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의협회장이 전공의나 의대생보다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 봤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않고, 따라서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도 안다. 그래서 과연 지금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앞세워서 사보타주를 이어간다고 정부를 상대로 승산이 얼마나 있기는 한 것인가.

 

비유하자면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강적을 굴복시키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는데 미처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동맹들이 패퇴한 것을 알게 된 상황과 비슷하다 봐야 할 것이다. 부동산 이슈로 말미암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미래통합당이 지지율에서 역전하자 기회라 여기고 광화문집회를 계기로 총집결하여 삼면에서 포위공격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만 코로나19로 인해 전광훈의 개신교세력이 먼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전광훈만 떨어져나간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미래통합당이며 다른 개신교 교회들마저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의사들이 진료거부라는 무기로 정부를 압박하려 해도 지원할 다른 아군이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경향, 서울신문 등이 의사들의 진료거부를 비판하는 기사도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KBS와 JTBC가 굳이 의사들의 진료거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시작도 전에 전열이 흐트러지며 그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광화문집회가 코로나19로 역풍을 맞지 않았다면 이들 언론들은 한 목소리로 의사들의 편에서 정부를 압박하여 조기에 레임덕을 이끌어내려 시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호응하기로 했던 한 편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지니 다음을 기약하며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의사를 비판하는 기사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결국 언론도 조중동과 보수언론의 지원만을 받다 보니 진료거부라는 극단적인 선택에도 파괴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최대집이 그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최대집 자신이 아니더라도 의사협회 안에 그 정도 머리 하나 쯤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미래통합당도 개신교도 코로나19로 인해 자신들을 전면적으로 지원할 수 없고, 더구나 그 코로나19로 인해 자신들의 진료거부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싸움을 이어가는 것은 자칫 더 큰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사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바로 정부와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합의안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총알받이로 세우려 동원했던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치기어린 정의감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의사 전체를 위한, 심지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싸움이니 이대로 적당히 물러나서는 안된다. 정권교체를 이룰 때까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앞장서서 정부를 압박하며 완전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부가 양보하는 듯 계속 물러서는 듯한 모양을 보이고, 더구나 언론마저 자기들이 떠드는대로 다 받아써주니 아주 신이 났을 것이다. 싸우면 이기고 진격하면 빼앗는다. 이제는 의사협회도 최대집도 안중에 없다. 설마 정부가 자기들을 죽이기야 하겠는가. 의료붕괴가 오고 말 텐데 자기들을 감히 함부로 어찌할 수 있을 것인가. 환자가 죽어나간다. 코로나의 재감염이 확산일로에 급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환자들 죽어갈 때마다 정부욕하던 의사놈들은 지금도 기억한다. 정부가 양보하지 않아서 - 정확히 항복하지 않아서 환자가 죽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몇 명 만 더 죽으면 정부도 뒤집을 수 있다. 진짜 의사란 놈이 한 말이다. 국민의 피해가 커질수록 정부는 다급해지고 여당도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완전한 백기항복만 받아내면 된다. 어제 단일안을 내놓으며 대전협 비대위원장인가가 한 말이 그런 맥락이었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그런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면 정부도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최대집은 정부를 너무 궁지로 몰았을 경우 닥치게 될 상황으로부터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전공의들이 자기들끼리 뭘 어쩌든 이제 자기와는 상관없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뭘 어찌 결론짓고 행동하든 그 결과에 대해 자기에게는 아무 책임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아직 쓰지 않은 수단들이 많이 있다. 국민의 공분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그때는 정부로서도 더 강경한 의사들이 후회할만한 대책들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정부 앞에서 의사 혼자로는 아직 너무 역부족이다.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미래통합당과 개신교가 함께하는 상황이라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자기들 쪽은 죄다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대집도 판단이 너무 늦었다. 적당히 여지를 남겼으면 나중에 다시 한 번 진료거부라는 수단을 써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번에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에 그럴 여력이 남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뭐라도 수틀린다고 다시 진료거부에 나서 보라. 한 번 그로 인한 숱한 피해들을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또 다시 환자를 버리고 정치투쟁에 나서겠다 선언해 보라. 거의 공세종말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대집이 그냥 의사협회와 함께 몸만 빼서 도망친 것이란 평가도 옳을 것이다. 과연 다시 같은 기회가 온다고 의사들이 다시 한 번 이번처럼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다른 세력들에 짐이 되지는 않겠는가.

 

물론 그런 고차원적인 계산은 할 줄 모르기에 전공의고 의대생들인 것이다. 수능에서는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거든. 그런 고도의 정치싸움 같은 건 경험으로 직접 겪으며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집은 탈출했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남았다. 그냥 최대집의 결정에 따르겠다 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딴 소리 한 덕분에 최대집의 체면도 구기고 자신들의 입지까지 좁아졌다. 내 알 바 아니기는 하지만. 이번에 진료거부한다면 과연 얼마나 따라와 줄 것인가.

 

최대집이 아니라 최대집의 뒤에 있는 의사집단의 실세들의 판단이라는 분석에도 그래서 동의하는 편이다. 아니라기에는 그동안 보여준 모습에 비해 최대집이 너무 영리했다. 그 사이 전공의들에 휘둘린 모습까지 허술하기만 하던 모습에서 반전이 너무 컸다. 만일 자기 실력이라면 인정해 주어야 할 지도. 최소한 주호영보다는 낫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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