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회적으로 일정 지위 이상 올라간 사람이라면 사람의 선의에 모든 것을 걸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사람의 선의만 믿고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현실에 오히려 드물 것이다. 검찰개혁이 그냥 장관 하나 임명하면 알아서 되는 것이라 여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고 검찰개혁을 말했다면 일단 자기 지능부터 의심해야 한다. 아직 검찰권력의 서슬이 퍼렇고, 모든 언론이 윤석열의 편이 되어 있는데 과연 민간인까지 포함된 징계위원회가 해임이라는 극단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해임되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추미애도 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안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처음부터 해임을 노리고 벌인 판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미애 장관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해가면서 현직 검찰총장 징계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보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검찰의 로비에 넘어가 다른 소리를 내뱉기 시작한 민주당 내부단속에 있었다. 그리고 윤석열 징계위원회를 통해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반대하는 여론을 일부 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언론이든 정치권이든 윤석열 징계로 인해 전처럼 한목소리로 주장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석열은 초유의 징계받은 검찰총장이 될 뿐 아니라 공수처설치를 막지 못한 검찰총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불어 노린 것이 있다면 그동안 추미애 장관이 기회만 되면 말해 왔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상하관계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을 터다. 장관의 요청으로 검찰총장을 징계하기 위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법원에 의해 무력화되기는 했지만 장관의 직권으로 바로 검찰총장의 직무배제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윤석열은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추미애 장관이 의도한대로 직무배제를 당하고,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까지 받고 있었다. 법원에 제소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법무부장관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고 검찰총장은 그 권한 아래 있는 것이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그보다 훨씬 쉬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미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순간 검찰총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윤석열의 뼈아픈 부분이다.

 

이제 대충 중도층들도 눈치챘을 것이다. 윤석열이란 어떤 인물인지. 결기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그렇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검찰총장으로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박찰 용기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다. 차라리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때 다 때려치고 그만뒀으면 주가는 더 올랐을 테지만 자리에 연연하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차기 대선후보로 여기는 사람은 기자 버러지 새끼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윤석열이기에 가능했다. 다른 검찰총장이었다면 징계라는 말이 나온 순간 못해먹겠다며 사표내고 그만둬 버렸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이 감히 검찰의 수장을 징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검찰은 법무부의 아래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추미애가 노린 검찰개혁의 첫단계였다. 검찰이 법무부 하부조직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내가 아는 추미애 장관은 차라리 실패했으면 오욕을 감수하더라도 버티면서 만회할 사람이지 자신의 의도한대로 되지 않았다고 도망치듯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원래 추미애 장관의 임기가 딱 검찰개혁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였다는 것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더 강경한 내용으로 통과되고,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에 의해 징계받음으로써 그 무소불위의 권위에도 크나큰 흠집을 남겼다. 법무부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나머지는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추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굳이 추미애 쯤 되는 정치인이 장관 자리에 연연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윤석열을 날리는 게 검찰개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석열이 이런 상황에서까지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더 모양이 볼썽사나워지는 것은 검찰 자신이란 것이다. 검찰도 안다. 알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민주당 차원에서 입법까지 몇 개 더 이루어지면 검찰권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언론만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윤석열의 똥도 달다고 빨아제끼는 탓에 수고를 조금 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미애 장관이 실패했는가? 추미애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추미애가 이긴 것이다. 당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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