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왕조에서 전제군주의 지근거리에 있는 측근들을 중심으로 밀실에서 중요한 정책들이 결정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제왕조란 자체가 전제군주 개인의 사유재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중세를 특징짓는 봉건제부터가 원래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가 신하들에게 그동안 점령한 영토를 나누어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분봉이 이루어졌을 때도 고려와 조선의 전시과나 과전법과 다르지 않게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하에 대해서만 당대에 한정되어 지급되고 있었다. 상속세의 기원도 그래서 당시 이미 지급받은 봉지를 돌려주기 싫었던 영주의 자손이나 가신들에 의해 영지의 상속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바치던 세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 이유로 만일 자신의 봉신에게 후손이 없어 영지를 상속할 수 없게 되면 원칙적으로 영지는 다시 주군의 소유로 돌아가게 된다. 프랑스에 비해 왕권이 강했던 영국의 경우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모든 토지는 국왕의 소유라고 하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단지 개인은 국왕의 소유 가운데 그 사용권만을 구입하여 거래하거나 실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히 세금에 대해서도 심지어 어느 유럽의 군주는 단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선물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로 세금을 부과하여 거두기도 했을 정도로 공적재정과 사유재산의 경계마저 모호했었다. 아니 모호하다는 것도 그나마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추어진 이후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그냥 나라의 재정이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토지가 국왕의 소유이듯 모든 인민 역시 국왕의 소유다. 그래서 요역이라는 이름으로 백성을 징발하여 노동력으로 부리고 전쟁에서는 병사로 써먹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금도 국왕이 필요해서 거두어야 한다면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다 쓰는가도 오로지 국왕 개인이 결정한다. 중국 명나라 말기 조정의 재정수입은 고작 400만냥이었는데 그 2배인 800만냥을 자기 무덤을 만드는데 써버린 만력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부족한 세금을 더 거둬보겠다고 광세를 신설하여 민란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라의 모든 토지와 백성과 재정이 국왕 개인의 소유라면 나라의 관리들이란 모두 국왕 개인의 종복에 불과하다. 실제 전제적인 왕권을 휘둘렀던 중국 명나라의 초대황제 홍무제나 이후의 황제들, 이어진 청나라의 옹정제 등은 모두가 나라의 관리들을 마치 개인의 종복처럼 철저히 억압하며 일방적으로 부리려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나라의 공적 역할과 책임을 맡는 관리와 개인적인 일들을 돕는 고용인 사이의 경계가 사실상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나라 일도 살피면서 왕 개인의 일도 살피고, 왕 개인의 일을 해결하면서 함께 나라의 중요한 일들도 해결한다. 물론 방점은 왕 개인에게 찍힌다. 왕의 신하가 나라의 신하이고, 왕의 측근이 나라의 중심인물이고, 왕의 의지가 곧 나라의 법이고 제도고 윤리가 된다. 그러므로 해당 관리가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어떤 관직에 있는가가 아니라 과연 왕과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왕 개인의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는가에 따라 그 신분과 지위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공식적인 신분이나 지위가 높아도 어차피 왕조국가에서 존엄이란 왕 한 사람 뿐이기에 나머지는 단지 신하로써 왕의 의지 아래 종속되어 존재한다. 비천한 노예를 귀족으로 만들 수도 있고, 황실의 종친을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다고 왕의 말 한 마디에 일족이 모두 몰살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와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것이 왕의 측근들인 것이다. 일개 환관이 조정의 대신들마저 굽어보며 그들을 손가락 하나로 부리는 상황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왕과의 거리가 개인의 위치까지 결정한다.


말 그대로다. 어차피 국가란 국왕의 개인재산과 같다. 그래서 단지 국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자에게 왕위와 더불어 국가의 모든 것이 상속되기도 하는 것이다. 공적으로 임명된 관리나 국왕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측근이나 그 차이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것이다. 오히려 왕과 관련된 일들을 주로 처리하기에 왕과 가까이 있는 측근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왕과의 거리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한다. 물론 민죽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 모든 법과 정책은 공식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모든 것이 공개된 채 투명하게 결정되고 집행된다. 국가원수란 국가를 사유화한 소유주가 아니다. 단지 국가적인 책임을 국민들로부터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고용인에 불과하다. 그 모든 행동들마저 국민이 합의한 법에 의해 강제된다. 국가원수와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 직책도 없는 개인에게 재벌과 검찰과 유력인사들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결코 있어서도 안된다.


무슨 뜻이겠는가. 대한민국에 보수와 진보는 국가의 사유화와 그에 대한 반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든 재벌이든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은 단지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쟁취한 사유물일 뿐이다. 자신도 그처럼 크고 많은 권력과 재산을 자기 실력으로 한 번 가져보고 싶다. 자기 소유인 만큼 마음껏 자기를 위해 사용한다. 비리를 저지르고, 전횡과 부정을 일삼아도 그만한 위치에 있기에. 높은 자리에 있는 만큼 오히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더 무능한 것이다. 대통령이 측근 쯤 두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원래 정치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답답한 이유다. 아무 직책도 없는 개인들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체계마저 무시한 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꼼짝없이 그들에 놀아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었다. 지난 대선은. 패배가 바로 그 이유다. 우습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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