. 어차피 완치가 어렵다면 병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노력을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리가 부러졌다면 당연히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치료가 끝날 때까지 쉬고만 있기에는 당장 내일의 밥벌이가 걱정이다. 치료하겠다고 한 주나 두 주, 혹은 한 달 정도는 쉬면서 치료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굶어죽을 지경이면 아픈 다리를 이끌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목발이라는 것도 만들어진 것이다. 깁스라는 것도 하게 된 것이다.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어떻게든 제약은 있겠지만 일상의 일부나마 누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한다.

 

백신이든 치료제든, 아니 설사 그런 것들이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더라도 한 번 생겨난 코로나19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는 것이 옳다. 타미플루가 있어도 인플루엔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또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지금까지 인류가 앓아 온 병들 가운데 완전히 사라졌다 자신해도 좋은 것은 천연두가 아마 거의 유일할 것이다. 나머지는 백신도 치료약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앓고 누군가는 죽기도 하는 가운데 저항할 수단에 의지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상태라 보는 것이 옳다. 혹은 몇몇 사람은 병에 걸려 죽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예방도 할 수 있고 치료도 할 수 있으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어떻게든 영위할 수 있다.

 

이대로 백신도 치료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그저 병만 무서워하며 아무것도 않고 움츠려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가운데 최대한 감염의 위험을 차단하면서 최소한의 희생만으로 다시 일상을 영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자칫 병에 걸려 죽기 전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해 굶어 죽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무도 농사짓지 않고, 농사를 지어도 그것을 유통하려 하지 않고, 유통해 온 것들을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사회는 커녕 개인의 일상조차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지은 것들을 소비자들에게로 날라와야 하고, 가게에서는 그것들을 팔아야 한다. 소비자들 역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것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그를 위한 실험인 것이다. 지금 세계의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일이기에 오로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실험인 것이다. 이대로 개인이 최대한 코로나19의 감염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의료기관이 혹시 모를 감염에 대해 차단과 치료를 책임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얼마간의 감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감염은 어쩔 수 없는 상수로 여겨야만 한다. 대신 그 의료시스템을 유지하며 운용하는데 필요한 자원들까지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경제시스템을 다시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장비도 생산해야 할 것 아닌가. 개인의 위생을 위한 도구들 역시 충분히 공급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겠다고 마스크 생산공장마저 재택근무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어떻게든 위험을 감수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어디까지 무엇까지 각오하고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를 위한 데이터따위 없다. 대한민국 스스로가 그 모든 데이터를 찾고 만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앞서가면 다른 나라들은 그 길을 따라 뒤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렵고 위험한 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어쩌면 인류의 선봉으로서 대한민국에게 지워진 책임이 막중하다. 어떻게 하면 이 코로나19라고 하는 황당할 정도로 감염력도 치사율도 변이도 잘되는 질병과 인류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아직 100명 이하에서는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활동이 위축되며 다른 환자들까지 줄어든 것을 감안했을 때 매일 그런 정도 수준으로 확진자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의 의료체계 안에서 크게 문제없이 소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한 노력이다. 확진자 0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확진자 20명 정도에서 계속해서 관리된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을 것이다.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즐길 수도 있는 그런 세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

 

정부가 여러 우려에도 굳이 개학을 강행하려는 이유인 것이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새로운 조건에서 시험적으로 적용해 보려는 것이다. 다만 그런 정부의 노력에 호응하지 않거나 아예 관심도 없는 이들이 불안요인으로 더욱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있을 뿐.

 

아직은 괜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팡과 같이 전혀 아무 경각심도 없이 개인과 집단의 방역과 위생을 방치하기만 한다면 다시 사회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영구히 거리두기를 하며 스스로 말라죽을 것인가. 아니면 제약이 있더라도 일정부분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가 돌아가도록 할 것인가. 쉬운 선택은 아니다. 트럼프나 아베가 아닌 이상 그런 선택이 쉬울 리는 없다. 어떻게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대한민국은 살아갈 것인가.

 

아마 세계 여러나라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전같지는 않더라도 다시 어느 정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란 것이다. 과연 우리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희망만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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