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젊은 남성들과 노동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쉽게 흔히 그런 말들을 듣곤 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다는 건가?"

 

고작 그깟일 하는데 왜 그리 돈은 많이 받고, 일하는 시간은 왜 그리 적으며, 고용은 어째서 보장되어야 하는가? 그러면서 나오는 논리가 어차피 학교 다닐 때 노력 안한 놈들이나 가는, 아무나 데려다 시킬 수 있는 일인데 더 적은 임금에 더 긴 시간 일시키고 아무때나 해고해도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 자기가 알고서도 선택한 것이니 감수하라는 점잖은 타이름이 추가된다.

 

인천국제공항 보안원들의 정규직전환이 불공정의 대표적인 이슈로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깟 보안원이다. 자기는 어차피 할 일이 없고, 할 생각도 없는 하찮은 일자리다. 그런 일은 그저 한 달에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로 벌면서 죽을 고생하면서 일해야 적당한 것이다. 아무때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르기도 해야 일도 열심히 할 터다. 그러니까 그런 대우를 해주지 않으니 불공정하다.

 

윤석열의 최저임금 폐지와 120시간 근로제, 쉬운 해고에 대해 20대 남성들이 지지하는 이유인 것이다. 딱 20년 전 20대들도 저따위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으니. 그때 20대들이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쯤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이 달라졌다. 어째서? 직장생활이라는 걸 실제 해 봤으니까.

 

누가 해야 하는 일따위 없다.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다. 반드시 노력과 실력에 비례해서 직장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한 순간 삐끗하면 내가 저 사람의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은 아니더라도 내 친구거나 내 동생이거나 내 부모거나 내 이웃이거나 나와 가까운 누군가일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사정이 같지 않은데 단지 드러난 표면만을 이유로 기본적인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재명이 적확하게 설명했다. 공정보다는 정의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바른가?

 

인간이기에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이란 노동자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있다 여긴다. 물론 자신은 아니다.

 

그깟 편의점 알바 하면서 뭐 그리 많은 돈을 받는가? 하지만 그 그깟 알바로 생계를 잇고 학비를 대는 어려운 형편의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야간 8시간은 다른 사람의 야간 8시간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더구나 야간에 일한다고 추가수당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상 손해를 보고 있는 터이기도 하다.

 

아무튼 갈수록 20대 남성들이 주장하는 공정에 대한 회의만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김건희의 주가조작은? 경력위조는? 논문표절은? 장모의 여러 범죄의혹들은? 어째서 곽상도에게는 분노하지 않는가? 어째서 박덕흠에게는 그토록 분노하지 않는가? 그들의 공정이란 오로지 표창장과 월세에만 적용되는 것인가?

 

결국은 하나다. 누려도 되는 이들은 누릴 수 있다.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법고시 존치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윤석열처럼, 곽상도처럼, 우병우처럼 되고 싶다.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니 최저임금이야 없애든 말든. 근로시간이야 120시간 이상 강제하든 말든. 그래봐야 10년 뒤 진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10년 뒤 깨닫게 되겠지. 자기가 직접 보안원 일을 하면서 참 이 일이 좆같구나 깨닫고 나서라면. 하긴 어린 나이니까. 참 어리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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